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명칭 바꿔서 의사-환자 원격의료 허용 재추진
박근혜 정부 때와 닮은꼴 행보....文대통령 공약 파기?

[라포르시안] 앞서 박근혜 정부 때 보건복지부가 가장 크게 공을 들인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을 위한 의료법 개정 작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원격의료는 '창조경제'의 상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비롯해 각종 공식행사 때 수시로 원격의료 확대 필요성을 언급하는 발언을 할 정도였으니 주무부처인 복지부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을 거다. <관련 기사: 창조경제의 상징 ‘원격의료’…박근혜, 얼마나 자주 언급했나 확인해봤다>

실제로 복지부는 2013년과 2016년에 각각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정부입법 발의로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원격의료 활성화를 놓고 관련 대기업을 위한 새로운 먹거리 사업으로 추진하려 한다는 의혹과 함께 의료영리화 논란이 불거지면서 법개정은 번번이 불발로 그쳤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 정책은 폐기될 것으로 전망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재벌에게 특혜를 주고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저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원격의료는 의료인-의료인 사이의 진료 효율화를 위한 수단으로 한정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도 원격의료 활성화 정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비대면 진료(비대면 의료, 비대면 협진)'로 이름을 바꾼 채로.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열린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협의체 회의'에서 비대면 진료 추진방안을 설명하고 참석 단체로부터 의견을 들었다.

복지부가 정의한 비대면 진료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의료인 또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하는 의료행위'다. 원격의료가 거리를 강조한다면, 비대면 의료는 접촉 여부를 강조하는 개념이라는 게 복지부 설명이지만 기존 원격의료 정의와 다를 게 없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제공을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한정하고 의료기관 이용이 곤란한 섬·벽지 거주자, 교정시설 수용자 및 군인, 거동이 불편한 노인·장애인으로 제공 대상을 한정할 방침이다.

비대면 진료 정의나 서비스 제공 대상과 원칙은 이름만 달라졌을 뿐 박근혜 정부 때 추진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활성화 정책 그대로다. 

복지부가 원격의료 용어 명칭을 바꿔 사용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복지부는 2017년 3월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정부입법 발의)에 대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원격의료라는 용어를 빼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의료'라는 표현으로 명칭을 바꾼 재검토안을 제출했다. '의료정근 및 이용 보장을 위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의료를 제공'하는 개념으로 ICT를 활용한 의료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관련 기사: ‘원격의료’ 대신 ‘ICT 활용 의료’라고 부르면 뭐가 달라지나>

'ICT 활용한 의료'는 다시 '스마트 진료'로 명칭이 바뀌었다.

복지부는 2019년 3월 공개한 '주요업무 추진계획' 보고서에 국민의 의료접근성 제고를 위해 스마트 진료 활성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복지부는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현행 법 내에서 만성·경증(도서·벽지), 응급, 분만취약지 고위험산모 등을 대상으로 의사-의료인간 스마트 협진을 활성화하고, 도서·벽지, 원양선박, 교도소, 군부대 등 의료사각지대에 한해 의사-환자간 스마트 진료 허용을 위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존 원격의료 활성화 추진 정책에 담긴 내용에서 '원격의료'를 '스마트 진료'로 명칭만 바꾼 채 고스란히 옮겨놓은 셈이다.

최근에는 다시 '비대면 의료'로 이름을 바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방역 대응 차원에서 한시적인 비대면 진료 허용을 근거로 삼아 원격의료 활성화를 재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으로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일차의료 중심 만성질환관리 등 의료전달체계 기능에 부합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면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추진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관련 기사: "원격의료, 근거기반 도입 논의 부재...감염병 대응 차원서 우선순위 낮아">

복지부는 논란이 생길 때마다 문제 원인과 본질을 그대로 두 채 명칭만 바꾸고 어영부영 넘기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부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와 함께 의약품 원격조제·약 배달 서비스 관련 규제 개선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더 큰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원격의료라는 명칭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ICT 활용 의료'나 '스마트 진료',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본질적인 속성을 잘 드러내는 명칭이다.

문제는 왜 필요한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재하다는 것과 특히 한국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제쳐두고 당장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우선순위 과제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보건의료 차원이나 경제적 관점에서 필요하다는 명확한 근거가 부재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복지부는 "산업활성화가 아닌 보건의료정책 차원에서 비대면 의료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이 사안이 정치적인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장 시민사회에서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환자를 돌볼 병원도 부족하고 인력도 극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정부는 공공의료 개혁은 하지 않고 ‘원격의료’라는 오답을 꺼내들고 있다"며 "원격의료로는 중환자를 돌볼 수 없고 감염병 환자를 치료할 수 없으며, 응급·분만치료도, 취약계층 의료공백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진료는 재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지 제대로 된 진료가 아니다"며 "대기업과 대형병원이 주도하는 상업의료인 원격의료와 약 배송은 공공의료·돌봄 강화와는 정 반대로 약물에 의존하는 지금의 3분 진료 행태를 더 심화시키는 길"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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