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노동건강연대 회원, 예방의학 전문의)

[라포르시안]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살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산재사망 사건을 돌이켜볼 때,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던진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동환경 개선의 시작을 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을 찾은 노동자에게 주로 하는 업무와 사용하는 물질을 의료인이 묻는다면 보다 적정한 진료를 할 수 있고, 다친 이후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직업력을 묻는 의료전문가의 질문은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장의 의료전문가가 적합한 치료와 재활 및 예방을 위해 환자의 직업을 묻고, 직업이 건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격주로 연속기고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주>

요즘 세상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이겠냐만, 이 회사에는 의미 있는 변화였다. 전자 제품 조립 공정을 담당하는 회사였는데, 불과 몇 개월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공장은 분진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 때문에 노동자 건강을 위해 방진마스크가 반드시 필요한 회사였다. 공장 곳곳에 붙어있는 '방진마스크 착용 포스터'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포스터는 구호에 불과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스크 착용 권고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직원들이 벗어도 회사에서 다시 착용케 지시해야 한다.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안해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원칙이 지켜졌다. 그게 올해 3월 초의 일이었다.

담당자는 요즘 가장 어려운 것이 마스크를 구하는 것이라며, 인맥을 총동원해서 비싼 값이지만 마스크를 구매해서 공장에 공급할 수 있었다고 공치사를 했다. 아마도 평소에 모든 노동자가 마스크를 사용하는 회사였다면, 충분한 재고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코로나19 때문에 큰 돈을 들여 마스크를 사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담당직원의 안내로 바니싱, 배합 등 여러 공정을 확인했다. 모든 공정에 방독마스크를 쓰게 되었으나 단 한명을 빼면 아무도 쓰지 않았다. 대다수의 공정에서 화학약품(안료가루와 안료를 녹이는 솔벤트, 그리고 혼합물)에 국소배기장치 없이 완전 노출되어 있으며, 냄새가 심하게 발생했다. 가루 안료를 쓰는 공정에서는 파란 안료 가루를 큰 통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작업을 잘못해서(담당직원의 말), 뿌옇게 파란 가루가 실내에서 진하게 구름처럼 퍼지는 것을 봤다. 3명의 작업자 중 1명만 방진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폐가 다 파랗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방문한 안전 쪽 담당자의 방문보고서를 곁눈질해 봤는데 “개인보호구 착용 양호”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회사 안전관리자에게 보호구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자, 한 명 있지 않았냐고 변명을 했다. 담당 직원도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 원청회사의 작업환경도 여기와 비슷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인쇄물용 안료 공장 방문 기록, 2019년 4월]“

인쇄 공장의 내부 모습: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사용되고 있으나 보호구를 쓴 노동자는 없다(2019년 4월)
인쇄 공장의 내부 모습: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사용되고 있으나 보호구를 쓴 노동자는 없다(2019년 4월)

마스크로 대표되는 ‘개인보호구’는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중요한 항목이다. 사업주는 개인보호구를 지급하고 착용하게 해야 하며, 상시 점검하고, 수리해 줘야 하고, 교체해서 청결을 유지시켜야 한다. 노동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주어지는데, 사업주가 조치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 5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다. 누구라도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방진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하거나, 코로나19 환자가 있는 병동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장갑과 마스크와 같은 개인보호구 없이 일하는 것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은 개인보호구 착용 없이 일터에서 일한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까.

“들어가자마자 강한 유기화합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름 2m. 높이 1.5미터 정도의 수조에 절반정도 유기용매가 차 있었고, 유기용매는 혼합을 위해 회전하고 있었다. 수조는 후드 등의 배기시설 없이 완전히 오픈되어 있었다. 이런 수조가 8개 정도 있었다. 섞어 만든 페인트 혹은 유기물을 18L깡통에 옮겨 담는 기구에서는 소음도 발생했다. 노동자는 10명 정도였고, 개인보호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았다. 색소 가루를 섞는 노동자 한명만 방진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벽면에는 방독마스크 착용이라고 크게 경고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잠시 머무는 동안 두통이 발생했다.

생산관리 과장은 집진기 사용시 생산량이 2/3으로 줄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되풀이했다. 10년째 죽지 않고 일하는 분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관리자는 개인보호구 착용하면 불편하고, 일하기 힘들어서 노동자들이 안하는 것을 본인들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특수도료공장 방문 기록,2019년 3월]

많은 공장에서 유해요인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구조적 원인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유해한 물질을 쓰고 있으면 덜 유해한 것으로 바꾸고(대체), 유해 물질이 있는 곳을 격리시키거나 밀폐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해물질의 증기, 먼지를 맡지 않도록 오염원의 바로 위에서 환기를 시키거나(국소환기), 유해물질의 농도가 낮아지도록 신선한 공기를 공장 전체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전체환기). 개인보호구는 이러한 구조적 원인의 해결로도 새어나올 수 있는 유해물질을 막는 최소한의 수단이지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그러나 회사는 개인보호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유해물질 노출에 대한 대책을 제공했다고 자부하고, 착용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채로 작업장을 운영하면서, 보호구를 쓰기 어려운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착용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훈육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개인화 된다. 그런데, 지금 기업들이 호들갑 떨며 준비하는 마스크는 보건마스크 일까? 그 업무에 적합한 산업용 마스크일까? 

마스크는 유해 환경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도구다. 실제 의학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화학 공정이 포함된 작업장에서 마스크가 필요 없는 최적의 상황은 없었지만, 마스크조차 쓰지 있는 최악의 상황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녹록치 않은 작업 환경이지만, 우리는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는 무언의 사인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마스크는 '감염원으로부터 보호'라는 본연의 기능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상징성이 커졌다. 산업 현장에서도 '분진과 유해물질로부터의 보호'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이란 더 큰 의미로 마스크가 인식될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직업을 꼭 물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 일 하면서 도료를 흡입했는지, 환풍기는 어땠는지 등 환경을 묻고 기록해야 그의 병을 진짜로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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