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위원회, 중간조사 결과 발표…“신고의무자 역할 미흡” 지적

[라포르시안 손의식 기자] 지난해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사망 사건과 관련해 숨진 아동의 학대사실에 대한 의료인 등 신고의무자의 역할이 미흡했다며 지적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회 차원에서 실시한 진상조사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신고의무자의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 위원회’(위원장 남윤인순 의원)는 지난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난해 11월 25일부터 2개월간 24개 기관과 개인을 상대로 실시한 서면조사와 31명의 개인을 상대로 실시한 면담조사를 바탕으로 한 중간발표회를 개최했다. 진상조사위원회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의원을 비롯해 한국아동권리학회, 한국아동복지학회,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의 아동보호단체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 한국여성변호사회 이명숙 회장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진상조사위는 중간발표회를 통해 아동보호관련 제도의 허점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소극적 개입을 지적하며, 학대 가해자가 기관의 개입을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을 제도적 한계로 지목했다.

특히 이양의 사망과 관련해 의료인 등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의 역할이 미흡했던 것도 한 원인으로 꼽았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의료인을 비롯해 어린이집 보육교사,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교 교사,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 22개 직군 종사자들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아동학대 인지시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아동학대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진상조사위 김희경 사무국장은 “숨진 아동이 다녔던 학교와 병원 등의 신고의무자 중 교육이나 아동학대예방교육을 받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며 “의사는 의과대학 재학 당시 소아과 과목에서 학대 예방과 관련한 교육을 들은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신고의무자의 교육 이행 모니터링 시스템이 부족한 점과 교육 내용이 부실한 점도 개선점으로 지목했다.

김 사무국장은 “직군별로 교육을 한다고 해도 해당 직군이 제대로 교육을 받았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교육 내용 또한 아동학대의 정의나 후유증 등 일차적 수준에 불과하고 학대 징후의 특징과 관찰 요령, 학대 의심시 취할 수 있는 대처방법에 대한 가이드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고의무자의 의무 불이행 사실 입증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신고의무자의 아동학대 인지 여부는 과태료 부과 주체인 지자체가 입증해야 하는데 해당 의사가 진료 아동의 학대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입증할 방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이양 사건과 관련해 울산시에 신고의무자를 파악해 과태료 처분을 할 것을 요청했다. 울산시청은 복지부의 요청에 따라 울산 울주경찰서의 협조 하에 이양의 초등학교 교사 2명, 이양을 치료한 병원 의사 2명과 간호사 1명, 학원장 2명, 학원교사 1명 등에 대해 울산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한 달여 조사를 실시했다.

시 복지여성국 관계자는 지난 24일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신고의무자들이 이양의 학대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특별한 정황이 추가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과태료 부과는 어렵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도 신고의무자의 의무 불이행 사실의 입증이 어려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이유로 진상조사위는 아동학대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신고의무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 울주 아동학대 사건을 보도한 KBS 뉴스 캡쳐 화면.

“의사 아동학대 신고의무 교육, 의협이 나서야”진상조사위 정익중 부위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고 의무자가 미 신고시 학대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면 신고의무 불이행 여부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그런 경우 과태료 부과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신고가 충실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당 신고의무자의 교육여부를 확인하고 미 이수 시 해당 기관 또는 신고의무자에 벌점 등을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고의무자의 의무 미행시 실효성 있는 과태료 부과를 위해 직군별 전문인으로 구성된 자문팀을 구성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김희경 사무국장은 “의무 불이행 입증 방법과 관련 해외 사례 연구와 전문가 검토, 청문 절차 등을 통해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며 “과태료를 부과하는 지자체가 직군별 전문 지식을 지닌 전문인들로 자문팀을 구성하는 등 소명 입증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협회와 의과대학에서 신고의무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진상조사위 이명숙 위원(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라포르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의료인에 대한 신고의무 교육은 교육 기회가 많은 의협과 의대에서 해야 한다”며 “의협 차원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주무부처인 복지부에서도 책임있는 교육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사가 아동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학대 여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위원은 “숨진 이양의 손바닥 화상만 하더라도 손바닥과 손등을 관찰할 때 뜨거운 물에 넣었을 때 생기는 화상이라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데 이양의 계모는 샤워기에 데였다고 했다”며 “이에 대해 의사는 보호자가 고의적으로 학대를 했을 것이라는 점에 관심을 갖고 신고를 했어야 한다. 의사들이 면밀히 관찰한다면 (학대 여부는)얼마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신고의무 교육보다 국가적 차원의 초동 시스템 구축 선행돼야”

현재 국내에서 의료인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는 연간 80~100여건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전체 아동학대 신고 건수 8,979건 중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는 3,316건 이었으며 이중 의료인에 의한 신고는 85건이었다.지난해 1분기 신고의무자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총 738건이었으며 이중 의료인에 의한 신고는 전체의 2.8%인 21건이었다.

의료계는 아동의 상태만 보고 학대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의사협회 송형곤 상근부회장은 “만일 학문적으로 어떤 증상이면 학대로 볼 수 있다고 나와 있다면 상관없지만 어떤 증상이나 병에 대해 학대를 의심해야 한다고 돼 있어 아동의 상태에 따른 앞뒤 정황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고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신고의무 교육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아시아·오세아니아의사회 연맹(CMAAO)은 지난해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총회에서 채택한 '아동학대 예방 결의문'을 통해 "각국 정부는 아동학대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신고제도, 피해아동 치료, 보호, 재발 방지 등에 대한 입법을 통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을 마련해야 하며, 국가아동보호등록제도를 설립·운영하고 매년 주기적으로 이를 모니터링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송 부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의료인이 아동학대를 의심해 신고했을 때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초동단계 해결 시스템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고의무 미 이행 시 학대 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지자체가 자문팀을 구성할 경우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꺼냈다.

그는 “학대 신고와 관련된 전제조건이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지자체가 자문팀의 도움을 받아 신고를 하지 않은 의사가 학대여부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또 하나의 규제이며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낼 것”이라며 “대충 만들어 놓고서 지키지 않는다고 규제를 하는 식의 접근은 안 된다. 환자를 진료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사가 왜 그런 상황에 닥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단순한 의심만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가 자칫 지역사회에서 낭패를 당할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인천 A소아청소년과의원 L원장은 “아이의 상태로 보고 학대가 의심된다 하더라도 동네의원 입장에서 신고를 하기란 쉽지 않다”며 “만일 학대가 아닐 경우 보호자로부터의 반발은 물론 그런(신고했다는) 사실이 동네에 알려질 경우 의원의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L원장은 “학대 사실이 확실한 경우에는 신고를 하는게 당연히 의사의 도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의심만으로 신고를 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처분을 하겠다는 것은 원론적인 생각일 뿐”이라며 “법을 만든 사람들이 임상현장을 이해한다면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없이 과태료 부과 조항만 들어있는 엉터리 법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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