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위기는 위기다

[라포르시안] ‘위기는 곧 기회’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비관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길어 올리려는 의지적 낙관이라면 좋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언설에서 이 논리는 자주 다른 용도로 쓰인다. 코로나19라는 공중보건 위기에서 그랬고, 기후위기에서도 그렇다.

지난 주말, 3만 5천 명이 ‘기후정의행진’을 위해 서울 도심에 모였다. 2019년 9월, 전국에서 7천 5백 명이 전 세계 760만 명과 함께 한 ‘기후파업시위’ 이후 3년 만이다. 그사이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왔고, 각국 각지에서는 한층 더 심화된 기후재난을 살아내야 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는 모두 잘 안다.

2019년 전 세계 ‘기후파업시위’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겨냥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온 16세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고,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신화뿐이라니, 부끄럽지도 않냐”는 말로 각국 정상은 물론 듣는 이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 그 자리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위기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담은 기조연설로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지구 온도 상승 1.5도 제한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 자리에 난데없이 ‘세계 푸른 하늘의 날’ 지정을 제안한 것이 그중 하나였다. 국제 정치는 세계를 통한 국내 정치의 토대인바, 미세먼지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당시 한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한국 기후파업시위의 최우선 요구가 “정부는 기후위기를 인정하라”였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안일한 인식은 윤석열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지난주 미국 뉴욕에서 열린 77차 유엔총회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의 기조연설에서는 ‘기후(climate)’라는 단어가 총 14번 등장했다. “코로나19나 기후위기와 같은 긴급한 위협, 혹은 핵확산과 같은 지속적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실패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겪을 것”이라는 식이었다. ‘코로나19(COVID-19)’는 총 9번, ‘핵(nuclear)’은 총 3번 등장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자유’를 21번 외쳤다. ‘기후’와 ‘핵’은 각각 단 1번씩 등장했다. 

유엔총회가 열린 같은 날 한국 환경부는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는 초안을 공개했다. 원전을 ‘녹색(친환경)’ 산업으로 분류함으로써 연구개발, 신규건설, 계속운전을 지원하려는 목적이다. 최근 유럽연합이 ‘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EU Taxonomy)’에 원전을 포함시킨 “국제 기조를 반영”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인데, 유럽연합의 체계가 부여한 안전기준은 “국내 실정에 맞게” 후퇴시켰다. 초안인 만큼 향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라는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한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윤석열 정부는 이미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기후환경위기가 미래의 기회” “기후테크 등 녹색 신산업 집중 육성”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 “원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및 원전 수출 성과 창출을 통해 원전의 신성장동력화 달성”과 같은 국정방향을 일찌감치 밝힌 바 있다.

기후위기를 기회로 인식하는 점은 지난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위기와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도 국가의 신성장동력 발굴을 동시에 꾀하는 묘수라며 내놓은 것이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양대 축으로 하는 ‘한국형 뉴딜’이었다. 위기를 핑계 삼아, 모두가 ‘쇼크’를 각오하고 있는 때, ‘재난 자본주의’를 밀고 가기 위한 편승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은 이미 했던 바다(당시 논평 바로가기).

‘한국형 뉴딜’만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에게 코로나19 팬데믹은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ICT 산업의 위상을 높일 기회였고, 코로나19 백신 불평등은 ‘K-글로벌 백신 허브’라는 이름으로 한국 바이오·제약 산업의 위상을 높일 기회였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것, 위기를 기회로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후위기 생산과 분배의 불평등 구조, 기후부정의를 염두에 두면, 기후위기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 기후위기 주범인 기업과 자본에게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닌가. 나아가 국가 간 체계에서 피해자가 되느니 가해자가 되고 말겠다는 발전에 대한 집착도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다시, 불평등한 체제의 변혁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위기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기를 거부하는 점점 더 많은 동료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주말 우리는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녹색성장, 그린워싱 멈추고 기후정의” “화석연료 체제를 종식하자”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모든 불평등을 끝내자” 함께 외치고, 또 들었다. 의지적으로 낙관할 수 있는 이유다.

2022년 기후위기는 최악의 홍수를 겪은 파키스탄의 위기이기도, 최악의 가뭄을 겪은 아프리카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강도 높은 폭우와 태풍 속에서 황망하게 이웃들을 떠나보낸 대한민국의 위기이기도 하다. 정부에 말한다. 다시 20%대로 떨어진 지지율에 위기감을 느끼는가? 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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