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학회·의사회·아동병원협회, 소아청소년 진료체계 붕괴 경고
전공의 인력 유입 지원책·수가 정상화 등 촉구

[라포르시안] “소아청소년 진료 체계가 가라앉고 있다. 처음에는 배에 물이 천천히 들어오지만 침몰 직전에는 굉장히 급속도로 가라앉게 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배가 가라앉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아서 지킬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가라앉기 전에 대책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16일 대한의사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소아청소년 건강안전망 붕괴위기 극복을 위한 합동 기자회견’에서 현재 소아청소년과 진료 체계의 현실을 토로하며 국가적 차원의 해법을 촉구했다.

이날 합동기자회견은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한아동병원협회가 함께 개최했다.

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소아청소년과는 전 세계에서도 유래없는 초저출산과 소아 진료의 특성상 필요한 많은 시간투입과 업무강도에 못미치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보상수가로 대량진료에만 의존해 왔다”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40% 진료량 격감으로 지역거점 1차 진료체계 붕괴가 진행되며 미래 비젼을 상실했고, 생명을 다루는 노동집약적 필수 진료과에 대한 보상지원정책의 변화가 없고, 중환진료에 따른 의료소송과 의료진에 대한 책임전가 등으로 전공의 기피현상이 최악으로 악화됐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올해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에는 정원 207명 중 33명만 지원해 지원율이 15.9%까지 폭락했다.

김지홍 이사장은 “인구의 17%인 소아청소년의 필수 진료를 담당하는 소아청소년과 3차 수련병원의 전문 인력 부족으로 중환자 진료와 응급진료 축소 및 위축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오랫동안 지속되는 과한 업무, 인력 부족 때문에 가장 먼저 응급진료가 먼저 축소되고 있고 이어 병동 진료와 중환자 진료 축소가 예견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 복지부 공청회에서 문제의 핵심인 전공의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지원과 정책 변화가 잘 제시되지 못해 앞으로 위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소아청소년과학회는 소청과 진료 대란을 방지하고 사회안전건강망 붕괴를 우려해 전공의 인력 유입 회복과 진료 인력난 해소를 위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소아청소년과학회는 문제 해결을 위한 개선방안으로 소아청소년 진료 특성에 맞는 보장수준의 강화로 의료인력 유입을 유도하고 중증도 중심의 3차 진료 수가개선으로 진료전달체계를 개편할 것을 제시했다.

소아청소년 입원 진료에 대한 낮은 보상수가가 수련병원 소청과의 적자와 인력 및 병상 운영 위축의 중요한 원인인만큼 기본 입원진료 수가의 소아연령 가산을 2배 이상 강화해 전공의 인력 유입이 가능한 안정된 진료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증도에 따른 입원 및 행위료 가산율 인상도 제안했다.

3차병원의 부족한 인력이 중증질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경증질환 대비 중등도에 따른 가산율을 높여, 경증질환의 하급병원 재분포를 유도하고 부족한 의료 인력자원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게 학회 측 설명이다.

소청과 전공의 수련지원 및 지원 장려 정책 마련도 촉구했다.

학회는 현재 전공의 지원 급감으로 소멸이 우려되는 필수진료과인 흉부외과, 외과에서 시행하는 전공의 임금지원과 보조인력 비용지원을 소청과에도 적용해야 하며, 전공의 수련과 수련담당 지도전문의 인력 비용에 대한 국가 지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국 수련병원의 인력위기 극복을 위해 전문의 중심진료 전환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고난이도·중증 입원진료의 인력부족 극복을 위한 입원전담전문의 고용 지원 ▲응급전담전문의 고용지원 사업 확대 ▲입원전담전문의 관리료의 성인대비 소아가산 및 소아청소년과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신설 ▲전문의 중심 진료와 전공의 인력부족을 지원할 보조 인력 고용 지원 병행 ▲병원평가 및 상급종합병원 평가에서 환자안전 평가점수에 입원전담전문의, 중환자실전담전문의 및 응급전담전문의 운영점수 가산 및 보상 지원 등을 제시했다.

이 밖에 1차 진료 회복을 위한 수가 정상화와 관리·중재 중심의 1차 진료 형태 전환을 비롯해 복지부 내에 소아청소년과 필수의료 지원 및 정책 시행전담 부서 신설도 제안했다.

김지홍 이사장은 “최소한으로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소청과 전공의가 유입되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며, 특히 중환자 진료와 응급 진료는 전담전문의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조속한 지원이 필요하다”라며 “가장 중요한 1차 진료가 살아나지 않으면 전공의들이 소청과로 눈을 돌리는 동기를 잃게 되는 만큼, 1차 진료를 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소아청소년의 국가적 건강안전망이 붕괴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대통령 직속 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기획재정부, 소아청소년과의사들이 현장 상황에 맞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국회가 법과 예산으로 뒷받침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실제 소청과 개원가에서의 진료 붕괴현실을 전했다.

임현택 회장은 “의료 현장에서 보는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지난주에 서울시 은평구 소청과에 아이가 열성경련으로 왔다. 아이들의 경우 열성경련으로 15~20분이 넘어가면 뇌손상이 올 수 있고, 30분이 넘어가면 사망할 수도 있다”라며 “그러나 서울시내 어느 병원에서도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하다 어렵게 서울대병원으로 보낸 적이 있다. 이런 재난 상황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지금 현재 이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소청과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당부했다.

임 회장은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미래가 안 좋기 때문으로,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면 지원이 될 것이다”라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킴으로써 병원 운영을 할 수 있고 아이들의 진료 인프라를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는 정부가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정부가 주저할 상황이 아닌 만큼, 하루빨리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아이들을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박양동 회장은 응급의료 체계의 재정비와 무과실 의료사고 면책 범위 확대 등을 촉구했다.

박양동 회장은 “2010년도 한 아이가 장중첩증으로 5개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경북대학병원에서 사망한 일이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 여러 대안을 만들었지만 과연 현재 응급 시스템이 개선됐는지 묻고 싶다”며 “2017년 이대병원에서는 병원 내 감염으로 모두가 도망갈 때 홀로 남아서 책임감을 보이던 전공의가 진료상 과실 혐의로 형사고발이 이뤄진 바 있고, 2019년에는 가천대 길병원에서는 소청과 전공의가 주당 110시간을 근무하다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소청과 전공의를 지원하지 않는 근본적 원인이다”라고 진단했다.

박 회장은 “대한민국 어린들의 생명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소청과 전문의들은 아이들의 안전한 성장을 간절히 원한다”라며 “정부 당국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소아 진료 시스템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어린이 진료 안전망 유지를 위한 ‘양육의료특별법 제정’ ▲응급의료 체계 재정비 ▲수가 정상화 ▲소아 응급·소아중환자·신생아전담·입원전담의 고용 지원을 위한 긴급 예산 투입 ▲무과실 의료사고 면책범위 확대 ▲소청과 필수의료 전담 정부실무자 선임 및 협의체 구성 ▲저출산고령위 민간위원회 참여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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