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노동집약적 분야임에도 만성적 의료인력부족 상태로 돌아가...구조적 문제 뜯어고쳐야

[라포르시안] #. 한국은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한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기반으로 지난 수십 년 간 의료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세계적 수준의 참단 의료시설과 의료인력을 갖춘 대형병원이 즐비하다. 진단기술과 치료법의 발전으로 암환자의 생존율은 의료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암환자 생존율 확대로 2016년 기준 국내 '암 생존자'가 160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다. 의료선진국인 한국의 병원을 찾아서 연간 30만명이 넘는 외국인환자가 방문한다.

한국은 의료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만큼 외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든 의료관련감염 사고와 병원내 환자안전 사고, 의료인 폭행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참사에 이어 2015년 메르스 사태, 부산대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 내 전공의 폭행사건, 간호사 상대 갑질 논란,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사고,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까지 각종 사고가 잇따랐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조마조마할 정도다.

진정한 의료선진국 입성은 아직 먼 이야기 같다. 의료 인프라 확충이나 의료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시스템 상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각종 안전사고로 숨지는 환자가 속출한다. 왜 이럴까.

끊이질 않는 각종 의료 관련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개별병원이나 개별 의료인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의료 인프라의 양적팽창으로 인해 그만큼 사고 발생 빈도가 잦아졌다고 이해해야 하나. 그렇게 보기에도 최근 발생한 어이없는 의료사고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없지 않다.

결국, 의료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그 중에서도 병원내 의료인력의 양적 부족과 그로 인한 질적 하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병원에서 5명이 해야 할 일을 1~2명의 인력으로 메우는 방식으로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 인력을 갈아 넣고 노동력을 쥐어짜 겨우겨우 병원이 돌아간다.

매번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부는 관련 대책을 수립할 때마다 의료인력 확충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한다.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14년 5월말 발생한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고 관련 ytn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2014년 5월말 발생한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고 관련 ytn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장성 요양병원 화재참사 때도 그랬다. 화재 사고가 난 요양병원은 야간에 간호조무사 1명이 30~40명의 환자를 돌봐야 할 정도로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됐고, 그 때문에 화재 사고 때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 병원만 그런게 아니었다. 장성 요양병원 사고 후 복지부가 전체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안전점검 및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당직의료인 규정 미준수와 의료인 수 변경허가 미이행 등의 의료법 위반사례가 198건이나 적발됐다. 조사대상 요양병원 중 당직의료인을 충족하지 못한 곳이 131개소나 됐다. 의사 1명이 최대 65.1명을 진료하는 요양병원도 있었고. 간호사 1인당 47.1명의 환자를 돌보는 요양병원도 있었다.

복지부는 야간·휴일 등 취약시간대 환자 안전 강화 등을 위해 요양보호사 채용(3교대)을 의무화하고, 병원 내 의사를 최소 2명을 두도록 하는 등 인력기준을 강화했지만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를 통해 그런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2016년 기준으로 세종병원의 입원환자수는 평균 74.5명었고 외래환자수는 135.9명에 달했다. 의료법상 인력기준에 따르면 세종병원에는 상근의사는 6명과 간호사 35명이 있어야 했지만 의사는 2명 뿐이었고 간호사는 6명, 간호조무사 17명 뿐이었다. 이 병원이 적정 의료인력을 두고 있었다면 화재 발생 초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환자를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신생아 4명이 잇달아 숨지던 날에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은 규정대로라면 당직의사 5명이 근무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당직근무를 선 의사는 전공의 2명뿐이었다. 

그날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 거다. 만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적정 의료인력이 지속적으로 근무를 섰더라면 상황은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 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다. 메르스 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들은 가뜩이나 인력난이 심했는데 격리치료 대상 환자까지 늘면서 많은 의료진이 탈진 상태에 빠졌다. 문제는 메르스 사태 그 이후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겪은 후 병원의 감염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선과 관련 수가 개편을 실시했다. 감염관리실 설치 대상 병원을 2018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150병상 이상으로 확대하고, 감염관리실 근무인력도 병상 규모에 비례해 배치하도록 강화했다.

그렇지만 강화된 감염관리 인력기준에 맞춰 의료기관이 필요한 인력을 확충하고자 해도 감염관리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의사와 간호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에 따르면 정부의 제도개선 방안대로 추진하려면 2018년 하반기까지 1,500명의 감염관리 전담 간호사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에도 감염관리 전문간호사가 부족한 데다 관련 업무가 힘들어 그만두는 간호사도 많은 상황에서 강화된 감염관리실 및 감염관리 전담인력기준에 맞춰 1,500여명의 신규 인력을 확충하는 건 상당히 버거운 일이다.

감염내과 전문의도 연간 20여명이 신규 배출되는 상황에서 강화된 감염관리 인력기준을 따라잡기가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은 메르스 사태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은 의료관련감염관리 문제의 연속선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한감염학회와 소아감염학회 등 4개 학회는 최근 공동성명을 내고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 사건은 메르스 사태 이후 아직 개선되지 않은 의료관련감염 관리에 대한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취약점을 보여준 연속선상의 사례"라고 주장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정책은 또 어떤가. 메르스 사태에서 보호자와 간병인이 상주하는 병실이 감염관리에 상당히 취약하는 게 드러나자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환자 보호자나 개별적으로 고용한 간병인 없이 전담 간호인력이 24시간 돌보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를 추진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가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간호인력 확충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수도권의 대형병원을 제외하고 지방 공공병원이나 중소병원에서는 간호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수도권 대형병원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도입에 맞춰 간호인력을 확충하면서 지방 병원의 간호인력난이 더 심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방 중소병원의 경력직 간호사들이 대거 유출되면서 의료 질 저하와 환자 안전사고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 전공의 폭행과 간호사 상대 갑질 논란의 기저에도 고질적인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상황에서 선배 의사나 지도교수들이 전공의한테서 고효율·고강도 노동력을 짜내기 위해 폭언과 폭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문의 제도는 저수가·저급여·저부담이라는 3저를 지탱해주는 '저임금, 고효율, 고강도 노동'을 강요받는 전공의 제도가 근저에 있어서 가능한 시스템이다. 원가의 80%에도 못 미치는 수가를 정해놓고, 나머지는 알아서 챙기라는 무책임한 정책에서 병원이 필요한 건 저임금의 노동자 전공의가 필요했던 것이고, 전문의에게 수익성에 쫓긴 경영 논리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지태 대한의학회 부회장.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1월호에 게재한 '전문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기' 중에서>  

간호사라고 상황이 나을 게 없다. 병원의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으로 빡빡한 간호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거의 일상화됐다. 그 속에서 선후배 간호사끼리 폭언과 폭행을 동반한 재가 될 때까지 태우고 괴롭힌다는 '태움'이란 악습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이 간호사를 상대로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으로 노동력을 착취해 왔다. <관련 기사: [편집국에서] 한국의료를 관통하는 깊고도 단단한 '착취구조'>

"잇따라 불거진 대형 의료사고는 한국 의료시스템 실패에 대한 ‘적신호 사건’"

지금과 같은 의료환경에서 환자안전을 기대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과 간호사 이직률 증가에 따른 숙련된 간호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환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도 아니다.

잇따르는 의료사고가 한국 의료시스템의 실패를 알리는 '적신호'라는 분석도 있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은 '병원 인력 확충: 환자 안전 증진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는 제목의 워킹페이퍼 형식 보고서를 통해 "한국 의료와 병원은 양적 팽창에 걸맞는 질적 발전 속도가 더디다. 병원은 커지고 많아지며 시설은 좋아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의료사고는 빈발하고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의료사고 스캔들은 이러한 한국 의료 시스템 실패에 대한 ‘적신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매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호들갑스러운 논란만 일뿐 한국의료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환자안전법을 시행하고, 의료기관인증을 받아도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의료인력의 피로도가 누적되면 항암제 매뉴얼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지키기 힘들어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같은 중대한 투약오류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환자확인과 수혈확인, 수술부위 확인 등의 기본적인 업무조차 지키지 못해 혈액형 불일치 수혈과 같은 황당한 의료사고도 발생했다.

이 연구원은 "병원의 최소 간호인력 수준을 법제화하고 이를 어기는 병원에 대한 강력한 지도와 감독, 처벌이 집행돼야 한다. 병원이 자발적으로 간호 인력 수준 향상을 위한 동기 부여가 되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또한 간호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간호사의 근무 및 휴식시간에 대한 규제, 병원 특성에 맞는 노동안전보건 규제 등을 신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개별병원에 맡겨진 의료인력 확충의 책임을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 국가가 직접 책임지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건의료기본법에 명시된 규정에 따라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발전계획부터 수립해야 한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은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보건의료 부문의 발전 목표와 추진 방향, 의료자원의 적정 분배와 공급, 의료이용체계 효율화 방안 등을 마련하고, 여기에 맞춰 각종 의료정책을 추진토록 하자는 취지다.

보건의료발전계획에는 ▲보건의료 발전의 기본 목표 및 그 추진 방향  ▲보건의료자원의 조달 및 관리 방안 ▲지역별 병상 총량의 관리에 관한 시책 ▲보건의료의 제공 및 이용체계 등 보건의료의 효율화에 관한 시책 등을 포함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보건의료기본법이 제정·시행된 이후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

국가 차원의 의료시스템 발전 방향을 정하고 그에 맞춰 세부적인 전략을 추진하기보다 주먹구구식 정책 추진이 난무하고 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단편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쏟아내 의료환경을 더 왜곡하는 일이 반복된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30일 성명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설과 장비에만 투자하고 인력에는 투자하지 않는 병원의 경영전략과 정부의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의료인력의 안정적 수급과 균형있는 배치를 위한 정책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는 '00을 위한 종합대책', '00을 위한 제도개선'을 답습할 때가 아니다. 한국의료시템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은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 메르스 사태부터 이대목동병원 사건,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는 국가 의료시스템의 기본 목표와 추진 방향, 그를 위한 세부 전략을 다시 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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