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성 (건강권운동 활동가, 건강세상네트워크 고문)

[라포르시안] 재작년, 보건복지부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의 최근 3년간의 회의자료와 회의록을 정보공개청구 했는데 가타부타 답이 없이 시간만 질질 끌다가 받은 자료가 고작 건정심 회의결과 요약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또박또박 '회.의.록'이라고 가르쳐주고 재청구했더니 2주가 지나도록 여전히 ‘처리중’이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몇 주가 지나서야 부분부분을 요약한 회의자료와 회의록을 받았다. 온전한 회의록과 회의자료가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부터 청구하면 주겠지 생각하고 청구한 건 아니다. 안주면 정보공개청구 소송할까 해서 한 것인데 복지부는 시간을 최대로 끌다가 결국 준다는 게 그다지 쓸데도 없는 요약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건정심만 유독 이렇게 꽁꽁 싸매고 운영하는 게 아니다. 그때 건정심 회의록을 청구하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회의록을, 건강보험공단에는 재정운영위원회 회의록을 함께 청구했지만 모두 비공개로 거절당했다. 기관의 이름은 달라도 위원회를 운영하는 방식과 관점은 동일했던 것이다.

건정심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위원회다. 건강보험 수가를 비롯해서 약가 및 보험급여 여부 등 무려 한 해 60조 원의 건강보험 재정의 사용을 최종 결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중요한 회의에서 누가 어떤 의견을 내서 안건이 결정됐는지 외부에서는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건정심이 생긴지 20년이 다 되어가건만 회의자료는 물론이고 회의록조차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들은 자신이 낸 돈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결정되는지도 모르고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건정심은 2000년 이후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위원회다. 하지만 이후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이를 달래기 위해 수차례 보험수가를 인상했고, 그 여파로 보험재정에 문제가 생기자 정부는 건정심 구성을 새로 만들면서 이 위원회에 더 큰 권한을 위임했다. 이후 정부는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건정심을 보험료율 조정과 급여 여부 결정 등 건보 재정의 핵심적인 사안을 결정하는 '슈퍼 울트라 파워'의 위원회로 재편시켰다. 위원회 구성도 공익 대표, 의료계 단체 대표, 가입자 단체 대표가 각 8인씩 들어가 있고 정부에서 복지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아 총 25인으로 재구성했다. 이것으로 인해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는 허울뿐인 ‘껍데기’로 전락한 것이다.

대개의 경우 제반의 정부 위원회 구성은 언뜻 보면 상당히 균형 있게 구성된 것처럼 보이는, 건정심과 같은 그런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가입자 : 공급자 : 공익 = 1/3 : 1/3 : 1/3의 구성이다. 좋게 보면 의료계와 가입자의 이해 충돌로 발생하는 문제를 공익 대표와 정부가 중간에서 적절히 중재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고 더 나아가서는 중요한 문제를 사회 내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사회적 대타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사안에 맞게 정부 권력이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의 중간에 서서 그때그때 얼굴을 바꾸는 캐스팅 보드 역할을 즐기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관료들이 정권의 성격과 사안에 따라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정부 입맛에 맞게 운영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위원회는 대부분의 결정이 정부 입맛대로 결론난다.

사회보험 체계를 운영하는 국가 중에 이런 방식으로 건강보험재정을 운영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입자 권한을 축소하고 정부와 공급자가 비정상적으로 권한을 갖는 이런 구조는 한마디로 매우 기형적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보험수가는 보험자(건강보험)와 공급자단체(의료계)가 협상해야 할 문제다. 자기들이 내야 할 보험료도 제대로 안내는 정부가 캐스팅보드를 쥐고 흔들면서 사회적 협의를 운운할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건강보험을 조세 방식으로 전환하든지. 

보건의료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할 필요는 단지 건정심의 구성이나 운영 방식을 넘어서서 변화된 시대와 상황이 의료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요구하는 것이다. 건정심과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를 해체하고 가입자회원회를 강화해 건강보험이 가입자 중심의 체계를 갖게 하자. 그래서 가입자 중심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하자.

강주성은?

1999년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후 골수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았다. 2001년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주도했고, 한국백혈병환우회를 창립한 후 보건의료운동가들과 함께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만들어 적극적인 환자권리운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라는 책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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