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 시달리며 번아웃 직전인 정신건강복지센터 노동자들

[라포르시안] "언제부턴가 문득 제가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서 만나고 있는 분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중략)점차 늘어나는 정신건강사업들을 수행하다보면 사례관리자 한 명 당 100명이 넘는 대상자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어렵고, 자살위험성평가가 실적화 되는 환경에서 지금까지 제가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서 꿈꿔왔던 정신장애인의 탈원화와 지역사회 복귀는 어디로 간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지역정신건강복지사업 일자리 창출 및 비정규직 정규직환 방안' 토론회에서 현장증언을 한 박수진 전국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 교육부장의 말이다.

박 교육부장은 자신을 '2006년 입사 이래 매해 계약서를 써야하는 비정규직'이라고 소개했다. 지역사회에서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의 직업적 정체성이 대부분 그렇다. 언제 그만둬야 할 지 모르는 '간접고용, 단기계약 노동자'.

국내 지역사회정신보건사업은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을 계기로 지난 20여년을 통해 공공영역에서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를 책임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를 통해 정신건강 돌봄을 위한 관련 시설의 양적 확대는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서비스 제공의 핵심인 인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소홀했다.

정신보건법이 '탈원화'를 지향했지만 정신장애인을 정신병원이나 시설에 격리하고 배제시키는 것을 돌봄으로 포장했다. 그 과정에서 강제입원에 따른 인권침해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13년 공개된 OECD의 '한국 정신건강정책 리뷰'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34개 회원국 중 정신병상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시설은 인구 10만명당 0.01로 꼴지였다. 탈원화와 지역사회 기반의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 제공에 역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 중심 정신보건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지역사회정신보건사업의 인프라와 지원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 소속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인력은 부족한데 정신장애인의 사례관리부터 자살예방사업,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사업, 재난 정신건강사업 등 갈수록 사업 범위가 확대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양질의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정신건강증진센터 소속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의 처지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직영보다는 민간위탁 방식으로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운영하는 비율이 높다. 민간위탁 혹은 재위탁의 센터 운영으로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고용불안과 낮은 처우, 그리고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며 1~2년의 단기고용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 업무의 숙련도 형성을 통한 전문적인 서비스 제공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지경이다.

급기야 작년 10월 서울시 산하 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와 21개 기초지자체 정신건강증진센터 및 자살예방센터에서 근무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 300여명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고용불안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5월 말부터 시행된 정신건강증진법에 따라 지역사회정신보건사업의 중요성은 더 높아졌지만 인력.시설 등의 인프라 확충은 요원한 상황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경제적이며 인권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기관"

이날 토론회는 양질의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보건의료노조와 양승조·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토론회에서 전준희 경기도 화성시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지역사회정신보건사업에 대한 일자리 확충의 필요성과 방안'이란 발제를 통해 열악한 정신건강복지센터(2017년 5월 30일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정신건강증진센터' 명칭 변경)의 근로환경이 질 낮은 돌봄 서비스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전 센터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업은 중증정신질환관리사업 이외에도 아동청소년사업, 자살예방사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심지어는 치매관리사업, 자활사업, 노숙사업 등 다양한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사업의 확대는 인력과 예산의 증가를 가져와야 하지만 지역사회정신보건사업에서는 제자리 걸음수준의 예산변화만 있어왔다. 이로 인해서 인력의 불안정을 가져왔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한 인력 중 절반이상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정신보건인력은 영국이 318.9명, 미국 125.2명, 핀란드 99.2명에 달하지만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42.0명에 불과했다.

선진국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다양한 정신건강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탓에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대부분이 지자체의 직영형보다는 위탁 형태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사업의 지속가능성도 담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민간위탁 사업체 변경과 직영전환 등의 과정에서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은 끊임없이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보건전문요원의 73.6%가 1년 단기 계약직이고, 평균 재직기간은 2.7년에 불과했다.

전 센터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수탁기관이 없어서 1~2곳의 민간기관이 수탁을 독점하고 있으며, 일자리에 대한 책임성이 낮아서 질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동시에 지자체의 과도한 실적요구와 관여로 인해 민간주도의 공공사업이 아니라 관주도의 민간사업이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광주광역시 정신건강시범사업처럼 적극적인 예산 지원 ▲사회서비스공단을 통한 정신건강복지센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자살예방센터, 재난정신건강센터 종사자의 안정적인 근무환경 보장 ▲인구 1만명당 최소 1명 수준(약 5200명)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확충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에 따른 사회적 편익이 더 크다는 인식 전환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 센터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자살예방센터는 예산을 쓰기만 하는 소모적인 기관이 아니다"며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경제적이며 인권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기관이다. 의료급여대상자들의 장기입원에 대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사례관리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의료급여예산의 절감 효과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출처: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향 해법 모색'
이미지 출처: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향 해법 모색'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전국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를 대상으로 운영 및 노동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운영형태는 민간위탁이 61.1%, 공공법인위탁 27.9%, 지자체 직영 11% 순이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고용형태는 정규직 11.7%, 무기계약직 10.7%, 비정규직 77.6%(기간제 74.5%, 시간제 3.1%)였다.

조사대상 각 센터의 평균 근속기간은 2.5년(2년 미만 39.4%)으로 동종업계 평균 근속기간(4.6년)과 비교해 훨씬 짧은 편이다. 1년 미만 단기 근속자 비율이 10명 중 2명(19.9%)이었고,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율은 10명 가운데 0.5명(4.2%)에도 못 미쳤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단기 고용(기간제 계약직)은 정신건강전문요원의 고용불안으로 이어져 업무 숙련도 형성과 돌봄 서비스 질 하락을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센터 근무자 중 '1년 내 이직 의향을 갖고 있었다'는 응답은 58.8%(정규직 47.2%, 비정규직 61.5%)나 됐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고용 안정성(job stability) 문제와 위탁·재위탁 과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 안정성’(job security)을 법에 명기해야 한다"며 "보건복지의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와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전제와 함께 비정규직 고용불안과 차별문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다면 2200여명의 정규직 전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며, 증가하는 업무대비 인력을 충원한다면 708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소윤 연세대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에 따른 정신건강복지센터 운영 개선 방향'이란 발제를 통해 미국과 호주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운영 방식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업무가 몰려있다는 점을 짚었다.

김 교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운영 개선을 위해서는 미국의 사례처럼 지역거점 의료기관을 적극 활용하고, 센터의 업무 표준화가 필요하다"며 "또한 단기적으로 센터 필수업무에 대해서 인력을 충원하고, 장기적으로 센터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으로 탈원화에 대비한 대규모 인력증원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관련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양질의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 고용·운영형태 바꿔야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인력 고용과 기관 운영형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 근무인력 중 53%가 3년 사이에 그만두고, 근속기간이 38개월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은 정신건강업무 담당인력의 전문성과 숙련성을 보장하기 힘든 구조임을 보여준다"며 "정신건강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질 낮은 일자리인 비정규직 고용형태에 머물러 있고 단기재직자가 반복 교체되는 상황에서는 정신건강복지의 질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양질의 정신건강복지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업무 담당 인력의 고용형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나 실장은 "양질의 정신건강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정신건강업무 영역, 필요인력, 고용형태, 운영형태, 예산이 상호 조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늘어나는 정신건강업무와 개발해야 할 정신건강업무를 고려한 양질의 인력을 충분히 확충하고, 국민들에게 최상의 정신건강복지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 구축과 예산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 기반의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를 통해 탈원화의 본래 목표를 달성하려면 충분한 예산 확보는 필수적이다.

오승준 한국정신보건연구회 회장(새하늘병원장)은 "지역사회 서비스가 가능할 때 비로소 탈수용화 및 낮은 재입원률, 낮은 비자의입원률 등의 긍정적인 수치들이 가능하게 된다"며 "이런 서비스에는 상당히 많은 인력과 시설을 필요로 하며 그에 따른 적극적인 예산 편성도 필수적이다. 그런 것들을 모두 감당하고 정신질환자 재활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는 우리나라와 눈에 띄게 차이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사회 기반의 정신건강복지사업 구조가 취약한 것은 한국의 열악한 공공의료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그동안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의식 희박과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초래된 공공의료 약화로 정신건강복지사업이 민간위탁 위주로 진행됐다"며 "현재 정신보건업무 종사자들의 어려운 근무여건과 처우 무제는 공공보건분야 비정규직에 공통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 국장은 “사회서비스공단을 통한 일자리 창출노력이 주로 요양돌봄과 보육서비스에 한정해 논의되고 있으나 정신건강복지 및 재활영역도 포함해 적극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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