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속한 시장진입 위한 제도개선 방안 거의 비슷해..."국민 건강보다 의료산업 육성에만 초점"

[라포르시안] 정부가 의료기기 개발 이후 시장 진입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쪽으로 인·허가 규제혁신을 추진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혁신을 통해 의료기기 산업에 날개를 달아주겠다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은 박근혜 정부 때 발표한 의료산업 규제완화 방안을 짜깁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박근혜 정부 때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것처럼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안전보다 의료산업 육성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19일 발표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중에서.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19일 발표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중에서.

정부가 지난 1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내용을 뜯어보면 박근혜 정부에서 투자활성화 대책으로 발표한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완화 내용을 고스란히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의 핵심은 개발 이후 시장 진입까지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게끔 신의료기술평가나 보험등재 심사 등의 시간을 단축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데 있다.

규제혁신 방안에 따르면 규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신의료기술평가의 절차를 현행 280일에서 250일로 단축하고, 보험등재 심사와 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으로 의료기기허가와 신의료기술 평가 동시 진행을 위한  ‘통합심사 전담팀’를 구성하고, 신청인과의 창구를 식약처로 일원화한다.

인체 안전성의 우려가 적은 의료기기에 한해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한다.

체외진단검사 분야는 신의료기술평가를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해 체외진단기기는 개발 후 1년 넘게(390일) 걸리던 시장진입을 80일 이내로 대폭 단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체외진단기기가 기존 기기와 비교해 사용목적 등 중대한 변경이 아닌 경미한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60일이 걸리는 식약처의 변경허가가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1월 6일 열린 대통령 주재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산업 규제개혁 및 활성화방안' 중에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1월 6일 열린 대통령 주재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산업 규제개혁 및 활성화방안' 중에서.

이 같은 규제혁신 방안은 앞서 박근혜 정부 때 투자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대부분 제시했던 내용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1월 열린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발표된 '바이오헬스산업 규제개혁 및 활성화 방안'은 이번에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복지부는 '바이오헬스산업 규제개혁 및 활성화방안'은 신의료기술, 첨단재생의료제품, 웰니스 제품의 신속한 시장진입 지원을 명분으로 신의료기술평가 간소화와 신속화를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안전성 우려가 적은 체외진단검사는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을 최소화하도록 심의기준을 변경하고,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와 복지부의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의료기기 개발 제품의 더 빠른 임상현장 도입이 가능하게끔 평가대상을 유형별로 분류해 빠른 검토가 가능한 체외진단, 유전자검사 등의 분야는 ‘신속평가’를 도입해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도 포함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새 의료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가 시장에 진입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따로따로 진행하던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추진하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도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복지부를 중심으로 식약처, 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계기관과 함께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합심사 방식으로 운영하는 제도 역시 박근혜 정부 때 적극 추진해온 것이다.

이런 규제완화 정책을 놓고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시민단체, 의료계 등에서 의료영리화 정책이라면 강력한 우려를 제시했다.

무엇보다 유효성과 안전성이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신의료기기를 임상현장에 적용할 경우 추후 환자안전이나 비용효과성 문제가 제기되면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진료현장에서 신의료기기 사용을 사용을 더 꺼릴 수도 있다.

의료계는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통합심사에 따른 신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진입이 부실한 평가 검증으로 이어질 경우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공공성이 강조되는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상업화를 촉진시키겠다는 것은 국민부담을 희생양 삼아 대기업 자본과 대형병원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적 재난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이 박근혜 정부에서 발표한 보건의료 분야 투자활성화를 규제완화 방안과 뭐가 다른가. '규제완화'라는 용어를 '규제혁신'으로, '창조경제'를 '4차산업혁명'으로 바꿨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를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는 지난 19일 발표한 규제혁신 방안에서 '안전한 의료기기에 대해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겠다며 인체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기의 경우 ‘선(先) 진입-후(後) 평가’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신의료기술평가를 하는 것인데 먼저 임상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나중에 평가를 하겠다는 건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원을 낭비로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 방문 자리에서 "규제혁신이 쉽지 않은 분야이지만, 의료기기 산업에서 규제혁신을 이뤄내면 다른 분야의 규제혁신도 활기를 띨 것"이라며 "의료기기 산업의 낡은 관행과 제도,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그동안 의료기기는 개발보다 허가와 기술평가를 받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혁신적인 제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제 때 신속하게 출시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하며 규제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건의료 분야의 투자활성화를 명분으로 규제환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리 의료산업이 세계적으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성장 잠재력도 무궁무진한데, 규제에 묶여 제자리걸음을 하는 현실도 안타깝기만 하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과 ‘의료법’도 하루속히 통과시켜서 우리 의료산업 발전의 물꼬를 터주시기를 바란다"거나 "현행 의료법은 과거 의료가 낙후됐던 시절에 규제 일변도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의료산업 육성에 지금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박근혜 정부 때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완화 정책을 의료영리화로 보며 강력히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9월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지금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규제개혁을 통한 경제활성화 방안이 과연 국민을 위한 선택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는 물론 의료관련 단체 모두가 반대하는 의료영리화도 규제 완화의 광풍으로 몰아갈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에 대해서도 똑같이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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