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野 의원실 주최로 '건보 보장성 후퇴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 열려
건보재정 누수 주범은 병상 공급과잉·실손의료보험 등 지목
"긴축 아니라 공적 지출 늘려 보장성 강화해야 할 때"

1월 3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긴축기조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 후퇴 문제점과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제공: 참여연대
1월 3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긴축기조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 후퇴 문제점과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제공: 참여연대

[라포르시안]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긴축재정 기조 아래 사회보험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건강보험 지출을 줄여서 아낀 돈을 필수의료 기반 확충에 사용한다는 정책기조는 발표 당시부터 많은 비판을 샀다.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 때문에 여전히 국민 의료비 부담이 높다는 점을 간과한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란 비판이 거세다. 
 
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긴축기조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 후퇴 문제점과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참여연대와 무상의료운동본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강훈식⋅김민석⋅남인순⋅강선우⋅고영인⋅김원이⋅서영석⋅최종윤⋅최혜영 의원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보장성 강화 정책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생겼다는 주장을 지적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 광범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과잉 진료 등을 유발해 건강보험 재정건전성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은 인구 고령화 및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건강보험 지출이 늘서 오는 2060년이면 적자가 388조까지 커질 것이란 장기재정추계를 기반으로 한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20.2조 원(2021년 말 기준)으로 적정수준"이라며 "건강보험공단과 기획재정부, 국회 예산정책처의 재정 추계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한 것으로, 2026년 건강보험료 율 법적 상한선에 도달 후 2040년까지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수가 인상률과 진료비 증가율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의 수치"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건강보험료율 법정 상한 도달 시점은 2028~2030년으로 예상되고, 누적 적립금의 경우 기획재정부는 ‘2060년 장기재정전망’에서 2025년 고갈된다고 전망했지만 보건복지부는 2025년 15조 원 규모일 것으로 예상했다"며 "역대 정부의 건강보험료 인상률은 과거 5년 기준 2.3%로, 현재 부과 기반 확대와 부동산 가격 증가 등으로 건강보험료율 증가보다 보험료 수입 증가율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사진 제공: 참여연대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사진 제공: 참여연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재정위기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초음파와 뇌 MRI 검사 중 남용 의심 진료비 규모는 2천억 원으로, 전체의 약 9%"라며 "건강보험 보장성이 높아져서 재정 위기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생기는 원인으로 ▲병상 공급 과잉 ▲만성질환관리 ▲실손보험을 지목했다. 

김 교수는 "병상 공급이 늘면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까지 입원하게 된다. OECD 수준의 병상수와 구조를 갖추게 되면 전체 입원의 약 1/3이 감소하고, 2021년 기준 건강보험 입원진료비 35.4조 원 중 11.8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 가입유형별 의료이용 현황을 분석해보면 비가입 12.9%, 정액형 33.3%, 실손형 15.5%, 정액형+실손형 38.4%"라며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을 때 건강보험 진료비 남용은 4.6조 원~10.1조 원으로 나타났고, 외래진료비는 12%, 입원진료비는 29%~5.8%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구조의 문제도 크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정책 대부분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대한 복지부의 과도한 영향력과 편향된 의제설정, 회의록과 안건 비공개 등 불투명한 운영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며 "가입자 권한이 강화된 건정심 개편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정심 산하에 사무국을 두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평가위원회를 통합 운영해 행위에 대한 승인과 급여결정을 하도록 해야 과도한 급여 책정을 방지할 수 있더"며 "건정심 위원 구성은 공급자 8인, 보험자 및 가입자 8인, 공익 4인, 투표권이 없는 시민·소비자·환자 대표 4인으로 구성을 재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앞세워 긴축을 할 때가 아니라 공적 지출을 늘려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국가가 지출하는 의료비의 GDP 대비 비율은 4.8%로 OECD 평균 6.6%에 크게 못 미치고, 환자 본인부담 의료비는 GDP 대비 3.3%로 OECD 평균 2.2%보다 1.5배 높다"며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 책임이 부족하다보니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61%로 OECD 평균 74%에 한참 못 미친다.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하며 긴축을 할 때가 아니라 공적 지출을 늘려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정책국장은 "윤석열 정부는 낮은 의료비 본인부담으로 과다 의료이용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잉진료는 공급자(의료인)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며 "한국은 인구당 병상 수가 OECD 평균의 3배이고, 병원들이 과잉진료로 이 병상들을 채우고 있다. 과잉진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민간 공급자를 통제하고 민간의료보험 성장을 억제해야 하는 데 정부는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흥수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성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민간 중심의 상업화된 의료 공급체계 문제를 심화시키며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며 "민간 중심의 공급구조와 비용 유발적인 행위별 수가제가 건강보험 재정누수의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김 사회공공성위원장은 "의료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부터 해결해야 하고, 실손보험에 대해서도 보험 상품, 비급여 가격, 급여기준, 보험료 등 계약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과도한 초과이윤과 비급여 진료비 인정 기준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책임 강화를 위해 20% 국고 지원을 항구적 법제화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언론이 '건강보험 재정 위기' 프레임을 앞세워 보건복지 분야에서 긴축재정 기조를 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제갈현숙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 위기’ 프레임을 유포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은 2016년 이후 준비금의 규모가 20조 원을 돌파함. 이는 가입자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지출해야 할 재정이 적극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언론이 검증 절차 없이 재정 위기라고 전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는 급여비용 충당에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경우 이를 보전할 목적으로 ‘준비금’을 규정하고 있다"며 "준비금은 적립이 목적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적립금의 개념과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기재부의 재정 안정화 조치로 준비금을 적립금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과잉진료의 한 요인으로 '외국인의 무임승차'를 지목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의 무임승차’를 들며 외국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며 "2021년 말 기준 내국인 피부양자는 1789만1856명인데 비해, 외국인 피부양자는 19만1909명에 불과하다. 직장가입자 1인당 피부양자 수도 내국인은 0.96명, 외국인은 0.4명으로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 절반 이상 적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가 전체 가입자의 3%도 채 되지 않지만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기여는 외국인 지역가입 의무화 이전인 2017년 2천억 원 대에서 2021년 5천억 원 대로 크게 늘어났다"며 "정부는 외국인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켜 나가겠다는 지금과 같은 개선 방안은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도 건강보험 재정 위기와 관련한 장기재정추계가 갖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에 참석한 복지부 손호준 보험정책과장은 "건강보험 재정 추계를 종합계획을 통해 5년 전망을 하고 있지만, 실제 재정이 어떻게 변할지는 어떤 정책 변수와 경제 상황을 설정하는 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보장성 강화만이 재정 위기의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고, 다양한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모두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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