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지속가능성 제고 대책, 의료쇼핑 막고 급여기준 강화 초점
"민간 중심 의료공급 구조와 행위별수가제로 과잉진료 유발"

[라포르시안] 정부가 과다하게 외래의료를 이용하는 이른바 ‘의료 쇼핑’ 환자 본인부담률을 높이고, MRI와 초음파의 건강보험 급여기준도 강화하기로 했다. 복부 초음파 촬영의 건강보험 적용 횟수도 줄이기로 했다.

이런 정책 방향은 결국 환자 본인부담을 높이고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8일 ‘제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확정했다. 

이날 확정된 방안은 단기적으로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필수의료 등 보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보건의료 구조 개혁 등 중장기 대책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단기 대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단기간에 급증한 일부 MRI·초음파 등 항목 급여 기준 재검토 ▲의료서비스 과다 이용(연간 외래 365회 초과 등) 시 본인 부담 차등방안 검토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을 위한 산정특례 적용범위 명확화 ▲외국인 피부양자 등 건강보험 자격요건 강화 등이다. 

복지부는 의료계가 참여하는 'MRI‧초음파 급여기준개선협의체(이하 협의체)'를 구성하고 급여기준 개선 논의에 들어갔다. 

정부가 마련한 MRI‧초음파 급여기준 개선안을 보면 뇌·뇌혈관 MRI는 현재 두통·어지럼은 신경학적 검사 시 급여 인정, 최대 3촬영까지 급여를 적용하는 방식에서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소견 있는 경우에만 급여 인정, 최대 2촬영으로 제한이 검토되고 있다. 

상복부 초음파는 현재 수술 전 초음파 시행 시 급여가 적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가운데 수술 위험도 평가 목적의 초음파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급여를 적용하는 쪽으로 개선이 논의되고 있다. 

다부위 초음파는 현재 동일 날짜에 여러 부위를 불필요하게 동시 검사하는 사례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어 동일날 여러 부위 촬영 시 최대 산정 가능 개수를 제한하는 기준 마련이 논의되고 있다.

과다한 의료 이용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복지부가 작년 12월 공개한 지속가능성 제공 방안에 따르면 과도한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 연간 365일(하루 1회씩)을 초과해 외래 진료를 이용한 사람에게는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현재 평균 20%에서 90%로 높인다. 가령 10만원정도 의료이용을 했을 경우 지금은 2만원(본인부담률 평균 20%)을 환자 본인이 부담하면 되지만 앞으로는 9만원을 내야 한다. 

복지부는 과다의료 이용자 등록·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과다이용을 조장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선 기획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암 등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을 위한 산정특례 적용범위도 손을 본다. 산정특례는 중증·희귀질환자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5∼10%로 낮게 적용해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로, 질환과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합병증은 특례 적용을 제외하고 105개 경증 질환부터 제외 대상을 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건강보험 구조 개혁 등 중장기 대책도 마련했다. 장기 대책의 주요 과제는 ▲지불 방식의 다양화 및 가격결정체계 개편 ▲병상 관리와 전달체계 개선 ▲비급여 관리 개선 ▲적정 보험료와 국고지원 수준을 포함한 수입구조 개편 ▲건강보험 재정 운영 투명화 등이다. 

하지만 정부가 마련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은 건보재정 위기를 환자 책임으로 돌리고, 보장성도 낮은 상황에서 환자 의료비 부담을 높여 재정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으로 정부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는 "낮은 본인부담이 환자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켜 과잉진료를 유발한다는 정부 주장은 허구"라며 "과잉진료는 민간의료기관이 95%인 현실을 정부가 조장하고 행위별수가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아니라 의료를 상업화해 의료 공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정부 정책이 문제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과잉진료를 줄이려면 공공병원을 늘리고, 민간의료보험을 통제하고, 비급여를 줄여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건보 보장성을 후퇴시키는 것은 환자들에게 앞으로도 더욱 실손보험에 의존하라는 신호나 다름 없으며 결국 의료민영화로 나아가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선 의료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부터 해결하고,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3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긴축기조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 후퇴 문제점과 대응 방안' 토론회에서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우리나라의 초음파와 뇌 MRI 검사 중 남용 의심 진료비 규모는 2천억 원으로, 전체의 약 9%"라며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생기는 원인으로 ▲병상 공급 과잉 ▲만성질환관리 ▲실손보험을 지목했다. 

김 교수는 "병상 공급이 늘면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까지 입원하게 된다. OECD 수준의 병상수와 구조를 갖추게 되면 전체 입원의 약 1/3이 감소하고, 2021년 기준 건강보험 입원진료비 35.4조 원 중 11.8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 가입유형별 의료이용 현황을 분석해보면 비가입 12.9%, 정액형 33.3%, 실손형 15.5%, 정액형+실손형 38.4%"라며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을 때 건강보험 진료비 남용은 4.6조 원~10.1조 원으로 나타났고, 외래진료비는 12%, 입원진료비는 29%~5.8%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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