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난방비 고지서를 보는 또 다른 시각

[라포르시안] 일부 지역에서 역대 최저기온을 갈아치우는 이례적인 한파와 폭설이 설 연휴 전국을 강타했다. 아린 추위와 함께 때마침 집집마다 배달된 난방비 고지서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에너지 요금 정책을 따져보게 만들었다. 

통계청의 2022년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전기·가스·수도 항목은 전년도 대비 12.6% 상승했다. 전기요금 3차례, 도시가스요금 4차례 인상이 반영되었으니 2021년 동향(-2.1%)과 비교하면 체감 상승률이 더 컸다(통계청 자료 바로가기). 올해 1월 전기를 시작으로 도시가스와 교통요금 인상도 예고된 가운데 사람들은 한기 속에 심한 심리적, 재정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천연가스의 국제거래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난방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가 내놓은 첫 답변이었다. 하지만 실질임금은 감소하는 경기침체 국면에서 난방비로 인해 여론이 동요하자 현 정부와 전임 정부가 서로의 실정 때문이라며 벌이는 공방은 이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명백하게 드러낸다. 

천연가스나 원유는 경제적 상품이자 지정학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정치적 상품이면서 투기적 선물거래의 대상인 금융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전쟁이나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복합적 위기에 직접 노출되어 있다. 한마디로 개인이 일상적 차원에서 수행하는 합리적 소비행위로 통제될 수 없는 재화이기 때문에 자원공급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역량이 중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내리는 유동성에 대비하고, 시장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장기계약이나 공급망 다변화, 해외자원개발 같은 포괄적 권한을 국가에 위임한 것이다.    

따라서 ‘비싼 상품은 비싸게 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은 국가의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국가는 단순한 거래중개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의 위기대응 원리를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위험을 분산하고, 위험이 가중된 쪽에 개입하여 불평등을 줄이는 과정을 통하여 위험의 총 크기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위기대응은 단기적이고 경제적인 손익계산을 넘어서, 장기적이고 사회적이며 생태적인 가치의 생산과 보호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권력은 국가에게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이성과 그것을 실천하는 정부는 어떠한가? ‘기재부의 나라’라고 불리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재정건전성을 존립의 목표로 여기는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는 긴축기조 아래 조세원칙의 형평성을 훼손하며 부자 감세, 초거대기업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부족해진 세수 충당과 공기업들의 재무 적자해소를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방편으로 삼고 있다. 에너지, 교통, 주거, 돌봄, 보건의료 등 시민들의 생존과 안녕에 직결된 필수 영역에 대한 공적 보호를 줄이고, 상품화와 시장화를 통해 개인들의 부담과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매우 취약한 개인들을 골라서 지원하겠다는 선별적 복지는 왜곡된 공정담론 속에서 각자도생의 경쟁과 끝없이 불안한 삶, 심화된 불평등 속으로 모든 사람들을 밀어 넣는다.

작년 12월 1일부터 1월 28일까지 한랭 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신고현황(질병관리청 자료 바로가기)에 의하면 한랭 질환자 수는 354명, 사망자는 11명이었다. 그러나 이 혹한의 피해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추위를 막지 못하는 집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고 복합적이다. 에너지 빈곤과 건강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추위는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호흡기질환자와 만성질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정신건강문제를 유발하거나 심화시키기도 한다. 추위로 둔해진 움직임은 뇌졸중, 만성통증, 낙상, 부상의 위험을 높인다. 또한 추운 집에서 사는 아이들은 초과사망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의 부적응이나 괴롭힘을 겪기도 하고, 폐와 두뇌 발달이 손상되는 장기적인 영향에 노출된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추운 집은 개인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사회적 교류와 삶의 기회를 제한하며, 사회적으로는 초과사망과 의료비 부담, 활동제약에 의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 문제는 기존의 건강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데, 최소한의 냉난방이 되지 않거나 재난적 에너지 비용을 지출하는 가구는 저소득층, 장애인, 노인, 만성질환자 가구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료 빈곤 또는 에너지 빈곤은 공중보건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연료비 인상을 겪고 있는 영국의 경우, 정부의 효과적인 개입 없이는 2023년 1월 전체 가구의 66%가 에너지 빈곤을 경험할 것이라 예상한 점에서 보듯(자료 바로가기), 에너지 빈곤은 다수 시민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별복지로 국가의 책임을 한정하려는데 맞서 모든 시민의 기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추위가 건강 위험이 되는 것은 빈곤, 주거환경, 에너지 사용이라는 사회적 요인 때문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지난 논평 바로가기). 그러나 정부는 요금인상을 대책이라 내놓고, 에너지 빈곤층 규모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이 임시적으로 주거급여 수급권자(135만명)나 에너지 취약계층(노인, 임산부, 영유아)을 대상으로 하는 에너지 바우처나 긴급지원금 지원정책을 발표하는데 그치고 있다. 

기후변화가 더욱 심한 추위와 더위를 만들어 낼 것이 예상되고 복합적 경제위기가 전망되는 가운데, 우리는 더 넓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개입하기를 서둘러야 한다.

[알립니다] 본지에서는 시민건강연구소의 '시민건강논평(구 서리풀 논평)'을 매주 게재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최선,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공동체'를 비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건강연구소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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