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훈(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 이사)

[라포르시안] 당초 2025년부터 유통되는 모든 제품을 대상으로 의료기기 허가(인증·신고)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만료 전 허가를 갱신받도록 한 ‘의료기기 갱신제’가 유예됐다. 이미 몇몇 나라에서 도입·시행 중인 갱신제는 오래된 인허가 제품에 대한 안전성을 다시 검토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국민 건강을 위해 지금의 기준으로 제품을 검토해 제품 안전성을 전체적으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료기기 재평가와 다른 면이 있다. 갱신제 시행은 허가가 어려운 나라일수록 제품 인허가를 보유하려는 동기가 작용하고 이 때문에 수년간 수입 또는 제조하지 않는 허가증이 많아 행정적 관리비용이 과다한 만큼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인허가 규제 수준이 낮아 판매하지 않아도 일단 허가 먼저 받고 보자는 의료기기업체들과 행정처분을 피하고자 동일성 검토 등 제도를 이용해 여러 업체에서 허가를 나눠 갖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모 의료기기 관련학과에서는 학부생들에게 수업 중 과제로 허가를 받아오라는 촌극이 벌어진 적이 있을 정도다. 특히 결정적으로는 과거 90년대 허가의 경우 당시 품목에 대한 특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제품에 대한 기준규격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면들이 확인돼 전면적인 인허가 재검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번에 발표된 기준을 보면 재허가 수준의 갱신제는 5년 주기로 최신 기준규격을 적용해 현재 허가심사 기준에 따라 모든 자료를 구비해 제출해야 한다. 식약처는 3·4등급 제품을, 2등급의 경우 심사기관을 통해 검토받게 돼 있다. 만약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갱신을 못 받게 될 것이고 인허가증은 무효화 된다.

의료기기업계 입장에서는 갱신제가 여간 부담스러운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모든 제품에 대한 최신 기준규격에 부합하는 갱신 자료를 구비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갱신 기준을 맞추기 위한 각종 시험 비용은 ▲GLP 적용 ▲시험 항목 증가 ▲품목 기준 고도화 등으로 과거에 비해 수십 배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허가증이 많은 업체는 각 제품에 대한 갱신제 유효기간에 따른 심사기준을 맞추기 위한 추가적인 인력과 함께 각종 시험을 위해 최소 1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신제품 등록도 빠듯한 상태에서 갱신을 위한 품목별 투입 노력이 신제품만큼 들다 보니 비용과 인력 측면에서 상당한 부담이 됐고, 이를 식품의약품안전처 관련 부서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었다.

물론 갱신제는 이미 의약품에서도 도입돼 시행 중이다. 초창기 많은 어려움을 겪고 난 후 결국 일부 수정안을 거친 후 현재 안정화 단계를 거치고 있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시행 초기 어려움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혼란과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책입안자의 책임일 것이다. 의료기기 갱신제 역시 산업계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제도 개선을 논의했고 이번에 최종 시행안이 발표됐다.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갱신제의 경우 5년이라는 유예를 통해 준비 기간을 늘렸다. 단순히 준비 기간을 늘린 것이 아니라 모든 자료를 제출받아 5년 뒤 업체가 어떤 자료를 보완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알려줬다. 이를 통해 업계 입장에서는 갱신에 따른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입장에서는 한숨을 돌렸지만 그렇다고 갱신제를 손 놓고 볼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번 발표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과거 20년간 안전성 자료에 근거해 문제없이 사용되는 제품이 과연 지금의 갱신 기준을 맞추기 위해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검토가 필요하고, 이를 근거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갱신 요건을 완화하려면 사전 관리 단계인 인허가에 대한 자료요건을 확대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제도가 생물학적안전성 평가보고서·임상평가보고서 및 기준별 차이를 분석한 보고서 등이 있다.

셋째, 제품 안전을 위한 갱신의 제도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전·사후관리 제도에 대한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며, 업계에 우선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인허가, 재평가, GMP 인증, 갱신 등이 적절한 정책 목표를 갖고 운영될 수 있는 공동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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