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상한가 인상
제약사,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정으로 생산 확대 난색
"시장성 떨어져 생산라인 계속 확충하기도 어려워"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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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정부가 감기약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약가를 인상했다. 하지만 해당 의약품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 상당수가 원료의약품 공급 문제로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3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조제용 해열·진통·소염제인 아세트아미노펜 650밀리그램 18개 품목의 건강보험 상한금액 인상을 의결했다. 정부는 제조·수입원가 등을 검토해 해당 성분의 상한금액을 인상하고, 제약사별 공급 기여도 등을 고려해 1년간 한시적으로 최대 20원의 가산을 추가로 부여키로 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내년 11월까지 각 제약사와 3개월 동안 월별 공급량을 계약하고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전체기간인 13개월 동안 해당 품목의 월평균 생산량을 기존 대비 50% 이상 확대키로 했다. 

특히 겨울철·환절기는 수요증가 및 시중 재고 소진 등을 고려해 집중관리기간으로 설정하고 기존 대비 월평균 생산량을 60% 확대키로 했다. 

복지부는 “주로 감기약으로 사용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은 코로나19 환자의 증상 완화 및 백신 접종 후 발열 등에도 사용되며, 코로나19 유행기간 동안 수요량이 크게 증가하는 등 수급이 불안정했다”며 “이번 결정으로 코로나19 및 독감 동시 유행 등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포르시안 취재 결과,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650밀리그램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 상당수가 원료의약품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을 생산·공급하는 국내 A제약사 관계자는 “원료가 품절돼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며 “정부로서는 상황이 급하니까 공급을 늘리기를 원하겠지만 상황이 이런데 약가를 올렸다고 해도 생산을 늘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을  생산·공급하는 B제약사 관계자 역시 “우리 회사뿐 아니라 다른 제약사들도 다들 원료 때문에 난리”라며 “원료 공급에 여유분이 생기는 내년 봄쯤 돼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원료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대형 제약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른 제약사에 비해 규모가 큰 C제약사 관계자는 “우리도 다른 제약사와 비슷한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원재료 공급이 어려운 상황으로, 원료 공급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약사들이 고민하는 또 다른 문제는 생산량을 늘리려면 생산 라인도 확충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 입장에서 생산 라인 확충에 소요되는 비용과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의 처방액에 대한 장기적 비용 효과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C제약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650밀리그램 매출이 매력적이지 않아 생산라인을 많이 갖추지 않고 있는데, 정부에서 요구하는 생산량을 맞추려면 생산라인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라포르시안이 국내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UBIST)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가 약가를 인상한 18개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품목 중 올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누적 원외처방액이 40억원을 넘는 제품은 한국얀센의 타이레놀8시간이알서방정(48억 6,434만원)과 삼아제약의 ‘세토펜이알서방정’(40억2,488만원)에 불과했다.

한미약품의 ‘써스펜8시간이알서방정’은 39억1,856만원, 코오롱제약의 ‘트라몰서방정650밀리그람’은 26억7,159만원, 부광약품의 ‘타세놀8시간이알서방정’은 20억4,002만원, 종근당의 ‘펜잘이알서방정’은 12억6,084만원이었으며, 약가 인상 품목의 절반 정도는 올해 9개월간 누적 원외처방액이 2~5억원 사이에 그쳤다.

C제약사 관계자는 “코로나19 및 독감과 관련한 상황이 좋아지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초과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는 늘린 생산라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감기약 수급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약가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실제 시장 상황과 유통 구조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관련기사: 또 감기약 대란 조짐...공급 부족 아닌 다른 이유 있다?>

국내 D제약사 관계자는 “감기약이 부족한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수요가 모자란 것인지, 특별히 감기약을 많이 찾게끔 사회적 분위기가 조장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위중증 환자나 노인 등 취약층을 제외하고 코로나19에 확진됐을 때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봐야 하나”라며 “현 상황이 정부가 약가 인상이라는 카드를 들이밀 만큼 심각한 상황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감기약이 시장에 제대로 공급돠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해선 유통 구조에 문제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재 제약사들은 능력 안에서 최대한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약이 품절이라면 유통 과정의 문제로 감기약이 모자란 것인지, 실제로 감기약이 부족한지 확인해야 한다”며 “시장과 유통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약가만 올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가 인상 조치 후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제약사들이 그 불똥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그는 “약가 인상은 정부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약가를 인상했지만 해당 치료제 공급 상황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약가까지 올려줬는데 제약사가 생산량을 늘리지 않아 공급이 부족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제약사로 돌리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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