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술기를 책으로만 배우는 전공의들…병원 돈벌이 위한 값싼 의사인력으로 전락

▲ 초음파 교육을 받고 있는 전공의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라포르시안] #. 수련 과정에서 초음파와 내시경 등의 임상술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내과 전공의 #. 4년의 수련 기간 동안 백내장 수술을 한 번도 집도해보지 못한 안과 전공의 #. 맹장수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외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

현재 전국의 수련병원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3~4년의 전공의 수련기간 동안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임상술기를 익히지 못하는 상황이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전공의가 임상술기를 배우기 위해 비싼 비용을 들여 외국의 병원을 방문하는 일종의 '여행상품'까지 등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학병원의 외과계열 전공의들이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인력) 등의 임상술기를 배우기 위해 인도와 중국 등지의 병원을 찾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임상술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공의들의 주당 근무시간이 평균 80시간을 넘다보니 병동 입원환자의 주치의 역할부터 각종 행정업무와 잡일 등을 소화하다보면 임상술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외과계열에서는 펠로우나 PA에게 수술보조를 맡기는 일이 늘어나면서 전공의는 수술을 참관하는 역할을 그치는 등 임상술기를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전공의에게 진료받기를 꺼리는 경향이 심화되는 것도 전공의들의 임상술기 교육 기회를 빼앗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공의 수련기간 내내 행정업무 및 잡일로 시간을 보내면서 전문의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임상 술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수련을 마치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다

초음파와 내시경은 내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개원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술기이지만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제대로 익히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 탓에 개원을 하기 전 초음파와 내시경을 익히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펠로우 과정을 거치거나 2차 병원에 취업해 술기를 익히는 경우가 많다.

초음파는 내과전공의 2년차부터 교육하도록 수련교과과정에 명시돼 있지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후 익히고 있는 상황이다. 전공의 수련기간이 4년이 아니라 5~6년으로 늘어난 꼴이다.

모 대학병원의 내과 4년차 전공의 L씨는 “상급종합병원인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특성 상 교수나 전문의에게 검사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전공의가 술기 수련의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것은 수련병원에서 제대로 임상술기를 익히지 못한 전공의들이 외국의 병원을 찾아서 술기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학병원에서 안과 전공의들이 백내장 수술 한 번도 해볼 기회가 없어서 1인당 천만원씩 내고 인도에 가서 수술을 하는 여행상품을 통해 수술경험을 쌓고 있는 실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노 전 회장은 지난 11일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실제로 외과계열 전공의들이 수년 전부터 자비를 들여서 인도 등지의 병원으로 찾아가 수술경험을 쌓는다고 들었다"며 "한국의 전공의들이 인도 현지 병원으로 많이 찾아오니까 관련 비용이 많이 인상됐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도 대신에 중국 현지 병원으로 가는 여행상품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임상술기 경험을 쌓기 위해 외국의 병원을 방문하는 상황은 이미 수년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지금은 수련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과정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 전 회장은 "주로 외과계열 전공의나 펠로우들이 외국의 병원으로 수술경험을 쌓기 위해 가고 있다"며 "한 안과의사는 자신도 6년 전에 인도의 병원을 찾아가 수술경험을 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담당 교수가 외국 병원에 가서 수술경험을 쌓고 오라며 권하는 일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결국 수련병원의 교육기능 부실화 때문이다. 전공의가 병원의 몸집 부풀리기를 위한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되는 구조가 유지되는 이상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이 힘들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수련병원의 일부 지도전문의는 전공의를 교육시켜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입 안의 혀처럼 부릴 수 있는 PA로 전공의를 대체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PA가 의사의 업무를 담당함에 따라 자신들의 교육권을 침해 받고 있다는 사례를 수없이 접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수련교육의 정상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수련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공의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공의특별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병원 경영자들 중심의 대한병원협회로부터 독립된 객관적인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구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수련평가 업무를 병협에서 떼어내는 것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협은 "수련환경평가가 병원들이 전공의를 값싸게 부리는데에 대해 서로 면죄부를 주기위한 요식행위로 악용됐다"며 "전공의 특별법은 수련당사자인 전공의를 평가위원으로 포함하는 객관적인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구성해 매년 수련환경평가를 시행하고 이 결과를 수련병원 지정에도 반영함으로써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강조했다.

안과 수련기간 중 '백내장 수술 집도 경험' 캐나다 전공의는 200회 이상, 한국 전공의는 20회 이하한편 2011년 발간된 대한안과학회지에 게재된 '안과 전공의 수련과정 중 백내장 수술에 대한 설문조사'(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를 보면 이미 수련교육의 부실화 징조가 보인다.

이 보고서는 2010년 4~9월까지 안과전공의 4년차 112명을 대상으로 전공의 수련과정 중 백내장 수술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35명이 설문에 답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백내장 수술을 처음 집도한 시기는 전공의 4년차 때가 65.7%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전공의 3년차 때 집도한 경우가 28.6%였다.

전공의 수련과정 중 백내장 수술 집도 횟수는 20회 이하가 88.6%였고, 한 번도 집도하지 못한 경우도 1명 있었다.

백내장 집도 경험이 드물다보니까 제대로 술기를 익히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수술 후 합병증 발생률도 높았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 후 수정체 잔유물이 유리체강 내에 남아서 생기는 합병증 발생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40%에 달했다.

반면 2009년 발표된 캐나다의 조사결과를 보면 수련과정 동안 201-300회 사이의 백내장 수술 경험이 27%로 가장 많았고, 500회 이상인 경우도 15%에 달했다. 100회 이하의 경험은 5% 뿐이었다.

국내 수련병원의 전공의 교육기능이 얼마나 취약할 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외국 수련병원의 전공의보다 반드시 익혀야 할 임상술기 경험은 훨씬 적은 반면 근무시간은 2배 이상 많은 한국 전공의들의 상황은 수련병원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지 짐작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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