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지원 일몰시한 임박했지만 법개정 논의 지지부진
"국고지원 끊기면 건강보험 운영에 큰 타격...보험료 폭탄"
일몰제 폐지·국고지원 비율 상향 다룬 개정안 여러 건 계류

 

[라포르시안]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보험재정에 대한 정부지원)  ①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에서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한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 2007년부터 도입한 국고지원 규정이다. 다만 이 규정은 일몰제 적용을 받는다. 일정 기한이 지나면 해가 지듯이 자동으로 효력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국고지원 규정은 관련 법 개정으로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면서 일몰제 적용 유효기간을 늘렸다. 2017년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2022년 12월 31일까지 5년 더 연장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 일몰조항에 따라 이달 31일 이후에는 해가 지듯이 자동으로 효력이 사라진다. 국고지원 규정 일몰시한이 29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는 관련 법 개정 논의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올해 말로 종료될 경우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건 물론 가입자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료를 매년 18% 이상 올려야 부족한 재정을 충당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보험재정에 대한 정부지원) 1항은 '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에서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국민건강증진법 관련 부칙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은 제25조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2022년 12월 31일까지 매년 기금에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00분의 6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한다'고 규정했다.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14% 해당하는 금액은 일반회계(국고)에서, 담뱃세로 조성한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지원해 총 20%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법에 따른 국고지원 규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건강보험노조에 따르면 2007년 이후부터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비율이 법에 명시된 20%를 준수한 적이 없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국고지원 비율도 13.3%, 14.8%, 13.8%에 그쳤다. 

국고지원이 중단될 경우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급격한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보험노조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18.6~18.7%까지 인상해야 올해 지원액인 10조 원 가량을 충당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럴 경우 전 국민의 월평균 보험료가 평균 2만원 이상 인상된다. 

노조는 "정부지원이 끊기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돼 보험료 인상 및 보장성 후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회 모두가 해당 사안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의 항구적 법제화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의료산업연맹 등은 지난 10월 11일 국회 소통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시적 조항인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개정해 항구적 지원으로 법제화하고, 정부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여 국민 부담을 가중시켜 보장성을 낮추고, 이로 인해 건강보험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도 의료 민영화 정책 묶음에 속한다"며 "윤석열 행정부와 달리 정말 민생을 걱정한다면 국회라도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 지원에 적극 나서 ‘본분’인 민생 입법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회는 ‘예상 수입’, ‘상당한’ 같은 정부에 유리한 불명확한 문구를 명확히 하고, 건강보험 정부 지원을 대폭 확대하며, 한시 조항을 철폐해 정부가 항구적으로 건강보험을 지원하도록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의료 민영화 등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고 촉구했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윤석열 정부와 국회는 국민들의 건강 보장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말로 건강보험 적자가 걱정된다면 그 부담을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노동자와 서민들 보험료를 올려 부담시킬지, 정부가 한시적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지원을 대폭 늘려 해결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도 국고지원 일몰기간 전에 관련법 개정으로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속가능한 국민건강권 위해 합당한 국고지원 배정하라'는 입장문을 통해 "일몰제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지원이 차단된다면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과 동시에 건강보험 운영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국고지원 관련 법 조항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협은 "건보법에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명시되어 있어, 불명확한 규정을 이용한 보험료 예상수입의 과소추계로 정부는 관행적으로 법정비율보다 부족하게 지원해왔는데, 이는 안정적 재정지원을 저해하는 큰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며 " 정부가 법정지원 규정을 지키지 않아 미지급된 금액은 현재까지 약 30조원에 이르고 있어 미지급금에 대한 정산뿐만 아니라 정부지원에 대한 관련 규정도 명확하게 개정할 필요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국고지원 일몰제 폐지 등 관련법 개정안 여러 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에는 건강보험 재정 국고지원 일몰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여러건이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작년 11월 국고지원 일몰제 관련 국민건강보험법 및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건보법 개정안은 ‘예산의 범위에서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하도록 한 애매한 규정을 ‘전전년도 건강보험 지출액의 100분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명확히 하도록 했다. 한시법으로 규정한 부칙규정을 삭제해 건강보험에 대한 안정적 재정지원을 가능하도록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2020년 9월 발의한 건보법 개정안은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전전년도 결산 상 보험료 수입액의 100분의 17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국고지원 규정을 명확히 했다. 또 한시법으로 규정한 국고지원 일몰시한 부칙규정을 삭제해 건강보험에 대한 안정적 재정지원을 가능하도록 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 규정을 보다 명확히 하는 법안도 제출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건보재정 국고지원금을 해당 연도 보험료 수입액의 100분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하고,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과 실제 수입액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국고지원금 차액을 정산하도록 한 건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당 이정문 의원은 ‘해당연도 예상 수입액’을 ‘전전 연도 수입액’으로 변경하고, ‘100분의 16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하도록 하는 건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건강보험 재정 국고지원 비율을 '100분의 14'에서 '100분의 17'로 높이고,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 받지 못한 금액에 대해선 사후정산을 도입하는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당 신현영 의원도 최근 건강보험 재정에 대해서 국고지원을 최소 20% 이상으로 하도록 하는 건보법 개정안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신 의원이 발의한 건보법 개정안은 일반회계에서 전전년도 보험료 수입액의 최소 100분의 17이상 금액을 지원하도록 했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건강증진기금에서 전전년도 보험료 수입액의 최소 100분의 3이상 금액을 지원하도록 규정했다. 건강보험에 대한 안정적 재정지원을 위해 국고지원 일몰조항도 삭제했다. 

신현영 의원은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인진료비가 증가하는 등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행 정부지원조차 일몰조항으로 인해 중단된다면 건보 재정운영에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며 "시급히 법 개정을 논의해 건보재정에 대한 정부지원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대만 등 건강보험 국고지원 비중 강화 추세

프랑스, 일본, 대만, 독일 등 대표적인 사회보험방식 의료보장체계 국가에서는 공적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을 강화하는 추세다.

사회보장부담 증가,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 인구구조 변동,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근로소득 기반 보험료 재원조달의 한계 등으로 보험료 수입의 증가는 한정돼 있는데 지출은 늘어나 건강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재정 위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재정연구센터가 작성한 '주요국의 건강보험 정부지원 정책이 한국의 건강보험에 주는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국가별로 역사적·제도적 특징에 따라 방식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책임은 강화하는 추세다. 
 
국가별 건강보험 재정 관련 정부지원 비중을 보면 프랑스 52.3%(2018년 기준), 일본 27.4%(2016년 기준), 대만 23.1%(2016년 기준) 등이다. 

프랑스는 소득에 기반한 준조세로 '비스마르크식 + 베버리즘' 혼합형 복지제도를 선택했으며, 정부지원 비중이 52.3%로 가장 높다. 일본은 노령화·조합재정 불균형을 국가와 사회연대의 공동책임으로 인식하여 조합 간 이전과 국고지원을 동시에 진행했으며, 급여 지출 정률을 보조하고 있다.

대만은 국가 주도형 건강보험의 발전경로에 의해 국가가 의료보장을 위한 적극적 지원을 법제화해 보험료 수입의 최소 36%를 국고로 지원할 것을 명문화했다. 독일은 조합주의에서 정부개입 최소화를 선호하지만 아동·임·출산과 같은 가족정책은 예외적으로 국가 책무를 강조하며 보험 외 급여에 대해선 국가가 정액으로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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