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혈액관리학회, PBM 중요성 강조...보건당국도 수혈 적정성 평가 검토

[라포르시안] "이번이 네 번째 학술대회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환자혈액관리(Patient Blood Management, PBM)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됐다."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엄태현 회장(인제대 백병원)은 지난 14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제4차 학술대회 관련 기자간담회를 통해 환자혈액관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PBM은 혈액이 부족할 때 수혈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최선의 치료 전략을 다학제로 접근하는 시스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혈을 거부하는 특정 종교 환자들의 치료 결과가 더 좋다는 경험이 PBM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국내에서는 2014년 대한환자혈액관리연구회가 창립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엄태현 회장은 "PBM은 수혈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환자 혈액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면서 "혈액이 부족할 때 보충 수단이 수혈인데 과다하게 수혈했을 경우 오히려 기대보다 부작용 유발할 수 있어서 적정 수혈이 중요하다. 필요한 만큼 수혈하고 환자 스스로 회복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우 고문(국립암센터)은 "가능하면 환자 스스로 혈액을 만들어내게 하고, 보조요법을 통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학제 노력"이라며 "혈액이 필요한 경우라면 써야 하지만 최소한으로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학회에 참석해 특강을 한 호주 시드니대 제임스 이스비스터(James Isbister) 교수는 과도한 수혈은 오히려 환자 상태에 나쁘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비스터 교수는 "20세기들어 수혈이 중요한 치료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과연 사람들에게 좋기만한 것인지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살펴봤더니 환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의사는 항상 환자를 위해 좋은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에서도 처음에는 의사들의 저항이 있었다.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며 "호주는 실제로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들, 수술을 다루는 마취과의사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PBM이 급속히 확산됐다. 데이터가 확신을 줬다"고 말했다. 

과도한 수혈은 환자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문도 속속 나오고 있다. 

엄태현 회장은 "수혈이 환자의 사망률, 입원률, 입원기간, 감염률 등 아웃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발표됐고 이제는 정설이 됐다"며 "다만 국내 데이터가 많지 않은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앞으로 국내 데이터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 회장은 적절 수혈의 기준에 대해 "분명한 것은 지금 의사들이 생각하는 기준보다 낮다"며 "가장 좋은 것은 수혈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으로, 수술 전 빈혈을 교정하고 수술때 출혈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술 후 빈혈이 오더라도 환자 스스로가 혈액을 생성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고문은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 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비교한 호주 데이터를 보면 재원기간과 수술 합병증이 30%  가량 낮았다. 미국 외과학회 보고는 30~50%까지 차이가 난다고 했다"면서 "국내에서도 위암 수술 환자 생존율에 차이가 났다. 수혈은 장기이식과 같은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척 관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 의료현장에서도 환자가 흘린 피를 모아 걸러서 다시 주입하도록 돕는 기기가 등장했고, 수술 현장에서도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김경환 학회 재무이사는 "수술 중 출혈을 줄이기 위해 최소칩습수술을 하고 자동봉합기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수술 중 나오는 혈액을 거즈로 닦거나 흡입해서 버렸지만 지금은 적혈구만 따로 모아 생리식염수로 씻어 환자에게 다시 넣어준다"며 "수술을 마무리할때 지혈이 충분치 않아 출혈이 있으면 지혈제를 수술 부위에 바른다. 최근에는 혈액수집기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건강보험에서 이런 노력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김경환 재무이사는 "지혈제나 수술 중 출혈을 줄이는 기구에 대해 건강보험이 충분히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의사와 환자 입장에서는 출혈을 줄이는 여러 치료방법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학회는 출혈을 줄이는 노력에 드는 시설과 장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꾀하는 한편 의료기관 질평가 항목에 수혈 관련 항목이 포함되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엄태현 회장은 "환자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수혈관리를 하면 5~10% 가량 혈액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남용을 줄이면 공급이 줄더라도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며 "지난해 호주에서 나온 논문은 적혈구 사용량을 30%까지 줄였다고 했다. 국내에서 PBM이 확대되고 정부에서 적극 지원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질병관리본부는 수혈 적정성 평가 후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학회에 의뢰하는 등 보건당국도 서서히 PBM에 주목하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