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의료기관이 실손보험금 청구 대행 '보험업법 개정안' 거듭 추진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활용?
"민간의료보험을 공공의료보험 보완재로 여기는 건 어불성설"

[라포르시안] 의료기관이 민간보험사에 환자 의료정보를 직접 전자형태로 전송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을 둘러싼 공방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 의원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등이 제출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핵심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개정안은 의료기관이 민간보험사에 환자 의료정보를 직접 전자형태로 전송할 것을 의무화하고, 전자서류 전송업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하거나 전문중계기관에 위탁하도록 내용을 담았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법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환자 편의를 위해 실손보험 청구절차 간소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론 민간보험사 업무 편의를 봐주고, 손쉽게 정보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민간보험사 영리추구가 목적이란 의구심이 크다. 

반면 보험업계와 일부 소비자단체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청구 전산화로 소비자의 보험금 청구에 드는 시간과 비용 부담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보험금 수령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여의도 이룸센터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전재수 의원과 국민의힘 성일종⋅윤창현 의원 등 4명이 공동으로 주최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관련 입법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 발제를 맡은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금융위와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실시한 보험 소비자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87.9%가 본인이 동의할 경우 의료기관에서 증빙서류를 종이가 아닌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험사로 전송해 보험금을 청국하는 방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보험업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 교수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가 이뤄지면 요양기관은 기존 종이서류 발급의 전산화로 업무부담이 댗촉 줄고, 소비자는 원스톱 서비스 제공으로 종이서류 발급에 따른 청구불편을 해소할 수 있어 소액 청구포기 감소 등 편의성이 증대된다"며 "보험회사도 관련 서류 수기입력 대산 전산입력에 따른 업무 효율화로 사업비 절감(입력오류, 인건비 감소) 등 비용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사진 왼쪽부터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또다른 발제자인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실손의료보험 계약관계의 이행 주체는 보험사인데 의료기관이 서류 전송 주체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 이사는 "보험계약자의 청구자료 수집과 심사,지급의 의무는 보험사에 있다"며 "계약자의 불편으로 청구절차 개선 의무가 제기되면 이를 개선하는 건 보험사가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에 불편한 업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를 의료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반대하는 사안이란 점을 강조했다. 

서 이사는 "손보험 청구간소화 법안 개정안은 겉으로 보험가입자의 편의성을 앞세우지만, 보험업계의 숙원사업의 해결을 위한 법안이라고 시민사회는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며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도 반대하고 있고, 복지부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공적보험을 위한 공공기관의 노하우와 인프라는 민간의료보험를 위해 활용하는 것은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와 모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전자서류 전송업무 위탁 기관으로 지목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된다. 심평원은 '국민건강보험법' 관련 규정에 따라 연간 운영 예산 중 약 80%를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하는 부담금으로 충당한다.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란 의미다.

서 이사는 "건강보험법에 의거한 심사평가원의 노하우는 건강보험 자산으로, 영리기업의 이익을 올리는 쪽으로 무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며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건강보험 청구제도를 민간보험이 지위를 누리는 것은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 목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가입자 보험금 수령권 보장 위해서 필요"

"오히려 보험금 지급 거부·계약 갱신 거부에 활용할 것"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서도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신영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개정안에서 제시된 청구전산화는 이미 인정된 제도"라며 "현재 환자가 의료기관에 종이서류 증빙을 요청할 수 있고, 일부 핀테크 회사를 통해서 전자적으로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개정안을 보면 헌법상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환자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서 (전송하는 건) 환자의 자기정보결정권 침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이준석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는 "보험사가 소비자 편익을 위해서 (청구 전산화를) 하는 것인가 의문"이라며 "실손보험에서 손실이 늘어나다보니 비급여 진료비 심사 등에 활용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환자의 보험금 과잉 청구 여부를 심사해서 추후 보험계약 가입 여부나 갱신거부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소비자단체에서는 환자 편의 증대를 위해 청구 전산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최근에 저희가 최근 2년간 실손보험을 유지하고 있는 소비자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17.2%가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며 " 그 중에서 (보험금) 30만원 이하가 95%에 달했다. 보험사에 제출할 청구자료를 준비하지 못했거나 증빙서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컸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청구 전산화 논의가 10여년간 진행되는 동안 세브란스병원 등은 청구 전산화를 시행하고 있다"며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종이서류에서 전자서류를 제출할 때 어떤 정보가 추가로 보험사로 넘어간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손보험은 보험사와 가입자 간 사적계약인데, 의료기관에 보험금 청구 대행을 의무화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련 기사: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둘러싼 진짜 문제는?>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는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는 건강보험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그러나 실손의료보험은  사적계약이다. 그런 시스템 하에서 별도 계약관계에 있지 않은 의료기관에 (보험금 청구 대행을) 강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청구 간소화는) 보험가입자 편의성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보험업계 이해관계를 기본적으로 전제했다는 생각이 들며, 궁극적으로 공보험 전산망을 통해서 민간보험 가입자의 정보를 집적하고 이를 통한 (보험사의) 상품개발, 관리운영비 절감 목적이 있다고 본다"며 "편의성만 지나치게 앞세울 경우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제공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수령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전산화를 통한 청구 간소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지금처럼 보험금 청구절차가 불편한 것은 소비자가 갖고 있는 정당한 보험금 수령권을 제한한다는 부분에서 상당히 마음이 무겁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의료기관가 보험사가 참여를 통해 실손청구 전산화를 구현하는 것이 보험사의 거스를 수 없는 책무하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부장은 "지난해 보험사로 들어온 청구건수는 1억 626만건이다. 이 청구건별로 각 한 건당 4장의 진료비 영수증과 세부내역서가 첨부된다고 하면 1년에 4억건이 넘는 종이서류가 들어오게 된다"며 "소비자가 이 서류를 발급받느라 의료기관을 분주하게 다녀야 하는 수고로움과 의료기관에서 직접 발급하는 데 많은 행정비용이 낭비된다. 보험사 입자에선 막대한 보험서류를 하나하나 분류하고 보험금 지급을 검토하는 데 따른 고통도 크다. 3913만명에 달하는 실손보험 가입자는 의료기관가 무관하니 보험사가 알아서 하라는 관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文정부, 문케어와 실손보험 활성화 동시 추진하는 모순...보충형 민간의료보험 도입?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논의에서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건 전국민 건강보험제도 속에서 이런 실손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법개정이 실현되면 민간의료보험이 사실상 건강보험 보완재 지위를 얻게 된다. 나아가 공적보험인 건강보험과 경쟁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으로 커지고, 공적보험제도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도 있다.

현 정부의 '문재인 케어' 추진과도 상충한다. 건강보험 하나로 걱정없이 치료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게 문케어의 핵심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국민에게 약속한 주요 공약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과 동시에 '실손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을 동시에 펴는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 금융당국은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개발․판매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헬스케어 기기와 건강관리서비스를 연계한 보험상품 활성화를 추진했다. <관련 기사: 문재인 케어 추진에도 쑥쑥 커지는 실손의료보험 시장

올해 초에는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가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간 연계와 협력 근거 마련을 위한 '국민건강보험법'과 '보험업법' 개정안을 각각 입법예고했다. <관련 기사: 복지부-금융위, 공·사의료보험심의위 설치한다>

두 법안은 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을 연계해 관리를 강화한다는 취지이지만 사실상 실손의료보험을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부분을 보장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지위를 법적으로 부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에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청구업무를 대항하고,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되는 심평원이 보험금 청구정보 전송 중계기관 역할을 맡게 되면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 보완재 역할을 굳히게 된다.

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 걱정 없이 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포기하겠다는 건지, 비급여 부분을 보장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을 제도화하겠다는 건지 공론화하고,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시나브로 실손의료보험 활성화를 추진하는 건 가장 나쁜 선택이다. <관련 기사: 왼손엔 '문케어', 오른손엔 '민간의보 활성화'...문재인과 싸우는 文정부>

노동·시민·보건의료 관련 단체가 참여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우리나라는 전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국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민간보험으로 커버되고 있는 의료비 부담을 감소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다"며 "그러나 민간실손보험을 공공의료보험 보완재로 여기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문재인 정부가 비급여를 급여화해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이겠다는 국정과제의 방향과도 상반된다"고 비판하며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를 지속해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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