간호대 입학정원 늘고, 유휴간호사 10만명 넘어…간호 관련 수가 개편과 근무환경 개선 시급

[라포르시안] 작년 11월 경남 하동군에서 유일한 응급의료기관 역할을 하던 중소병원이 간호사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됐다.

이런 병원이 한둘이 아니다. 지방 중소병원마다 심각한 간호사 구인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수도권 대형병원의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제공으로 간호인력 충원이 확대되면서 지방병원의 경력직 간호사가 대거 빠져나가면서 인력공백이 더 심화되고 있다.

인력 유출로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사 업무 환경은 더욱 나빠지고, 그러다 보니 지원자는 계속 감소하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 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간호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생기는 일인가 싶지만 분명 그런 이유는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70개가 넘는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새로 신설했고, 간호대 입학정원도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경력단절 상태인 '장롱면허 간호사' 인력이 수만명에 달한다.

여러 상황을 따져보면 간호인력 구인난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력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한간호협회가 작성한 '통계로 본 우리나라 간호사 배출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간호교육기관 수는 2006년 127개에서 2015년에는 203개로 최근 10년 사이에 무려 76개 대학에 간호학과가 새로 신설됐다.

표 출처: 대한간호협회가 작성한 '통계로 본 우리나라 간호사 배출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
표 출처: 대한간호협회가 작성한 '통계로 본 우리나라 간호사 배출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

2015년 기준 간호대학 입학 정원은 1만8,869명으로 2008년 1만1,775명과 비교해 7,094명이 늘었다.

복지부는 간호등급제 실시와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대형병원 병상 확충 등으로 간호인력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2008년 이후부터 간호대 입학정원을 해마다 대폭 증원했다.

그 결과, 2013년에는 전국 3~4년제 간호대 1학년 재학생이 2만3,000여명 규모로 늘었다. 이는 올해부터 2만3,000여명에 달하는 신규 간호사가 배출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간호사 수가 절대적으로 증가했지만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활동하지 않은 유휴인력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교육부의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간호학과 졸업자의 취업률은 84.4%이며, 3년제 졸업생의 취업률이 86.4%로 4년제 졸업생의 취업률(82.3%)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신규 간호사의 높은 취업률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평균 근무 연수는 5.4년에 불과해 중도에 그만두는 인력이 상당히 많았다.

우리나라 활동 간호사 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기관 종사자수 17만9,412명(2016년 3분기 기준)과 간호협회 면허신고데이터에 의한 비의료기관 종사 간호사 3만5,303명을 합해 21만 4,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의 '2016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면허 간호사 수는 총 33만8,629명(2015년 기준)에 달했다. 활동 간호사 수와 비교하면 간호사 면허 소지자 가운데 실제로 의료현장 등에서 활동하지 않는 인력이 10만명을 넘는 셈이다.
 
유휴 인력이 이렇게 많은데도 간호사 구인난은 왜 심해지는지, 간호사들의 이직률은 왜 이렇게 높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무조건 간호사 인력 공급을 확대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적정 간호인력 확보는 환자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간호협회는 지금과 같은 간호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면 간호 관련 수가체계 개편과 병원 재직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 등의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협회는 간호사 배출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간호사의 질적 확대 및 충원이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으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의료기관, 병원 종사자, 학계, 관련 단체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다각도의 노력이 부족하다면 향후에도 간호사 수급불균형은 고질적인 문제로 남을 것이며 이는 의료서비스의 질과 환자 안전 및 국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병원 재직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 등의 고용유지 및 이직 방지를 위한 정책이 시급하며,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사 확충을 위해 수도권.대형병원과의 근무조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간호사 표준근로지침 및 임금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간호관리료 차등제'의 개편 필요성을 지적했다.

의료기관의 적정 간호인력 확충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간호관리료 차등제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 간호인력을 확충해 인건비 부담을 더하기보다 차라리 낮은 등급을 받고 간호관리료를 삭감당하는게 병원 경영에 더 이익이 될 정도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간호협회는 "간호관리료 제도를 개선해 의료기관이 간호사 추가 고용에 대한 실효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의료기관 종사자 중 간호사의 비율은 50% 이상이고 주요 의료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간호사가 제공하고 있는데, 간호관리료는 전체 건강보험 수가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간호관리료 차등수가의 대폭 인상이나 간호 단독 수가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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