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인력인권법' 제정 국회 국민동의청원 주목
간호사 최저 인력배치 기준·간호인력 임금 실태조사 등 담아

국민동의청원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포스터. 이미지 제공: 의료연대본부
국민동의청원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포스터. 이미지 제공: 의료연대본부

[라포르시안] 2018년 기준으로 국내 간호사면허 소지자 39만 5000여명 중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19만 3900여명이다. 간호사면허 보유자 가운데 채 절반도 안 된다.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활동 간호사 수는 3.5명이다. OECD 평균(7.2명)과 비교하면 딱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 병동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평균 환자수는 16.3명이다. 평균이 그 정도이고 실제로는 간호사 1명이 환자 30~40명을 돌보는 병원도 적지 않다. 미국(5.3명)이나 스위스(7.9명), 영국(8.6명) 등에서 간호사 1명당 평균 환자수와 비교하면 터무니 없다.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수가 많아질수록 과다한 업무부담과 시간적 압박 때문에 환자상태 확인, 약물투여, 검사와 수술준비, 환자기록 등 필수적인 업무 처리조차 버거워진다. 그러다 보니 간호인력이 제공하지 못하는 간호 서비스는 환자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떠넘겨진다. 국내 의료기관에선 이런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속에서 '노동력 갈아넣기' 식으로 제공하는 간호 서비스가 환자에게 양질의 돌봄일 리 없다. 그렇지만 상당수 병원에서는 간호사 구인난을 겪으면서 간호 서비스 질을 따질 여력도 없다. 만성적인 간호사 인력 부족과 간호사 구인난이 고착화하는 모순이 펼쳐지고 있다. <관련 기사: "담당 환자 6명으로 줄자 간호가 즐거운 일이구나" 느꼈다는 대학병원 간호사> 

간호인력 공급 확대나 간호등급차등제 등 여러 방법을 도입했지만 대부분 무용지물이었다. 병원이 간호인력 확충에 나설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간호사 적정인력 배치기준을 법에 명시하고 강제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를 위한 법개정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앞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지난달 8일부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을 담은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바로가기>

이미지 출처: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 화면 갈무리.
이미지 출처: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 화면 갈무리.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인력 수급 종합계획과 임금 결정 등의 내용과 함께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최저 인력 배치기준을 명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병동, 중환자실, 외상응급실, 수술실. 신생아 집중치료실 등 근무 장소에 따라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인력 최저 배치기준을 명시한다. 예를 들면 중환자실은 '환자 2인당 간호사 1인 이상', 외상 응급실은 '환자 1인당 간호사 1인' 같은 식이다. 

간호인력의 임금 등 처우개선을 위한 내용도 담았다. 

보건복지부장관이 간호 인력의 임금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매년 지역별, 직종별, 직급별 월평균 총 수입 등을 조사하도록 했다. 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간호인력 지역별, 종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개선안과 임금 기준안을 '간호인력 임금결정위원회'를 통해 제시하도록 규정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간호인력 인건비 등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았다.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대한 국민동의청원에는 14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3만2173명이 참여하면서 최다동의를 기록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현재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너무나 많은 숫자의 환자들을 홀로 담당하고 있다"며 "간호사들은 식사와 화장실을 포기하며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위장병, 방광염에 시달리고 있고 불규칙한 교대제 생활로 인해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환자의 건강권과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외 많은 연구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줄어들수록 환자들의 사망률, 재원률, 재입원률, 낙상, 투약오류 등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연대본부는 "국내 의료법에는 연평균 1일 입원환자수를 2.5로 나눈 수(간호사 1인당 환자 12명)를 기준으로 정해놓았지만 강제조항이나 처벌조항이 없어 사문화된지 오래"라며 "간호인력배치를 높이기 위해 간호관리료 차등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1999년 처음 도입된 이후 등급별 기준이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제공: 의료연대본부
사진 제공: 의료연대본부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도 가세하고 나섰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무상의료운동본부, 전국학생행진 등은 오늘(14일) 오전 9시 30분부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축소 법제화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간호인력 부족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났고, 이는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사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드러난 것 뿐이었다"며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제한하고 간호인력을 충원하는 것은 국민들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일 보건의료노조와 맺은 '노·정 합의'에 따라 최근 코로나19 전담병원의 병상당 간호사 배치기준을 마련했다. 

코로나19 병상 운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병상 간호사 배치기준 가이드라인'에 병상(환자) 당 간호사 수를 중증 병상은 1.80명으로, 준중증 병상은 0.90명으로, 중등증 병상은 0.36~0.2명으로 정했다. 10월부터 새롭게 마련된 기준을 시범적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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