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정심 서면심의 강행에 가입자·공급자 등 거센 반발...민노총 "분명히 반대한다" 경고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마련했지만 뒷말이 많다. 종합계획 수립 과정의 적절성과 그 내용의 적절성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빠진 채 '복지부'만 강조됐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건강보험 종합계획은 국민건강보험법 관련 규정에 따라 처음 마련했다. 지금까지는 정부 차원에서 필요에 따라 단편적인 내용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이나 보험재정 운영계획을 수립해 왔다.

이번에 마련한 건강보험 종합계획은 이름 그대로 건강보험정책의 기본목표와 추진방향, 보장성 강화 추진계획, 중장기 재정 전망 등의 내용을 두루 담았다.

복지부는 종합계획을 수립할 때 가입자 및 공급자 단체, 시민사회,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20여차례에 걸친 간담회와 국민참여위원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2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건강보험 종합계획 안건 의결이 보류됐다.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의견수렴이 제대로 안 됐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발표한 종합계획을 놓고 의료공급자와 가입자 및 시민단체에서는 "의견수렴도 없이 졸속으로 마련했기 때문에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거나 "처음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반발이 거센 가운데 복지부는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지난 24일 건정심에서 종합계획의 서면 심의를 마쳤다.하지만 서면심의를 마친 종합계획은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그대로 두고 일부 문구를 수정하거나 내용을 추가하는 수준이었다.

"종합계획, 폐쇄적인 논의 과정으로 수립...수용성 크게 떨어져"

의료공급자와 가입자 단체에서는 복지부의 이런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복지부에 제출한 서면심의서를 통해 "건정심 회의에서 건강보험 종합계획 수립 과정과 절차, 내용상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다시 의견서를 통해 수정보완 의견을 제시했지만 거의 반영이 안 됐다"며 "이번 1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서면심의로 마무리하는 곳에 민주노총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이 제기한 의견은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국민소통 부재 비판 및 건정심 대면심의를 통한 최종 확정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해 법률 개정을 통한 국고지원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총량중심 보상체계, 보험자 병원과 공공의료 확충, 상병수당 도입 ▲건강보험 관련 규제 완화 정책 반대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을 계기로 양질의 보건의료인력 확보 유지 정책 병행, 사람 중심 수가체계 ▲가입자 중심의 건정심 거버넌스 전면 개혁 및 투명성 보장 등이다.

가입자단체에 따르면 건강보험 종합계획 관련 자문단회의는 작년 5월 4일부터 8월 24일까지 총 4차례 열렸다. 이후 작년 1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건정심 소위원회가 몇 차례 열려 안건 검토를 했지만 사전 자료 미배포와 당일 검토 후 당일 자료수거 등으로 가입자단체 내부적으로 내용 공유는 물론 토론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복지부가 지난 10일자로 개최한 건강보험 종합계획 수립 관련 공청회도 참석 대상이 계획 수립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일부 전문가와 언론인에 그쳤다. 복지부는 이 공청회를 열고 이틀 뒤인 12일 열린 건정심 전체회의에 종합계획 의결을 추진했다.

민노총은 "1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은 시기적으로나 경제·사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논의 기간이 매우 짧았고 그 과정 또한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다"며 "이런 파행적인 과정을 거쳐 확정되는 계획안과 그 속에 담긴 보험료 수가 인상 계획 등을 가입자와 국민들이 얼마나 수용할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가입자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도 지난 25일 성명을 내고 복지부가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졸속으로 서면 심의했다고 비난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건강보험 30년 만에 처음으로 법률에 의해 입안된 종합계획은 ‘복지부에 의한, 복지부를 위한, 복지부의 종합계획’이라 할만하다"며 "복지부가 계획을 수립하고 복지부가 심의를 주도하고 복지부가 결정하는 종합계획"이라고 꼬집었다.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절차와 내용이 모두 '졸속'이라고 주장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절대적 기여자인 가입자들의 의견 수렴은 지난 4월 10일 열렸던 공청회가 전부였다"며 "이날 종합계획의 전체가 처음 공개됐고 가입자 측의 항의로 그 후 건정심을 통해 의견을 받았다지만 그저 졸속 처리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형식적 조처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4월 22일 국회 앞에서 건강보험 종합계획 졸속 서면 심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4월 22일 국회 앞에서 건강보험 종합계획 졸속 서면 심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부 책임은 배체한 체 가입자들에게만 보험료 부담을 지웠다고 주장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 앞으로 노동자와 서민들은 보장성이 올라가든 그렇지 않든 매년 엄청난 보험료 부담을 져야 한다. 향후 5년간 경제성장률과 소득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매년 3.49% 인상, 그 이후로도 매년 3.2%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며 "정부가 미납한 엄청난 규모의 미지급 국고지원금에 대한 납부계획은 찾아볼 수 없고, 앞으로 법에서 정한 국고지원을 지킬 것이라는 약속도 없다"고 했다.

종합계획에 지불제도 개편이나 의료공급자에 대한 통제기전은 빠지고, 의료계가 주장하는 '저수가 프레임'에 기반한 수가운영 방식이 반영됐다는 지적도 했다.

운동본부는 "의사협회가 종합계획의 공급자 퍼주기도 모자란 듯 정부를 성토하는 것도 봐주기 힘들다. 복지부와 건정심은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공급자 측에 대한 충분한 배려로 공급자 측 민원 해결사 역할을 했다"고 비난했다.

문재인 케어를 통해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했다.

운동본부는 "문재인케어가 공언한 보장률 70퍼센트 달성조차 의문시되고 있다. (문케어 시행 후)2년이 지난 지금 보장률이 최소 3%는 올라갔어야 할 텐데, 복지부는 무슨 이유인지 문케어 2년에 대한 중간평가도 없이 종합계획을 급하게 밀어붙였다"며 "이번 종합계획은 문케어를 거의 그대로 반영해 재정만 6조 원가량 더 늘린 것"이라고 지적하며 종합계획 전면 재검토를 거듭 촉구했다.

의사협회도 지난 24일 복지부가 건강보험 종합계획의 서면심의를 강행한 것을 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의협은 "복지부는가 마련한 종합계획에는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없고 복지부의 목소리만 담고 있기 때문에 이 계획안이 비난받고 비판받고 있는 것"이라며 "정책 결정의 직접적 당사자인 국민과 의료계의 제대로 된 의견 수렴도 하지 않고 공허한 정부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정책 방향인지, 누구를 위한 정책이고 그러한 정책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인지"를 되물었다.

종합계획안을 폐기하고 정책의 실행을 담보할 수 있도록 의료계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제대로 된 계획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의협은 "건강보험 종합계획안이 전면 철회되지 않고 서면심의라는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절차를 통해 확정된다면 이를 복지부의 만행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통해 복지부가 건정심을 관치의료 추진을 위한 거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성토하며 건정심의 구조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