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에 '건강관리서비스업' 허용 추진...국민 건강증진·질병 예방은 국가책무로 법에 명시

[라포르시안]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만지작거리며 국민의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실제 목적은 건강관리서비스의 영리화라는 게 분명해졌다.  

그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금융당국이 건강관리서비스 상업화를 위해 손발을 맞추고 있다.

먼저 복지부가 지난 5월 의료법 상 '의료행위'와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를 구분하는 판단기준과 사례를 담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1차)'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비의료기관도 의료법상 의료행위가 아닌 건강정보의 확인 및 점검, 비의료적 상담·조언과 같은 건강관리서비스는 모두 제공할 수 있다. 건강관리서비스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포괄적이어서 의료법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업계의 요구와 만성질환 증가 등에 따른 국민의 다양한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그러자 금융당국이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보험회사 건강관리서비스업 진출을 허용하고, 보험상품과 연계해 건강관리기기를 제공할 수 있도룍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를 주제로 열린 간담회에서 보험상품과 건강관리서비스를 연계하는 내용의 정책적인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보험회사의 건강관리서비스업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등의 사례처럼 해당 업을 보험회사의 부수업무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복지부가 마련한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취지에 맞춰 보험회사가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우선 올 하반기 중 보험가입자만을 대상으로 건강관리서비스업의 부수업무를 허용하고, 내년에는 일반인 대상의 건강관리서비스업 허용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금융위원회의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 방안' 보도자료 중에서.
이미지 출처: 금융위원회의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 방안' 보도자료 중에서.

뿐만 아니라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을 개선해 건강증진 효과를 통계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건강관리기기는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직접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심박수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 같은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를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와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업계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를 통해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의 질병발생 확률, 조기 사망확률 등 사고위험이 낮아지면서 손해율이 낮아지고, 건강관리서비스업 진출과 신상품 개발 등을 통해 보험산업의 성장이 가능해진다"며"국민의료비 절감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및 헬스케어 산업 발전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연 그럴까 싶다.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 조치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의 건강관리 책무를 민간기업의 영리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전락시킬 것이란 우려가 높다. 

현행 보건의료기본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이 공적보험의 영역이며, 국가의 책임이란 점을 분명하게 명시해 놓았다.

보건의료기본법은 제31조(평생국민건강관리사업)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생애주기별 건강상 특성과 주요 건강위험요인을 고려한 평생국민건강관리를 위한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이 평생국민건강관리사업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명시했다.

국민건강증진법에서는 '국민의 건강관리'를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과 의무를 규정해 놓고 있다. 특히 제19조(건강증진사업등)에 따르면 국가 및 지자체는 국민건강증진사업에 필요한 요원 및 시설을 확보하고, 그 시설의 이용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도 국민의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이 공적보험의 영역이며, 국가의 책임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건강보험 재정 문제 등으로 국가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 조치는 국가의 책무인 국민 건강증진을 위한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을 민간기업의 돈벌이로 허용하겠다는 셈이다.

그동안 국가가 제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활성화하지 못한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 서비스를 보험업계의 새로운 사업영역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특히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정책 추진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민간기업이 건강관리서비스기관을 설립·운영하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건강관리서비스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의료민영화 논란이 제기되면서 입법이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법 제정도 아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관련 산업 육성을 추진해 의료계와 시민단체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적폐 청산'을 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의 의료영리화 적폐를 그대로 따라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는 비의료기관의 건건강관리서비스 제공 활성화가 미국식 의료민영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달 2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은 예방, 재활, 검진, 교육, 상담 등 국민건강보험이 공적으로 제공할 영역을 건강관리서비스로 묶어서 민간기업 돈벌이가 가능하도록 민영화한 것"이라며 "건강관리상품 과잉으로 오로지 보험회사와 식품 등 건강관리 관련기업, 웨어러블기기 업체 돈벌이만 시켜주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양 단체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활성화는 민간보험사가 개인질병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고, 건강 증진과 일부 치료영역을 발판으로 민간보험사와 국민건강보험이 경쟁하는 토대를 만들게 된다"며 "결국 민간보험사가 병원을 소유해 가입자에게 건강증진, 예방, 치료, 재활까지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미국식 의료민영화 시스템으로 향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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