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미(사이넥스 의료기기 임상개발부 이사)

[라포르시안] 지난달 미국 디지털 치료기기(DTx) 회사 페어테라퓨틱스(이하 페어)社의 파산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해당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런 식의 결말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DTx 시장에서 항상 언급되던 페어였고 공교롭게도 국내에서 DTx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1·2호 제품의 적응증인 ‘불면증’의 첫 사례가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모습과 우리의 성공에 대한 기대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막 DTx의 시장진입을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페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들과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다르다”라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애초 DTx의 시장진입에 대해서는 출시 전부터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지고 있었다. 국내 DTx 치료 시장이 연평균 30% 가까이 성장할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과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시도는 DTx가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전 세계가 고령화되는 상황 속에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고령화를 맞이하며 자연스레 만성질환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인지행동 치료를 시작으로 수많은 만성질환 관리·예방까지 우리에게도 DTx가 필요하고 가능성 있는 헬스케어라는 시장에 대한 인식은 높아져 가고 있다.

헬스케어 사업에 꾸준히 매진하던 기업들 외에도 제약·IT·게임업계까지 DTx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페어는 불면증과 약물중독, 오피오이드 중독에 대한 DTx를 개발하고 미국 공보험으로부터도 사용인정을 받았지만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따라 지출이 매출을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우리에게도 보험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무엇보다 헬스케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판가름할 때 가장 우선시 되는 문제 중 기존 치료 프로세스 안에 안착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임상 관점에서 치료 효과가 불분명해 이것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냐 있겠느냐하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워낙 의료시장은 새로운 것이 기존 과정 안에 유입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처방을 하는 의사도, 사용하는 환자들도 질병 개선을 위해 기존에 하던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강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과정을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인식의 개선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무엇보다 사용성에 대한 경험이 중요할 것이다. 맛보지 않은 음식에 대해 숟가락을 들기까지 사람은 많은 갈등을 한다. 일단 음식이 내 눈앞에 있어야 이것을 먹을 수 있다. 먹지 않고 그림으로만 보는 음식에 대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음식은 맛뿐만 아니라 보는 것, 냄새로 느끼는 것이 더해져 내가 계속 선호하게 될 것인지 다시는 안 보고 뒤돌아서게 할지 결정하게 된다. DTx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직 DTX라는 이 정찬을 말로만 겪었을 뿐 아직 내 눈앞에서 맛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과도 같다. 누구는 좋다라고 하고 누구는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하는데 그 경험은 모두 개인의 생각에 기인한다. 자꾸 가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 경험이 쌓이다 보면 축적된 공동의 의견이 모아 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CRO로서 DTx 임상시험을 수행한 필자 역시 해당 기기를 객관적으로 접할 경험을 아직 갖지 못했다. 해외에서 이슈를 끌고 그 후 우리나라에서 재배에 성공한 과일 맛이 궁금하나 아직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또한 DTx를 언급할 때 항상 함께 따르는 실사용 근거에 대한 부분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3세대 신약이라 불릴 만큼 아직은 새로운 이 약이 임상시험이라는 제한적 조건의 근거들만을 갖고 시장을 설득할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직은 우리가 살펴보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더 많을 것이며 그러한 근거는 사용성을 넓히고 실사용 증거를 꾸준히 축적하면서 가치를 공고화할 것이다.

DTx 산업에서 페어의 파산은 큰 충격이고 쓰라린 상처이기는 하지만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산업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 년 동안 지금보다 더 많은 변화를 보일 것이라 기대한다. 녹차는 그 수확시기에 따라 세작(작설)·중작·대작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세작은 곡우와 입하(5월과 6월) 사이에 딴 잎을 우려낸 차로 잎이 다 펼쳐지지 않아 참새의 혀를 닮았다는 의미로 작설차라고도 부른다. 어린 새순으로 만들어 쌉쌀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강하고, 감칠맛도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차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제 막 새순을 따냈다. 이제 막 디지털 치료기기의 잎을 얻은 우리가 대작을 얻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세작을 마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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