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응급실, 환자 살리는 공간으로 새 판 짜려고 노력한 인물"

[라포르시안]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설 전날인 지난 4일 병원에서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8년 마지막 날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윤 센터장의 비보가 날아 들면서 의료계가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고 윤한덕 센터장은 설 연휴를 맞아 의료기관 휴무에 따른 의료공백에 대비해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응급의료 관련 업무 조정 및 지원으로 업무부담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앙의료의료센터가 운영하는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은 24시간 가동체제로 설 연휴 등에는 관련 업무 부담이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고 윤한덕 센터장은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지난 1일부터 퇴근하지 않고 병원내 집무실에 머물던 중 급성심정지가 찾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400여개 응급의료기관을대상으로 응급진료 정보를 수집하는 체계인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구축도 주도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에서 수집된 자해·자살시도자 데이터를 제공하는 등 자살예방정책 수립 근거마련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자살 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윤 센터장은 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윤 센터장은 응급실 의료진에게 있어 가장 골치 아픈 업무 중 하나인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해 줄 병원을 섭외하고 이송체계를 정비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할 수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 내부 모습. 사진 제공: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 내부 모습. 사진 제공: 국립중앙의료원

실제로 2013년 중앙응급의료센터 조사에 따르면 병원 간 이송이 지연되는 환자의 19.1%는 이송할 병원을 제시간에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을 통해 2014년 11월부터  ‘응급환자 이송병원 안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 명절 연휴 때면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

그러다 보니 2017년 최장 열흘 간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윤 센터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연휴가 열흘,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국종 아주대학교 의대 교수(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장)는 고 윤한덕 센터장에 대해서 '머릿속에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생각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펴낸 '골든아워'라는 책에서 <윤한덕>이라는 별도의 챕터를 두고 언급할 정도로 윤 센터장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윤한덕은 응급실을 ‘지옥’ 그 자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옥을 헤매본 사람은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화염을 피해 도망치거나 그 나락에 순응하거나 그 모두가 아니라면 판을 뒤집어 새 판을 짜는 것"이라며 "윤한덕은 셋 중 마지막을 택했고,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맡아 전국 응급의료체계를 관리하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그런 윤한덕 앞에 그 엉망인 시스템의 원흉인 외과의사가 외상시스템을 문제 삼으며 나타난 것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 걱정을 쏟아내는 그의 눈빛이 형형했다"며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속에 넣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고 했다.

또한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구출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국내로 이송해 치료하려고 했을 때 윤한덕 센터장이 '진심으로 내 처지를 걱정했다'라고 자신의 책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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