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업 후 잠가 놓은 지방의 한 중소병원 출입문.

[라포르시안] "200병상 규모 지방 중소병원 100개를 국가에서 사들여 공공병원화 하면 어떨까"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병상 공급의 관리와 의료전달체계'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 중소병원장이 이런 제안을 하면서 참석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생존경쟁에서 밀려 더는 운영이 힘들만큼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지만 그렇다고 병원을 청산할 수 있는 절차도 없어 옴짝달싹 못하는 지방 중소병원의 처지를 언급하면서 나온 제안이었다. 그만큼 갑갑한 상황에 놓인 중소병원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병원계에 따르면 3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 폐업률은 10%를 넘고 있으며, 병상 규모가 작을수록 휴·폐업률은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박수경 책임연구원이 의료정책포럼에 게재한 '병원 신증설의 현황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의료기관을 병상 규모별로 볼 때 100~299병상 병원이 47.3%, 100병상 미만이 47.7%로 전체 폐업 병원의 95%를 차지했다.

300~499병상 규모 병원의 폐업은 4.5%, 500병상 이상 병원은 0.4%에 그쳤다. 지역별로는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과 함께 경남북과 전남북 지역 등에 위치한 병원 비율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을 중심으로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1990년 대비 2013년의 지역별 병상 공급 증가율은 서울과 부산은 각각 199%, 200%인 반면 전남은 428%, 경북은 324%에 달했다. 수도권(300%)보다 비수도권(317%)의 병상 증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박수경 책임연구원의 '병원 신증설의 현황과 분석' 보고서 중에서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가 농촌이나 지방 시군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중소형 병원의 신규 개설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중소병원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 내몰린 이유는 복합적이다. 지방 중소도시의 지속적인 인구감소에 따른 환자 수 감소, KTX 등 대중교통 수단의 발달로 인한 지역내 환자 유출, 비슷한 규모의 경쟁 병원 증가에 따른 환자유치 경쟁심화, 의료전달체계 미정립 등으로 갈수록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지방 중소병원은 환자 감소로 인해 병상 이용률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중소병원의 병상 이용률은 68.6%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병원의 입원환자 재원일수가 대형병원과 비교해 훨씬 더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병상이용률은 이보다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지방환자의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시도별 수도권 진료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지방환자 226만명이 수도권 의료기관을 이용해 약 2조8,000억원의 진료비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정진료 환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충청남도로, 지난해 43만5,000명이 수도권 의료기관에서 원정진료를 받았다. 지방환자의 원정진료는 해가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전체 진료비는 25조1,000억원에서 55조로 약 2.2배 증가하는 사이 지방 환자의 수도권 의료기관 이용에 따른 진료비는 같은 기간  1조1,000억원에서 2조8,000억원으로 2.6배 늘었다.

지방 중소병원은 환자수 감소에 따른 경영난으로 신규 시설투자나 의료인력 확보마저 여의치 않다.

특히 의사나 간호사 인력을 구하지 못한 지방 중소병원 중에는 산부인과 등의 진료과 기능을 축소하거나 응급실을 폐쇄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으며, 분만과 응급의료를 시작으로 지역의 필수의료시스템이 무너진 지 오래됐다.

한 지방 중소병원장은 "지방의 시군단위 지역은 인구수가 급격히 감소하다보니 300병상 이상의 병원을 도저히 운영할 수 없는 구조"라며 그러다 보니 어느날 갑자기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고 야간진료만 보는 중소병원이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경남 하동군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던 H종합병원이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을 폐쇄해야 할 상황에 처하자 지자체가 보건소 소속의 간호인력을 파견하는 일도 있었다.

경남의 한 중소병원장은 "신규 간호사를 채용하지 못한 게 벌써 8년째다. 지방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려는 간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며 "군단위 지역에서 우리 병원과 같은 처지에 몰린 곳이 숱하게 많다. 응급의료나 분만 같은 필수의료는 지역 사람들의 죽고사는 문제임에도 정부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지난 1월 28일 국회에서 한국보건행정학회와 더불어민주당 김용익 의원 공동주최로 '병상 공급의 관리와 의료전달체계'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비영리법원 병원 퇴출 구조 없어 불법적·음성적 매매 가능성" 상황이 이렇다보니 퇴출 구조만 마련된다면 병원 운영을 포기하고 싶어하는 중소병원도 적지 않다.

대한병원협회 조한호 보험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병상 공급의 관리와 의료전달체계' 토론회에서 "부실 의료기관에 대한 퇴출절차가 부재하기 때문에 경영여건상 운영이 불가능한 병원도 파산할 때까지 운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 때문에 의료서비스 질 저하나 경영악순환으로 인한 지역 의료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비영리법인 병원의 퇴출구조가 없는 탓에 불법적·음성적 법인 매매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조 위원장은 "비영리법인 의료기관 간 합병을 통한 부실기관의 퇴출이 가능해진다면 경영부실 의료기관의 감소로 인한 불필요한 진료비 증가 억제,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해 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 관점에서 차라리 정부가 나서 경영이 어려운 지방 중소병원을 인수해 공공병원화 하거나 제한적으로 중소병원 간 인수합병과 청산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석 교수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주제발표를 통해 기존 300병상 미만 병원 간의 인수합병 허용과 중소형 비영리법인 병원의 청산 촉진을 위한 규제 완화를 한시적(5년)으로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실장은 올 1월에 나온 <월간 병원동향>에 기고한 글을 통해 "2013년 기준으로 전국 병원의 의료수익 순이익률은 1.3%이지만 중소도시 소재 160병상 미만은 마이너스 10%의 수익률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군지역에 소재한 중소병원의 줄도산이 일어나고 있으며, 해당 지자체에서는 민간병원의 공공병원화를 추진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원도 정선군은 수년 전부터 추진해 온 의료원 건립사업이 난항을 겪자 민간병원을 인수해 군립병원을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실장은 "지방 중소병원을 지역사회 의료제공의 거점병원으로 육성하고, 공공병원으로 의료제공기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전국의 중소병원들을 대상으로 지역거점 병원으로서의 공공병원 기능과 성격을 부여하는 새로운 모형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방 중소병원계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지역거점병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목포한국병원 류재광 원장은 "현재 있는 지방 중소병원 중 일부를 공공병원화 해서 지역거점병원으로 구축해야 한다"며 "그러나 지방의료원처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의 필수의료 부문은 국가가 책임져 주고 나머지는 개인이 운영하는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방안이 정책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기존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힘들고, 설령 인수하더라도 병원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국회 토론회에서 "20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 100개 정도를 정부가 사서 공공병원화 한더라도 과연 적절하게 지속적으로 운영될 것이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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