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한 건강보험 보장성으로 재난적 의료비 발생…복지부,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제도화 추진

[라포르시안] #. 서인수씨(가명)는 결혼하고 나서 10년 만에 장만한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옮겼다. 올해 일곱살이 된 아이가 '신경모세포종'이란 희귀 소아암 진단을 받으면서 각종 검사와 치료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은행 대출도 이제 한도가 꽉 찼기 때문에 결국 집을 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비용이 들어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살던 집을 팔아서 전세로 옮기고, 전세를 축소하고, 다음에는 전세에서 월세로, 그 다음에는…. 그렇다고 아픈 아이를 위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은 한숨만 자꾸 늘어간다.     

가족이 큰 병에 걸릴 경우 갑작스러운 의료비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때문에 전세금을 빼거나 은행대출, 심지어 사채에까지 손을 벌리는 가구가 적지 않다. 60% 중반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가정 경제의 파탄과 빈곤화를 초래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의료비를 '재난적 의료비'라고 부른다. 재난적 의료비 부담은 상당수 가구를 빈곤으로 내몰거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게끔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 9월 발행한 <보건사회연구>지(誌)에 게재된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가구경제에 미치는 영향’(우경숙 한양대학교 박사후과정·신영전 한양대학교 교수)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적 의료비 발생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빈곤 상태에 있을 확률이 1.423배 높게 나타났다.

재난적 의료비 때문에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로 전락하는 신 빈곤층마저 생겨나고 있다.

▲ 자료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가구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중에서. 재난적 의료비는 가구의 소득이나 지출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 경우. 

중증질환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전세를 축소하거나 재산을 처분한 가구, 의료비 조달을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가구 등을 합하면 30~40만 가구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13년 8월부터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도입했다.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암, 심장혈관, 뇌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으로 입원치료를 받는 저소득 가구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본인부담액 의료비를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하는 제도이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 및 ‘3대 비급여 제도개선 방안 마련’ 추진 과정에서 의료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문제는 이 제도가 올해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여전히 60%대 중반에 머물고 있어 재난적 의료비로 인한 가구의 경제적 파탄과 빈곤화를 막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제도화 해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다행히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이 제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끔 제도화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제도화 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및 3대 비급여 보장성 확대정책의 보완책으로 중증질환 재난적의료비 한시적 지원사업 시행 중이며, 4대 중증 이외에도 고액의료비 발생 질환도 존재하는 등 의료비 부담 사각지대가 존재해 계속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소득의 3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가구가 저소득층은 연간 약 9.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 가구는 민간보험 가입률도 10% 수준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복권기금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금을 통해 한시적으로 운영되다보니 재원 조달이 불안정한 실정이다.

▲ 자료 출처: 보건복지부 

실제로 사업비가 부족해 지원금 지급이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의 예산이 부족해 의료기관에 미지급한 금액이 120억원에 달했다.

복지부는 "안정적 재원 확보를 위해 건보재정 활용의 필요성이 있다"며 "지원 대상자 소득, 재산 파악, 민간보험 등과의 이중수급 방지 등을 위해 법적근거 마련 등 제도화 검토가 필요하며, 본인부담상한제,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고도 고액의 의료비(본인부담액 및 비급여)가 발생하는 서민의 부담 완화를 위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고액의료비로 인한 서민 의료비 부담경감을 위해 지원대상 질환 기준을 완화하고 사업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재원 확보 방안과 제도화를 추진키로 했다.

제도화 추진시 지원대상은 저소득계층(중위소득 80% 이하(4인 월소득 351만원이하)가구, 의료급여, 차상위계층) 및 의료비 과부담 가구를 포함한다.

적용 대상 질환은 암, 심장,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의 4대 중증질환과 중증화상으로 인한 입원 의료비와 함께 점진적으로 질환 범위를 넓혀서 고비용 환자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지원 범위는 법정 본인부담금 및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수술·처치 등의 비급여 항목까지 포함한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에 필요한 재원은 정부 예산지원과 민간 기부금, 제약사 환급금 등 다양한 재원 확보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복지부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의 효과 및 제도화 방안을 오는 10월까지 연구한 후  2017년까지 관련 법령 제·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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