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민간보험사 이윤 극대화가 목적”…보충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건강보험제도 위협

[라포르시안]  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의료기관에 실손보험금 청구 대행을 강제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2016년 업무보고’를 통해 의료기관이 환자 요청에 따라 진료비 내역 등을 보험회사에 송부하고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을 직접 수령하는 ‘실손의료보험금 청구절차 간소화’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진료를 받은 후 의료기관에 비용을 지불한 후 진료비 영수증 등 구비서류를 서면으로 발급당아 해당 보험회사에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후불제' 방식이다.

금융위의 실손보험 청구절차 간소화가 시행되면 가입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환자가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직접 가입된 보험회사에 진료기록 등을 보내서 보험금을 청구하는 일종의 '직불제'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얼핏 듣기에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에 따른 불편이 개선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손보험금 청구절차 간소화는 많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가장 우려해야 할 대목은 보험사가 병원에 직접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건강보험 보험자와 비슷한 지위를 확보하는 효과를 얻게 되고, 병원으로부터 확보한 진료기록 등의 데이터를 구축해 보험금 지급이나 계약 갱신시 가입자에게 불리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보험사와 아무런 계약관계도 없는 상황임에도 실손보험 청구대행을 위해 상당한 행정업무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반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청구절차 간소화와 함께 실손보험 심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하는 방안도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어 궁극적으로 공적보험인 건강보험과 경쟁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은 청구절차 간소화 시범사업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원협회는 2일 성명서를 내고 금융위원회의 실손의료보험금 청구절차 간소화 시범사업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의원협회는 "의료기관에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법적 근거가 없고, 의무기록의 타인열람을 금지한 의료법 제21조에 위반된다"며 "의료기관이 실손보험사와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므로 실손보험 청구대행은 법치주의의 기반이 되는 사적자치의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며 제3자 사이의 계약에 의해 의료기관에게 부당한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협회는 "약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진료 청구액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청구를 다시 해야 하므로 실손보험 청구대행은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방해 및 재산권 침해의 여지도 있다"며 "의료기관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약관에 근거한 삭감은 진료에 대한 간섭 행위로 보아 의료법 12조에도 위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증진하는 목적이라며 청구대행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보다 보험회사의 보험금 청구절차를 간소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금융위가 정말로 환자 편의를 위한다면 위법 행위의 소지가 있는 청구대행 시범사업 운운하기보다 보험회사에게 환자들이 약관에 명시된 보험금을 청구할 때 그 절차나 서류를 간소화하면 해결될 일"이라며 "보험회사에서는 환자에게 필요한 서류를 애매하게 고지하거나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고 그 절차 또한 복잡해 환자들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게끔 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방치하고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높고 위법 소지가 있는 실손보험 청구대행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협회는 꼬집었다.

협회는 "금융위의 이번 발표는 건강보험 및 사보험 청구대행이 환자 편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보건당국과 보험회사의 빅데이터 수집 목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며 "개인정보보호법 준수 운운하며 의료기관에는 갖은 규제를 가하면서도 오로지 보험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위법 행위를 서슴지 않는 금융위의 작태를 규탄한다"고 밝히고 청구대행 시범사업을 강행할 경우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 대한의사협회가 지난해 12월 일간지에 게재한 '실손보험 청구대행 반대' 광고

"의료계 반대에도 강행할 경우 의료기관 건강보험 청구 업무 거부 사태 촉발"

실손보험 청구대행이 시행되면 의료기관의 행정업무 부담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그 피해가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도 높다.

병원 입장에서는 민간보험사와의 실손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발생할 행정업무 부담과 지급 거부에 따른 소송 등의 문제를 떠안게 되며, 이 때문에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지난달 26일 성명을 내고 "이 정책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의료 이용을 통제하고,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를 줄이게 만들어 실손 보험사들의 배만 불릴 것"이라며 "이 정책이 시행되면 의료기관들은 민간보험사와의 진료비 청구 과정에서 발생할 행정 소요와 소송 비용 등의 부담으로 환자가 원하는 만큼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보험 계약자인 환자들의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의도가 의료비 통제와 함께 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란 의혹도 제기했다. 

전의총은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되면서 실손 보험사 배불리기에만 악용될 실손 보험 청구업무 대행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전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위헌적인 정책을 강제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청구 업무를 거부하고, 건강보험 지정 자체를 거부하는 사태를 촉발시킬 것"이라고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등의 보건의약단체도 실손보험 심사 위탁 및 의료기관의 청구대행 등 일련의 정책 추진에 공동 대응할 방침이다.

의협은 지난달 22일 "실손보험 활성화 대책은 보험사의 몸집 불리기이자 의료영리화의 단초라는데 뜻을 같이하고, 실손보험 활성화 저지와 실손보험의 근본적 개선에 의약단체가 공동 대응키로 했다"고 밝혔다.

의약단체들은 의료기관 청구대행 등 일련의 실손보험 관련 대책이 보험사의 진료정보 집적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진료비 지급 거부 및 계약 갱신 거절 등의 수단으로 활용해 보험사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실손보험 활성화 대책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단체 및 보건의료 관련 노조와 연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의협은 "실손보험 관련 대책이 보험사의 진료정보 집적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진료비 지급 거부 및 계약 갱신 거절 등의 수단으로 활용해 보험사의 이윤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며 "의약단체는 민간보험활성화 방안의 명목으로 강행되는 금융당국 및 보험사의 시도가 결국 국민건강에 치명적인 위해가 되는 심각한 사안인 만큼 시민단체와 보건의료 관련 노조 등의 공통된 뜻을 모아 향후 공동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보험금 청구대행 등의 실손보험 활성화 정책이 궁극적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약화시키고 의료영리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건강보험처럼 병원이 보험사에 진료비(보험금)를 직접 청구함으로써 실손의료보험이 건강보험과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고, 여기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같은 전문 심사기관이 위탁심사를 맡을 경우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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