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는 의료급여비 미지급 사태…"이젠 그러려니 한다" 한숨만

의료급여 수급자 진료기피 초래로 건강권 침해

의료급여 지급 지연 사태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의료기관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9일 인천광역시 등 지자체에 따르면 올해 추가경정예산안 수립이 늦어지면서 의료급여비 집행이 늦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시의 경우 이미 의료급여 10월분부터 미지급되고 있다. 현재 인천지역에서 의료급여를 이용하는 대상자는 총 7만5,000여명으로, 연간 총 2,800여억원을 중앙정부(80%)와 지자체(20%)에서 나눠 분담하고 있다. 인천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추경작업이 늦어져 불가피하게 의료급여비 집행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음 주 시의회 예결특위가 끝나면 12월 안으로 급여집행이 한 번에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서 지난 5월 내려 보낸 의료급여 증액분에 대해 시비를 반영해야 하지만 추경예산 수립이 늦어져 아직 집행을 못하고 있다”며 “절대 의료급여를 지급할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역 개원가는 의료급여 미지급 사태로 인해 의료기관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인천시의사회 윤형선 회장은 “매년 발생하는 의료급여 미지급 사태 때문에 시에 항의를 하고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도 보내봤지만 묵묵부답”이라며 “연말이면 있어왔던 일이라 올해도 그러려니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의료급여 환자 비율이 높은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등은 의료급여비가 미지급될 경우 상당한 자금압박에 시달린다”며 “고정적으로 지출할 비용이 있는데 연말마다 발생하는 의료급여 미지급 사태로 인해 병원장들은 연말이면 자금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연말이면 의료급여비 지급 지연이 반복되면서 경영난을 우려한 병의원에서 의료급여환자 진료를 기피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의료급여 환자들의 건강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한 중소병원장은 "의료급여환자 비율이 높은 중소병원이나 정신과 병원들은 미지급금 규모가 커 심각한 경영난을 겪기도 한다"며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병원들이 불가피하게 의료급여 환자를 기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급여비 미지급으로 일부 의료기관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인천의 A재활의학과의원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2개월가량 의료급여비 지급이 지연된 바 있다”며 “올해도 지급지연 상황이 벌어지다보니 경영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임대료와 인건비 등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있는데 지급이 지연되면서 심각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입원환자 중에서 의료급여환자 비율이 높은 정신병원들은 해마다 연말이면 거의 전쟁을 치르듯 한다.  정신의료기관협회 홍상표 사무총장은 “의료급여가 11월~12월은 미지급됐다가 1월에 지급되는 상황은 이제 일반적인 일”이라며 “정신병원장들은 연말이면 은행 대출은 물론 사채를 동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홍 사무총장은 “지난 2008년 10월 차등정액수가로 전환된 이후 현재까지 6년째 수가가 동결돼 있는 실정”이라며 “연례행사처럼 미지급되는 의료급여를 제때 지급해주지 못할 바에는 현행 지급제도를 개선해줄 것을 매번 요청하지만 정부는 예산부족만 이야기할 뿐 달라지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6개월치 이상이 밀렸던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사정이 나아졌다고 애써 자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전남지역의 한 개원의는 “수입이 없어 지출을 못하는 상황이 아니고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주지 않아 지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하지만 과거에는 6개월에서 1년가량 밀렸다가 지급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요즘 같은 경우는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의료급여 미지급금 현황 <출처: 문정림의원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은 지난 10월 열린 ‘2012년도 결산 심의’에서 “지난 5월 2013년 추경예산을 통해 1,456억원이 추가 확보됐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연말에도 1,597억원의 예산이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총 6,138억원(국고 7,726억원, 지방비 1,412억원)의 의료급여가 미지급됐고 이는 의료기관 1곳당 832만원에 달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올해를 넘기기 전에 미지급된 의료급여비를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건보공단 수탁급여부 관계자는 “일시적인 지연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처럼 안 좋은 상황은 아니다”며 “현재까지 공단에 청구한 내용은 이달 20일 내지 21일에 정상적으로 지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정책과 꾸준한 노령인구 확대 등으로 인해 진료비가 증가추세에 있어 공단 예상으로는 일주일치 정도의 진료분이 모자를 것 같다”며 “이는 내년도 예산이 들어오면 바로 지급할 것이기에 지난해처럼 몇 달치 진료분이 지연된다거나 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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