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장비 편중된 수가체계가 인력 확충 걸림돌…보건의료정책 적정인력 확보에 초점 맞춰야

[라포르시안]  흔히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한다. 그만큼 노동력이 많이 든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료인력의 노동력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의료기관의 의료인력 상황을 보면 '노동집약적'이란 말의 의미가 달리 해석된다.

'OECD 헬스 데이터 201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4.8명으로 OECD 평균(9.3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 병원에서는 간호사 5~6명이 담당하는 일을 한국에서는 1명의 간호사에게 떠넘겨진 상황이라고 한다.

간호사 인력난이 만성적이고 고착화된 상태라 적정인력 상태에서 어떤 간호서비스가 제공되는지에 대한 개념조차 낯설 지경이다.

전공의는 또 어떤가. 사회 전반에 걸쳐 주 40시간 근무가 확산되는 상황인데 전공의는 여전히 주당 평균 90시간 넘게 근무하고 있다. 임금은 다른 의사직종에 비해 가장 저렴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최저 연봉은 약 2,900만원, 최고 연봉은 약 5,800만원 수준이었다.

그마나 이런 열한악 근무환경이 환자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전공의특별법'이 작년 말 제정됐다. 그래서 전공의 근무시간을 일주일에 최대 8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다. 주당 80시간…. 이것도 당장 시행이 아니라 2017년 말부터다.

병원이 원래 이런 곳인가. 적정 의료인력을 채용하기보다 부족한 인력으로 최대한의 근무시간을 짜내는 곳이라서 '노동집약적'이라고 하는 건가 싶다. 노동집약이 아니라 노동자 학대 수준이다.

병원의 적정 의료인력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뭐고,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사람 값'에는 박하고 '기계 값'에는 후한 건강보험 보상체계"의료기관의 적정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보건의료 인력개발 기본계획 수립과 보건의료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시설과 장비 사용에 편중된 건강보험 의료수가 보상체계를 병원의 '적정인력' 확보를 위한 보상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CTV소비자연구소 등 4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주최로 지난 25일 '의료서비스 요구 변화에 부응하는 보건의료인력'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19대 국회 마지막 회기로 열리는 4~5월 임시국회에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본격 심의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에 전달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세미나 주제발표에서 인제대 보건대학원 이기효 교수는 '보건의료 공급체계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건의료 인력정책'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보건의료서비스의 적정 제공을 위해 의료인력 수를 적정하고 확보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료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종별의 전문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인구 고령화와 의과학 기술의 발전, 질병 패턴의 변화, 보건의료 재정 및 서비스 전달체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고 새로운 보건전문인력이 필요하다"며 "급속한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전문직의 분화 및 전문화가 미흡해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직종의 수와 다양성 측면에서 국민의 변화하는 보건요구를 적절하게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처럼 각종 검사와 간호, 직업치료 등의 분야에서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전문직종을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신규 보건의료 전문직종의 창출은 의사 및 간호사 등 의료전문직의 업무를 분담함으로써 기존 의료인력 수 증대에 관한 과도한 압력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보건의료 전문직종 창출을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보건의료 인력개발 기본계획의 수립과 보건의료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씽크탱크와 컨트롤타워 마련, 한국의 현실과 국민 요구, 직무 분석에 근거한 직종 개발과 자격 신설, 규제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석 교수는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의료인력 정책'이란 발제를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적정 의료인력 확보 방안으로 ▲병상 자원의 공급과잉 해소 ▲의료기관의 인력 확충을 유도할 수 있는 수가 보상체계 마련 ▲환자의 과잉 의료이용 해소 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병상 자원의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300병상 민만 중소형 병원간의 합병 허용을 검토하고, 중소형 비영리법인 병원의 청산을 위한 규제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기관의 인력 확충을 유도할 수 있는 건강보험 보상체계 마련이 필수라고 제안했다.

그는 "현행 건강보험 보상체계는 '사람 값'에는 박하고 '기계 값'에는 후한 방식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일자리 창출을 오히려 억제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며 "이를 사람 값에 후하고 기계 값에 박한 보상체계로 상대가치수가를 개편하고, 일자리 창출에 연동된 보상체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처럼 의료기관이 '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 공급 방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수가 구조와 의료전달체계의 부재로 환자들이 과잉의료 양상을 띄게 되는 상황을 개선하기 정책 개입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의료서비스 공급자 측에서는 박리다매식 진료에서 탈피할 수 있는 보상체계가 필요하고, 이용자 측에서는 합리적 의료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전달체계와 의료이용 정보 제공이 필요하고, 환자당 적정 진료시간 확보를 보장하는 보상하기 위해 진찰료와 입원료 산정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제안이다.

2015년 9월 2일, 전국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가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환자안전 위협하는 병원노동자 장시간노동 근절을 위한 근무시간 실태조사 선포식'을 열었다.

"병원의 고용 창출 조건으로 수가인상 해야"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는 보건의료 정책과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이제는 '적정 의료인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서울대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는 "몇 년 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기피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 관련 분야의 수가를 100%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결국은 수가인상이 병원의 수입으로 돌아가고 인력확충을 위해 사용되지 않았다"며 "적정수가를 책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병원의 고용 창출로 이어질 수 있게끔 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고용 창출을 조건으로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가인상과 병원의 고용 창출을 연결시키는 건가아보험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적정 의료인력을 지키지 못한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수가감산 등의 페널티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의 다양한 의료서비스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보건의료 전문직종이 창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환자들의 다양한 의료서비스 요구가 있는데 지금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보건의료 인력 기준이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환자 안전에 초첨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의료인력 수준에서는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와 함께 적정 보건의료인력 수급과 양성, 유지를 위해서는 중장기적 계획 수립과 준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을 통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단장은 "병상수 기준으로 우리나라 간호사 1인당 병상 수는 4.5병상으로 미국(0.71병상), 영구(0.56병상), 일본(2.0병상)보다 월등히 많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간호사 6~8명이 하고 있는 간호업무를 한국은 고작 1명의 간호사가 다하고 있다"며 "의사들이 주 90시간 일하고 있고, 입사와 동시에 사직과 이직을 고민하는 간호사들이 넘쳐나고 의료기관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진료와 간호를 받고 싶을까"라고 반문했다.

보건의료 인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적정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되는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시급히 제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단장은 "2014년 환자안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은 통과되지 않고 있다"며 "환자를 돌보는 보건의료인력 확충 없이는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서는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통과돼 병원의 적정인력 확충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다양한 방식의 인력가산제도, 인력확충에 필요한 정책수가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양질의 인력 확보, 안정적인 수급과 양성, 교육훈련 지원 등을 위해 장비 검사 위주의 수가정책이 아니라 사람중심, 보건의료인력정책과 관련된 수가정책에 건정심이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복지부도 이런 문제인식에 공감하고 적정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수가체계 필요성에 원론적으로 공감했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문상준 사무관은 "의료인력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또한 (의료수가에서)인력에 관한 인센티브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의료 질 평가에서 (의료인력 확보와)인센티브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병상당 의사와 간호사 수 등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문 사무관은 "의료인 면허신고제를 바탕으로 의료인력에 관한 공급체계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또한 2017년 말부터 전공의특별법 시행으로 병원에서 인력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력확중 문제를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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