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연간 100만명 육박...젊은층서 높은 우울증 증가율
"우울증 치료에 항우울제 처방 남용...약물치료와 지지요법 병행해야”

[라포르시안] “우리나라는 우울증에 무조건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양극성 우울증을 타 과에서 잘못 진단해서 SSRI를 쓰게 되면 우울증이 조증으로 스위칭 된다. 우울증 때문에 처방한 SSRI가 양극성 우울증을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우울증과 양극성 우울증을 반드시 감별해서 진료에 접근해야 하며, 우울증에는 항우울제와 정신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대한정신약물학회 이상열 이사장(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지난 4일 한국얀센이 개최한 미디어 클래스에서 이같이 강조하며,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주목했다.

이상열 이사장은 “우울증은 만성적이고 재발하며 진행하는 질병으로, 세계에서 약 3억~3억1,000만 명이 앓고 있다”라며 “과거가 조현병의 시대였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조울병과 우울증의 시대가 될 것이고, 국가 보건정책 아젠다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요 우울장애 환자 수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2017년~2021년)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울증 환자수는 2017년 69만명에서 2021년에 93만 3,481명으로 35.1%(연평균 7.8%) 증가했다. 불안장애 환자수는 2017년 65만 3,694명 대비 2021년에 86만 5,108명으로 32.3%(연평균 7.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연평균 7%대 증가률을 기록한 가운데 2021년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수가 전년도 대비 각각 10%, 11% 증가세를 기록했다.  

우울증의 연간 총 진료비는 2017년 3,038억원에서 2021년 5,271억원으로 73.5%(연평균 14.8%) 증가했다. 1인당 진료비는 2017년 43만 9,501원에서 2021년 56만 4,712원으로 28.5%(연평균 6.5%) 증가세를 기록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젊은 층에서 우울증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데이터를 보면 생산성이 있는 연령대인 19~29세와 30~39세가 가장 많은 우울증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 이사장은 “환자 입장에서 우울증은 고통을 수반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힘든 질병이지만, 국가적으로는 가장 생산성이 높은 젊은 시기에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국가적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며 "다른 많은 신체적 질병들은 환자가 직업적·사회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우울증은 직업적·사회적·가정적 기능 손상을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신체적 질병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신장애는 자살률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약물학회에 따르면 국내 자살 사망자 수는 2011년에 비해서 2020년에 17% 정도 감소했지만 30대 이상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으며, 20대의 자살률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자살동기를 보면 남자의 경우 10대에서 30대까지는 정신적 어려움, 즉 정신장애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30대에서 60대까지는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은 육체적 어려움이었다.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정신적 어려움이 가장 많은 자살동기를 차지했다.

이 이사장은 “자살에 영향을 주는 정신장애로는 주요 우울장애, 양극성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있다"며 "10대에서 30대에 우울증에 대한 조기 접근과 치료를 통해서 우울증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다면 실제로 국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률이 훨씬 낮아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우울증과 양극성 우울증을 감별해서 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양극성 우울증을 타 과에서 잘못 진단해서 SSRI를 쓰게 되면 우울증이 조증으로 스위칭 된다. 그래서 우울증 때문에 처방한 SSRI가 양극성 우울증을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며 "이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우울증과 양극성 우울증을 반드시 감별해서 진료에 접근해야 된다”라고 했다.

국내 우울증 치료의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우울증 치료 목표는 빨리 치료해서 재발하지 않고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살 예방이지만 국내에서는 우울증 치료가 빨리 시작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울증을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않고 마음이 약해진 것으로 보고 이를 바꾸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라며 “또 다른 이유는 효율적인 우울증 치료를 위해 항우울제와 정신치료가 병행돼야 하는데 국내 학계에서는 우울증을 단순히 항생제만 주면 되는 감염병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우울제만 주면 우울증이 해결될 것처럼 판단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SSRI에 의존하고 있는 우울증 치료 전략을 문제로 꼽았다.

이 이사장은 “미국과 유럽, 캐나다 가이드라인에서는 경도와 중등도 우울증은 인지행동 치료를 하거나 지지적 정신치료만 하라고 돼 있고 중증도에 가서야 SSRI와 SNRI(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 억제제)를 포함한 항우울제를 쓰라고 돼 있다”라며 “전 세계의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무조건 우울증하면 SSRI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SSRI 만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명한 데이터에 따르면 항우울제에 대한 반응율은 지난 10년간 50%대”라며 “어떤 항우울제를 써도 반응하는 환자는 두 명 중 한명 밖에 되지 않고 관해율은 30%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SSRI와 SNRI 만능주의가 돼 있는 상황이다”라고 꼬집었다.

최근 국내 자살률이 낮아진 이유는 SSRI 때문이 아니라 국가적 정신건강 정책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 자살률이 낮아진 것은 SSRI 때문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SSRI를 써서 자살률이 낮아진 나라는 한 곳도 없다”라며 “오히려 SSRI를 써서 오히려 양극성 우울증이 많이 만들어지고 그런 환자들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경우도 많다. 상식적으로 약으로 자살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국가 예산이 투입된 정신건강 보건 정책을 통해서 자살률이 떨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치료옵션이 부재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꼽았다.

최소 2가지 이상의 경구용 항우울제를 적정 용량, 적정 기간 복용했음에도 반응하지 않는 치료저항성 우울증은 그렇지 않은 우울증이나 주요 우울장애 환자에 비해 병원 이용률과 자살률이 훨씬 높을 뿐 아니라 자살 시도 역시 7배나 높은 편이다.  

이 이사장은 “문제는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대한 치료 옵션이 아직까지 없다는 점”이라며 “자살 생각이나 행동이 있는 주요 우울장애는 신속한 치료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해당 환자들을 대상으로 미국 FDA에 공인된 치료 옵션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우울증과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꼈으면 좋겠다는 게 정신약물학회 이사장으로서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치료 방법으로 ▲항우울제 치료의 최적화·교체 및 병합·강화요법 ▲인지행동 치료·대인관계 정신치료·정신 역동적 정신치료· 부부 치료 가족 치료 등이 사용된다. 특히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 옵션으로 새로운 항우울제인 에스케타민 계열의 ‘스프라바토’를 제안하면서 조속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촉구했다.

이상열 이사장은 “정부가 비싼 치료제도 건강보험 등재를 해주고 있지만 자살률을 급격하게 낮출 수 있고 치료저항성 우울증이 있는 환자에게 유효할 수 있는 스프로바토는 보험 급여 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며 “그 이유는 정신장애를 신체질병에 비해서 중요성을 낮게 보고 있는 국가적 관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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