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34곳서 시행 중이거나 동입 예정..."환자 안전 위협하고 수련환경 개선에 악영향"

[라포르시안] 전공의 수련시간을 주당 80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전공의법'의 규정이 2017년 12월 말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후 수련병원이 ‘전자의무기록(EMR)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전공의의 주당 근무시간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EMR 접속을 차단함으로써 근무시간 규정을 준수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EMR 셧다운제가 전공의의 주당 근무시간 규정을 준수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전공의들을 불법으로 내몰고 환자안전까지 위협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워낙 많은 환자를 담당하는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경우 근무시간 중 해야할 업무를 다 끝내지 못할 때가 다반사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동료 전공의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빌려 EMR에 접속한 후 동료의 이름으로 수술기록 등을 작성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엄연히 의료법 위반이다. 의료인이 직접 진찰하지 않고 진단서 등 증명서를 발행하거나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지난달 26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과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박지현)가 공동으로 개최한 전공의 근로시간 관련 토론회를 통해 공론화됐다.

당시 토론회에서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EMR 셧다운제 도입으로 전산 기록상 전공의법이 준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처 담당 환자에 대한 진료를 끝내지 못한 전공의는 동료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처방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대전협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42곳 중 EMR 셧다운제를 시행 중이거나 올해 시행 예정인 곳은 34곳(80%)에 달했다.

지난 8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의 EMR 접속기록 확인결과, 동일한 계정으로 병원 곳곳에서 동시다발적 처방이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정기현 원장은 "개인 아이디를 공유해 처방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변했다. 

근무시간이 끝난 후 동료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EMR에 접속하고 진료기록을 작성하는 일이 생기는 건 의료업무의 특수성 때문이다.

박은혜 대전협 수련이사는 “담당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끝난 경우 당직 전공의가 해당 업무를 이어서 대신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의료업무 특수성을 고려할 때 당직 전공의에게 위임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박 수련이사는 “EMR 셧다운제는 전자의무기록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어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다"며 "특히 기록상의 의사와 실제 의료행위를 한 의사가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이로 인한 의료행위 주체의 불분명함이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MR 셧다운제가 근본적으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EMR 기록에서만 초과근무 흔적을 지움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가리고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박 수련이사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처우에도 큰 문제가 생긴다”면서 “전자기록상의 거짓으로 기록된 전공의 근무시간은 수련환경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한 명확한 근무시간 산정을 방해해 전공의가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당직 수당 등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한편 대전협은 오늘(19일) 열리는 정기대의원총회에서 EMR 셧다운제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진현 대전협 부회장은 “전공의법을 준수한다는 명목으로 점차 EMR 셧다운제를 도입하는 병원이 늘고 있는데 서류상으로만 지켜지는 전공의법은 전공의법 미준수보다 못하며 결국 제2의, 제3의 전공의 과로사가 반복될 것”이라며 "수련환경 왜곡에 의료법 위반까지 조장하는 EMR 셧다운제는 상황이 더 악화 되기 전에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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