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식약처 의료기기위원회 공동위원장·고대의대 명예교수)

[라포르시안] 최근 조달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한국조달연구원(KIP)은 공동 개최한 조달정책 세미나를 통해 ‘혁신 및 안보 수요기반의 전략적 공공 구매’ 추진 방향을 모색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조달이 바이오헬스 산업의 ‘출구전략’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집중 조명됐다. 이는 국가 보건의료 정책 화두가 혁신과 안보라는 것을 감안 할 때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책적 연결점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달정책은 공공수요를 충족하는 기능을 넘어 민간산업을 진흥시키는 노력으로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혁신조달정책을 추진 중이며, 최근에는 국가 안보와 미래수요에도 부응할 수 있는 전략 조달정책도 제안되고 있다. 전략 조달의 개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필요성과 중요성이 부각 됐기 때문에 정부 정책부서가 이러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접근으로 여겨진다.

앞서 한국조달연구원은 공공 조달의 전략적 활용을 “자국산 제품 구매 증대를 통한 산업경쟁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필자는 여기에 글로벌 시장진출을 위한 추동력 기능을 더한 ‘Buy Korea를 통한 Sell Korea’라는 선순환 생태계 정책을 추가로 제안하고 싶다.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내수시장의 역할은 연구개발에 투자된 노력의 ‘보상’(reimbursement)과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종잣돈’(seed money) 마련에 있다.

이때 조달은 공공구매력을 통해 기업을 직접 지원할 수 있고, 소액 지원을 통해 바이오헬스 제품의 사용기록(track record)을 확보해 줄 수도 있다. 한국의 바이오헬스 산업이 국가 경제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국내기업들이 반드시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국내 체외진단의료기기의 해외 수출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인체에 사용되는 보건의료 제품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반드시 제조국에서의 사용기록을 요구한다.

문제는 국내기업이 기술상장은 했으나 매출이 없어 자국 내 사용기록을 확보하지 못해 수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달은 공공 구매를 통해 사용기록을 확보한 국내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견인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조달 사업의 성과평가 기준은 혁신제품 지정 숫자와 공공 구매 실적이다. 또한 조달청은 기존 조달기업 이외에 새로운 스타트업 벤처 기술을 발굴하는 ‘스카우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좌장으로 참석한 제1회 스카우트에서는 11개 가운데 6개가 바이오헬스 제품이었다. 현재까지 지정된 혁신제품 약 1300개 중 10%는 바이오헬스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 개발된 바이오헬스 제품이 실제 구매로 연결되는 흐름은 여전히 막혀있는 현실이다. 성과를 공공 구매 실적에 치중하게 되면 조달 사업의 주요 고객은 혁신 장터에서 구매력을 가진 대형 공공기관이 된다.

바이오헬스 시장이 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외국기업에 전면 개방돼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내기업들은 출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공구매력을 앞세운 조달시장이 너무 커지면 오히려 민간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조달 사업의 성과평가에는 마중물 효과에 대한 지표가 추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타 산업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요소가 존재한다. 따라서 조달 사업도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하고, 제품 자체가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다 보니 더욱 정교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여러 부처에 분산돼있는 조달 관련 예산사업들이 효율적으로 배분·집행되도록 조달청의 조정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최근 방위 산업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의 대비를 위한 공공수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해외 수출을 통해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바이오헬스 산업 또한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만큼 조달 사업이 국내 바이오헬스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초기 동력으로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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