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토론과 논쟁도 코로나 대책이다

[라포르시안] 한창 진행 중인 사회적 논란 한 가지. 곧 국내에 들어온다는 어떤 백신은 노인에게 효과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는 책임을 의사에게 미뤘고(“의사의 판단에 따라”라고 했지만, 모두 책임 회피로 받아들인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노인에게 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과학으로는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작은 책임이라도 지지 않을 목적으로 이렇게 결정했다면? 곧 발표한다니 두고 볼 일이지만, 이런 관료주의적 책임 회피를 막는 방법은 민주주의 실천이 유일하다. 어떤 의사결정이라도 당사자의 참여가 빠지면 책임은 온전히 관료와 현실 정치인에게 돌아가고, 관료제와 정치 논리는 당연히 ‘책임 최소화’ 전략을 택하기 마련이다.

이번 경우에는 백신 접종 사업의 ‘성공’ 여부와 함께 윤리 문제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접종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효과와 위험성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여부를 결정할 어떤 기회도 없는 상태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배제된다. 접종이 늦어지는 시간만큼 개인의 위험은 커진다.          

아울러, 정책과 윤리 모두에서 파급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른 나라 결과를 보고 노인 접종 여부 방침을 바꿀 수 있다고 하겠지만, 이런 결정과 이유는 두고두고 ‘음모론적’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처음 이렇게 결정하면 앞으로도 노인들은 이 백신을 꺼릴 것이고, 그 사이 여러 생명과 안전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이뿐인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곧 시작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불확실한 것투성이고, 누구에게 어떻게 접종할지도 소문만 무성하다. 11월까지 국민 70%를 접종해 집단면역을 형성하겠다는 정부 계획도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계획’일 뿐이다.

정부를 탓할 여유가 없다는 점도 있지만, 관료제의 능력과 효율성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 핵심이다. 백신 접종은 결국 수천만 개인까지 모두 참여하는 길고 복잡한 과정이 아닌가(2월 1일자 서리풀 논평 “백신 접종, ‘디테일’이 관건이다” 바로가기). 종합적 능력 특히 사회적 역량이 중요한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역량이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토대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 연구소도 참여하는 가운데 ‘코로나19 백신접종에 대한 인권시민사회 연속집담회’를 하는 이유도 그런 역량을 모으고 키우려는 것이다(2월 17일에 열리는 4차 집담회 안내 바로가기). 이 <논평>을 통해 거듭 주장했지만, 여기서 민주주의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당사자들이 알고 요구하며 또한 당국이 이해하고 결정하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가리킨다.    

이번에도 확인한바, 여기서 정부와 방역 당국은 ‘올드 노멀’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국가가 주도했던 감염병 대책도 이제는 틀이 다르다. 공무원과 전문가가 정하고 국민과 ‘수혜자’는 따른다는, 관료와 행정 모델만 작동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백신 접종이 성공하는 데는 사회 전반의 토대, 특히 신뢰가 관건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에서 신뢰 형성이란, 민주주의 강화를 빼놓고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를 두고 이런저런 ‘루머’가 떠도는 형편에서 참여와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이 일을 그르칠까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밀실 결정이 소문과 또 다른 소문을 낳고 불신을 키우면 큰일이다.

과학으로 판단하면 될 일에 이런 것이 왜 필요하냐고? 과학기술 만능, 백신과 접종의 과학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백신 선택과 접종 여부에는 여러 가지 요소를 한꺼번에 고려해야 하고 일부는 가치 판단도 필요하다. 칼로 무 자르듯 양단간에 명확하게 가를 수 없는 일이 숱하니, 백신과 백신 접종은 또한 ‘사회적’ 결정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많은 나라가 그 혼란의 와중에도 민주주의 원리를 실천하는 것 또한 그것이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백신 이야기가 나오면서 곳곳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지역사회 토론(타운홀 미팅)이 열렸다. 연방정부 조직부터 지역, 학교, 병원, 회사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얻고 논란을 이해하며 토론을 벌인다(예를 들어 실리콘 밸리의 경영자 모임. 관련 정보 바로가기).  

미국은 백신 기피가 심하고 그런 민주주의 전통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지 모른다.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영국처럼 정부가 새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토론과 학습을 조직하는 예도 있으며(영국 정부의 보도자료 바로가기), 많은 중·저소득 국가도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논의를 촉진하려 애쓰는 중이다.

2주 전 <논평>을 통해 촉구했지만, 접종 시작이 더 가까워진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떤 변화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특히 정부 당국이 다시 자세와 체계를 추슬러야 하며, 다시 민주주의 실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래서는 불평등 등 예방접종의 윤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단순 접종률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백이면 백, 세부적으로는 모두 다른 일들을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며 맞는 해결책을 구하기 어렵다.

정부 계획을 보완해 민주주의와 참여의 원리를 바탕으로 ‘과정’을 다시 구성할 것을 촉구한다. 그 과정에 대한 일반 지침과 분권화에 따른 중앙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름과 구조는 어떠하든, 여러 단계의 당사자들이 논의하고 공론을 만들며 같이 결정해야 한다.” (2월 1일자 서리풀 논평 “백신 접종, ‘디테일’이 관건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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