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

[라포르시안] 과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에이즈(AIDS)는 이제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에이즈가 아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이 만성질환이다. 에이즈는 HIV 감염 후 진단이 늦거나 적절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시행하지 않아 질병이 진행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HIV 감염과 에이즈는 다르다.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1980년대만 해도 마땅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HIV 감염되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연상이 사회에 깊이 자리 잡았지만, ART의 발전을 통해 HIV 감염 사실이 조기에 진단되고 바로 치료에 돌입하면 에이즈로의 발전을 막고 HIV 감염 상태에서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하루 한 알 치료제 복용으로 이른바 평생 관리가 가능해졌다.

‘신속 치료(Rapid Initiation of Treatment, RapIT)’는 오랜 기간 HIV 치료 전략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치료제들의 등장으로 신속을 넘어 진단된 당일에 치료에 돌입해야 한다는 ‘당일 치료(Same-day Initiation)’가 새로운 HIV 치료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HIV는 진단되더라도 치료제를 처방하기에 앞서 선행 검사가 필요한 만큼, 유전형 약물 내성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제 적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치료 개념 하에서도 최소 유전형 약물 내성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미충족 요구가 있었다.

최근 가장 많이 처방되고 있는 HIV 치료제 3제복합 단일정 빅타비의 경우 유전형 약물 내성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급성 감염된 HIV 감염인에게도 바로 처방이 가능하다. 당일 치료를 할 경우, HIV 진단 후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 치료를 시작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고,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인 만큼 빠른 치료 시작으로 인한 복약순응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감염내과 의료진의 설명이다. 라포르시안은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김정호 교수를 만나 과거와 비교해 많은 발전을 이뤄온 국내외 HIV 치료 현황과 중요한 치료 전략 등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 지난 2022년부터 HIV 감염인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로 알고 있다. 증가 추세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연간 신규 HIV 감염인은 꾸준히 1,000명대를 유지했다. 코로나19가 성행했던 2021년 900명대로 감소했다가 작년 기준 다시 1,000명대로 올라섰다. 2021년 신규 HIV 감염인이 감소한 이유는 HIV 검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보건소가 코로나19 방역 업무로 인해 HIV 검사를 일시 중단하면서 HIV 고위험군이 보건소에 원활하게 방문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HIV 양성 판정을 받은 감염인, 특히 젊은 연령층이 꾸준히 치료를 잘 받아서 실질적으로 타인에게 전파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올해는 신규 HIV 감염인이 더 늘지 않고 1,000명대를 유지하거나 조금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HIV 예방 약물 요법인 HIV 노출 전 예방요법(Pre-Exposure Prophylaxis for HIV, PrEP) 도 국내 도입돼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신규 HIV 감염인을 줄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단되지 않은 HIV 감염인도 존재하기 때문에 HIV 검사가 보다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HIV 치료에서 신속 치료, 나아가 당일 치료가 중요한 이유는.

= 신속 치료, 더 나아가 당일 치료는 치료 예후와 환자 개인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첫 번째, 가능한 한 빨리 치료에 돌입할수록 바이러스가 더 빨리 억제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몸에 퍼지면서 일으킬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두번째,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개념에 따라 바이러스가 미검출 수준으로 유지되면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빠를수록 전파 위험 또한 줄일 수 있다. 이외 감염인 개인 측면에서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면서 HIV가 관리가능한 질환임을 알게 돼 심리적 불안감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CD4 세포를 기준으로 치료 시기를 정해 CD4 세포 수가 일정 수준으로 감소하면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부터 CD4 세포 수와 상관없이 신속하게 치료에 돌입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면서 신속 치료가 보편화됐다. 보통 치료하기 전에 B형 간염 동반 여부, CD4 세포 수치 검사, 유전자 내성 검사 등이 수반돼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치료제마다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이 각기 달랐기 때문에 이러한 검사를 통해 감염인의 데이터를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비약적인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사전 검사 없이 당일 처방해도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치료제도 개발됐다. 

- 당일 치료 시 환자와 의료진 입장에서 어떤 장점이 있나.

= 신속 치료에서 더 나아가 당일 치료가 보다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당일 치료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다. 당일 치료에는 2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먼저 환자 개인이 복약을 시작하겠다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또 의료진이 당일 치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환자에게 당일 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가 이에 동의할 때 당일 치료가 시작된다. 충분히 상담을 통해 당일 치료 시작을 결정한다.

당일 치료의 장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있어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료진이 있다. 다만 당일 치료의 효과를 입증한 대규모 전향적 연구는 의료 자원과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진행됐던 연구가 주를 이루다 보니 한국과 같이 의료 접근성이 좋은 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료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환자가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면 바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더 이롭다고 본다.

- 모든 치료제가 당일 치료가 가능한가.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 당일 치료제로 권고하는 치료제로는 무엇이 있나.

= 그렇지 않다. 현재 당일 치료가 가능한 치료제로는 빅타비가 있다. 빅타비는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도 초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가장 우선적으로 권고하는 대표적인 치료제다.

- 빅타비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5년 장기 데이터를 내놓은 HIV 치료제로 알고 있다. 5년 장기 데이터 결과는 어땠으며, 연구 결과가 진료 현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 아직까지 HIV 완치제는 없다 보니 치료 과정에서 HIV 감염인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면서 장기간 별다른 문제없이 효과가 지속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빅타비 5년 장기 데이터는 아주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빅타비는 5년 장기 데이터 분석 결과 내성 발현 없이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꾸준하게 유지됐다. 또한 부작용 빈도도 매우 낮았으며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일부 빅타비 구성 성분과 관련해 체중 증가와 골밀도 검사(BMD), 콩팥 기능, 이상지질혈증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5년 장기 데이터 결과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없었으며 특별히 악화되지 않았다고 보고됐다. 

그간 빅타비를 처방하면서 좋은 치료 옵션이라고 생각했는데 5년 장기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으로 효능과 안전성, 내약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의료진과 HIV 감염인 입장에서도 중요한 선택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 빅타비 처방 사례도 많이 쌓였을 것 같은데, 환자들로부터 듣는 치료제에 대한 피드백이 있나. 특히, 빅타비가 3제 요법이다보니 기존 2제 요법 대비 안전성이나 약물 상호작용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 HIV 감염인은 크게 초치료와 치료제 변경(스위칭) 환자로 나뉘는데 아무래도 초치료 환자군은 처음 치료를 시작하다 보니 여러 우려를 가지고 치료를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치료에 돌입하고 나면 약을 먹는다는 사실 이외 달라지는 것이 없고 별다른 부작용이나 어려움도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3제 요법은 빅타비, 2제 요법으로는 도바토가 있다. 두 옵션 모두 좋은 치료제라고 생각한다. 2제가 3제와 비교했을 때 비열등한 결과를 보였고 두 약제 모두 1차 치료 약제로 권고되고 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사용해 봤을 때도 두 약제 중 어느 하나가 효과 면에서 열등하지 않았다. 3제보다 2제 요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분이 하나라도 더 적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복약했을 때 더 이로울 것이라는 접근인데, 이는 일종의 가설이다. 실제로도 2제가 3제보다 더 장기적으로 안전하고 이롭냐고 봤을 때는 아직 객관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3제 빅타비는 고민 없이 당일 치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진보된 옵션이다. 2제 도바토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긴 하지만 이를 충족한 경우에 1차 약제로 권고되고 있다. 어떤 약제가 내약성과 안전성 면에서 더 우수한지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 데이터와 증명된 결론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설이 아닌 실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 HIV 치료에서 내원 횟수나 복약 편의성 등에 대한 환자 요구도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라면.

= 예전에 비해 HIV 감염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본인의 감염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 집이 아닌 외부에서 약제를 복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1일 1회 복용과 복용 시 식사 여부가 처방에 중요한 포인트다. 일부 치료제는 한 번에 여러 알을 복용하거나 식사 여부에 따라 복용에 제한이 있기도 한데 빅타비는 단일정 복합제(single-tablet regimens, STR)로 하루 한 알로 관리가 가능하며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이 가능하다. 더욱이 알약 크기도 작아서 복용하는 입장에서 더욱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 HIV 진단 및 검사나 치료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 HIV에 감염됐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HIV는 과거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고혈압처럼 하루 한 알로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 됐다. 별다른 부작용 없이 편리하게 관리 가능하며 감염 이전과 동일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생각해 검사와 치료를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 여전히 HIV는 미진단 감염인에 의해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U=U 개념 등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로 미진단 감염인들을 진료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치료받음으로써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도움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