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석(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혁신산업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우리는 코로나19로 많은 일상의 변화를 경험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원격의료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디지털 전환은 보건의료산업의 주요 아젠다로 등장했다. 백신은 CMO와 같은 위탁생산 영역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했고 더 많은 기업과 병원에서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은 빠르게 확산됐다. 반면에 제품 공급 이슈와 가격 인상 요인 역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의료기기·의약품은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특히 필수 의료기기나 의약품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는 자국 보호주의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를 발표했고 미국 내 연구·제조를 강조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외국 기술과 자본을 국내로 유치하고 자국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일본은 외자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비즈니스 환경 개선책으로 3년간 연구개발비용의 최대 50% 지원이라는 당근을 내놓았다. 더불어 이노베이션 브릿지 플랫폼을 통해 국내 기업과 해외기업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높은 법인세율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국가 전략 특구·종합특구 기업을 대상으로 당기 법인 세액의 최대 20% 한도 내 세액공제를 적용했다. 법인세율 17%로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싱가포르 또한 기업 유형에 따라 유연하게 세율공제 및 법인세 면제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다국적 기업 헤드쿼터 인증제를 통해 지역 헤드쿼터의 해외 소득에 대해 총 5년간 법인세율 2%를 감면했다. 때문에 많은 외국계 회사 지역 본사는 다양한 보조금 지원책과 잘 마련된 인프라를 갖춘 싱가포르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영국은 민간기업 운영에 있어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으며 외국인 소유나 투자를 제한하는 법률이나 규칙이 없다. 앞서 2021년에는 과학 및 임상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 친화적 비즈니스 환경 구축을 위해 ‘Life science vision’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밖에 아일랜드는 2000년도부터 바이어테크 산업을 육성해 왔으며 국가 차원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 세액을 25%까지 공제하고 지출 비용의 40%까지 반환해 줘 기업들의 연구개발을 촉진시켰다. 또 글로벌 기업의 유치 프로젝트 추진 시 약 1400억 원 예산을 지원해 마중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각 국가에서는 외국 자본과 투자를 국내에 유치하고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보조금과 세제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은 향후 산업적 가치와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러한 인센티브 제공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인센티브가 잘 작동하고 있을까.

타이레놀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 한국얀센은 약 30년간 유지해왔던 국내 공장을 2021년 말로 종료했다. 한때 약 20개에 육박했던 다국적 기업의 국내 제약 생산공장은 이제 2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해오다 상황이 좋지 않자 바로 공장을 폐쇄하고 떠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들이 왜 한국을 떠나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이유는 고임금이나 노사 갈등일 수도 있고 우리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다른 나라에 밀려서 일 수도 있다.

과연 외국기업에 대한 우리의 대우와 인센티브는 어떨까.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기업 하기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일까. 지난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미국 기업 회원사 약 80곳을 대상으로 ‘2022년 비즈니스 환경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미국 기업의 47.6%는 국내 비즈니스 환경에 대해 ‘평균’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좋다(29.8%) ▲평균 이하(21.4%) ▲나쁘다(1.2%) 순으로 응답했다.

이러한 설문 결과에도 불구하고 외국기업들이 한국의 바이오헬스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데 아직은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법인세 및 외국인 단일 세율 과세특례를 비롯해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는 여전히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우리 정부는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법과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및 혁신 의료기기 지원법 등 다양한 특별법을 제정해 산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국내 기업만으로도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면 외국 투자는 필요하지 않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오히려 외국 자본과 기술을 활용한 상생과 협업이 더욱 절실한 국가다. 비록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한국 내 제약 공장 문을 닫았지만 아직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GE헬스케어·지멘스헬시니어스가 생산 공장과 연구개발 시설을 국내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 메드트로닉은 국내 의료기기제조사와 내시경용 지혈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서로 협업하고 있다. 보스톤사이언티픽 역시 국내 스텐트 제조사의 호주 진출 지원에 이어 해당 제조사의 최대 주주가 돼 국내 공장과 연구시설을 운영하게 됐다.

이제는 정부가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고민해야 할 때다. 다국적 기업들은 오랜 시간 한국 시장과 공존하며 상생해 나갈 수 있기를 진정 바라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