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 앞두고 찬반 격돌..."가입자 편의 증진" ↔ "보험사 이익 위한 것"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도 커지는 민간의료보험 시장..."모순적인 상황"

[라포르시안]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의료기관에 실손보험금 청구 대행을 강제화하는 법안의 국회 처리를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21~22일 열리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정무위에는 작년 9월과 올해 1월에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과 전재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고용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요양기관이 그 요청에 따르도록 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해당 서류의 전송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전재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도 비슷한 내용이다. 이 개정안은 보험회사로 하여금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거나 이를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보험계약자·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담았다.

보험업법 개정안을 놓고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실손의료보험 청구전산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했으나 최근 '동의'로 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안 처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입자 편의 증진 아닌 보험회사 환자정보 취득 간소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보험업법 개정에 대해 의료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청구 간소화가 가입자의 편의 증진이 아니라 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4일 관련 성명서를 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되면 일차적으로는 환자가 보험금을 신속하게 수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보험사는 환자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새로운 보험 가입과 기존 계약 갱신을 거부하거나 진료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게 된다"며 "환자의 보험청구 간소화가 아니라 보험회사의 환자정보 취득 간소화"라고 꼬집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운동본부)도 지난 1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업법 개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 법은 가입자들의 편의 증진으로 소액보험료 청구율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며 "실손보험사들이 찬성하는 이유는 의료기관의 환자 정보를 더 자세히, 대량으로, 전산 형태로 전송받는 것이 목적이며, 보험사가 환자 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확보하려는 것은 가입거절이나 지급거부 등에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종이문서로 제출해야 보험사 꼼수 막을 수 있다는 의료계 주장 이해불가"

반면 일부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에서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MCA 등의 단체는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소비자를 위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실손보험의 청구를 소비자가 누락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청구 과정이 복잡하고, 이에 더해 여러 증빙서류를 구비하기가 번거롭다는 것으로 2018년 4월 조사에 따르면 통원치료의 경우 32.1%만이 청구를 하고 있다"며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 개정안이 통과 되면 소비자의 편익이 급격히 증진되고, 자원낭비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방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서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의 본질은 환자에게 종이문서로 제공하던 증빙자료를 환자의 요청에 따라 전자문서로 제공하는 것"이라며 "보험사에‘종이’문서로 의료정보를 전달해야만 보험사의 꼼수를 막을 수 있다는 의사협회의 논리는 이해불가"라고 비난했다.

보험사, 종이 청구서류 수기입력 따른 업무·비용부담 상당해

한편 보험사 입장에서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실손의료보험 관련 청구서류의 수기입력에 따른 불편함과 비용 부담을 크게 덜 것으로 보인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3,800만명에 달하며, 2017년 기준으로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건수는 3,100만건으로 집계됐다.

실손의료보험은 미리 정해진 보험금 액수만큼만 지급하는 정액형보험과 달리 건별로 보험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구비서류가 복잡하고 청구 과정도 까다로운 편이다. 이런 이유로 아예 소액의 경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보험금 청구를 위해 제출한 종이서류를 수작업으로 다시 전산에 입력하는 데 따른 업무 및 비용부담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에 적극 나서는 건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환자 정보를 대량으로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가입거절이나 지급거부 등에 활용하기 위한 의도라기 보다는 청구서류의 수기입력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한 측면이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일부 보험사의 경우 개별 병원과 계약을 맺고 모바일앱 등을 활용해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전체 보험사와 요양기관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청구 절차 간소화를 위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달 35일 국회에서 열린 '인슈어테크와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토론회에서 조용훈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양기관이 온라인으로 증빙서류를 보험사로 직접 전송할 수 있게 하고, 요양기관의 전산망을 통합해 연결하는 보험중계센터가 운영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청구 간소화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2018년 7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보험개발원에서 열린 실손의료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를 시연 행사 모습.  이 행사에는 김연아 전 국가대표 피겨선수가 참석해 KB손해보험 앱 시연을 했다. 사진 제공: 금융위원회
2018년 7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보험개발원에서 열린 실손의료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를 시연 행사 모습.  이 행사에는 김연아 전 국가대표 피겨선수가 참석해 KB손해보험 앱 시연을 했다. 사진 제공: 금융위원회

문케어 추진에도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커지는 게 진짜 문제

문제인 정부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면서 "건강보험 하나로 걱정 없이 치료받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문케어에 따라 건강보험 급여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따라 실손보험과 같은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축소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지는 추세다. 정부가 새로운 민간의료보험 시장 창출을 위한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2017년 11월에 헬스케어 서비스와 보험산업의 융․복합 활성화를 목표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개발·판매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상 ‘의료행위’와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를 구분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하면서 건강관리 영역을 민간시장에 맡기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4월부터는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유병력자가 가입할 수 있는 실손의료보험 상품도 출시됐다.

실제로 실손보험 가입자 수가 건강보험 가입자 수보다 더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8년 건강보험통계연보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으로 건강보험 적용인구 5,107만 명이다. 이 중에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를 제외하면 실제 건강보험 가입자 수는 약 3,155만명(직장 가입자 1,747만9000명, 지역가입자 1,408만2,000명)이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2019년 6월 총 3,800만명으로 가입자 수로만 따지만 건강보험보다 더 크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의료공공성과 의료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을 내다보니 보건의료 분야에서 큰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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