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취업규칙에 괴롭힘 행위 대응절차·피해자 보호조치 등 반영 의무화
간호사 등 인력부족 근본원인 해소돼야

[라포르시안]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태움 금지법'으로도 불리는 개정 근로기준법은 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 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이후 간호사 태움 문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입법이 추진됐다. 작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16일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발생 시 조치에 관한 사항 등을 정해 취업규칙에 필수적으로 기재하고 사업장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작성·변경한 취업규칙을 법 시행 전에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을 신고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신고받거나 인지하면 지체없이 조사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되면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은 처우를 해선 안 되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병원을 비롯한 각 사업장(상시 근로자 10인 이상)은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에 들어가기 전까지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발생 시 조치에 관한 사항 등을 정해 취업규칙에 필수적으로 반영하고 이를 사업장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에는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고충상담 ▲사건처리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가해자 제재 ▲재발방지대책 등을 명시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예시. 출처: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예시. 출처: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고용노동부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2월 어떠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마련했다.

매뉴얼에는 직장 괴롭힘 측정도구인 'KICQ'(Korean Interpersonal Conflict Questionnaire)와 일본·호주 등 해외 매뉴얼 등을 바탕으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포섭될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예시해 놓았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함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나 병가, 각종 복지혜택 등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 행사 ▲정당한 이유 없이 부서이동 또는 퇴사를 강요함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을 가함 ▲욕설이나 위협적인 말을 함 ▲다른 사람들 앞이나 온라인상에서 나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함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함 ▲업무에 필요한 주요 비품(컴퓨터, 전화 등)을 주지 않거나, 인터넷·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함 등을 제시했다.

제시된 유형 중 상당수는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간호사 태움 문화와 유사하다.

작년 1월 대한간호협회가 보건복지부와 함께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직장내 괴롭힘을 겪은 간호사들이 꼽은 구체적 사례로 ‘고함을 치거나 폭언하는 경우’, ‘본인에 대한 험담이나 안 좋은 소문’, ‘일과 관련해 굴욕 또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 등을 꼽았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올해 실시한 '2019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의료용품과 비품을 간호사 등 직원들의 사비로 구입하게 한 사례가 22.8%에 달했다. 입원 환자 수의 변동에 따라 원하지 않는 날짜에 휴가를 강제로 쓰게 한 사례가 46.9%이며, 경조사 등 인력부족에 따라 근무시간이 수정된 사례도 48.4%로 확인됐다.

근무시간 조정이나 강제 휴가사용 외에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기부금, 기금, 회비 등 납부 강요(26.7%) ▲업무와 무관하게 사적인 일 지시(15.4%) ▲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16.2%) 등의 직장내 괴롭힘 행위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병원들도 취업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부는 기업이 참고할 수 있도록 지난 5월 말 '직장내 괴롭힘 관련 취업규칙 표준안'을 마련했다.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바탕으로 기존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규정을 추가하는 경우와 별도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규정을 제정하는 경우로 구분해 표준안을 제시했다.

의료기관을 비롯한 기업들은 노동부가 마련한 표준안을 참고해 직장내 금지되는 괴롭힘 행위의 정의, 괴롭힘 발생시 구체적인 사건처리 절차 등을 추가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다만 대형병원 등 노동조합이 설립된 의료기관은 취업규칙 개정에 대한 노사합의가 필요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병원에서의 간호사 태움 같은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인력부족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괴롭힘 방지법이 효과를 내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노조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의료기관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있게 작동할지는 의문"이라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고 있는 의료기관에 만연한 폭언, 폭행, 직장내 갑질, 괴롭힘 등의 감정노동은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정부의 대응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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