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술기역량 강화 추진하면서 PA 양성화는 모순..."병동업무에 치여 교육시간도 없어"

초음파 교육을 받고 있는 전공의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초음파 교육을 받고 있는 전공의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라포르시안] 대한심장학회가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을 대상으로 '심초음파 검사 보조인력 인증제도' 도입을 추진하자 전공의들의 반발이 거세다.

가뜩이나 수술실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에 밀려 수련교육 과정에서 임상술기를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데 소노그래퍼(Sonographer)마저 양성화하면 이런 경향이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병원 교수가 중심인 학회에서 이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전공의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7일 "질 관리를 목적으로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의사가 아닌 진료보조인력에게 심초음파검사 인증제를 도입하겠다는 대한심장학회의 행보는 심초음파에 대한 전공의 수련기회를 박탈하고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전협은 "전공의를 위한 제대로 된 심초음파검사 교육은 전무한 채, 비의사에게 실시간 진단 도구인 초음파를 직접 시행하게 한다는 발상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이 과중한 업무에 쫓기고, 수술실에서는 PA 등의 진료보조인력에 밀려나면서 3~4년의 전공의 수련기간 동안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임상술기를 익히지 못한 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수련 과정에서 초음파와 내시경 등의 임상술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내과 전공의, 수련 기간 동안 백내장 수술을 한 번도 집도해보지 못한 안과 전공의, 맹장수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외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가 양성되고 있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전공의 A씨는 “병원에서 수없이 많은 심초음파검사가 이뤄지나 일부 본인 시간을 내어 교육을 해주시는 지도전문의 외에는 체계적인 심초음파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며 "초음파라는 커리큘럼이 있지만, 실제로는 병동 업무에 치여 교육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고 전했다.

A씨는 “매일 여러 방에서 심초음파가 돌아가지만 순환하며 담당하는 전문의 1명 말고는 대부분 소노그래퍼라고 불리는 직종에 의해 검사가 이뤄진다"며 "전문의는 판독만 하는 현실이라 심초음파 역시 전문의에게 배우지 못하고 타 직종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서러운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수한 의사인력 양성이라는 대학병원의 중요한 존재이유를 잊고 돈벌이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저수가 체계와 의료전달체계 부재 등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로 대형병원도 생존을 위한 과잉진료로 내몰리고 있으며, 교수들도 수술건수 경쟁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술을 할 때 숙련도가 높은 펠로우(임상강사, Fellow)나 경험이 많은 PA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면서 전공의들이 제대로 술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심장학회가 보조인력 인증제도를 추진 중인 심포음파의 경우 의사 외에 다른 인력이 단독으로 시행하면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병원에서 관행적으로 소노그래퍼가 이를 수행하고 있으며, 전공의 교육 대신 숙련된 소노그래퍼를 고용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교수나 선배 전공의가 아닌 소노그래퍼에게 심초음파를 배우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주최로 열린 '전공의를 위한 심장초음파 강좌' 모습. 사진 제공: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주최로 열린 '전공의를 위한 심장초음파 강좌' 모습. 사진 제공: 대한전공의협의회.

대전협이 지난 2016년부터 시작한 심장초음파 강좌가 전공의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심초음파 강좌는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모집하면 몇 분만에 정원이 채워질 정도로 신청 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전공의들이 술기교육에 목말라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장학회의 보조인력 인증제도 도입 추진은 전공의특별법 시행과 맞물려 임상술기 역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수련교육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도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수련병원 전공의 B씨는 “내과 전공의 수련과정에 초음파 교육이 의무화됐고, 심초음파검사의 비중은 복부, 갑상선, 골관절 등 각종 초음파 검사 횟수를 합친 것과 동일하다”며 “초음파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전체 초음파 교육의 절반을 차지하게 해놓고 이렇게 '심초음파 보조인력 인증제도를 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전협은  이번 논란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지난 16일부터 내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심초음파 관련 설문조사에 착수했다.

이승우 대전협 회장은 “병동 업무에 치여 심초음파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공의들의 제보가 잇따른다. 직접 시술을 해보기 위해서 지도전문의가 아닌 다른 직원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 회장은 "내과학회에서도 심초음파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해오고 있으나 최근 심장학회 행보는 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의 스승인 교수님들로 구성되어 있을 학회에서 전공의 수련에는 관심이 있기나 한지, 후배 의사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답답한 심정"이라며 "과연 대한민국 전공의 수련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