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저수가에 흔들리는 정형외과…"수술 할수록 적자 쌓여“
정형외과 전문의 63% "수술 수가, 비현실적으로 낮아"

대한정형외과학회 한승범 보험위원장(고대 안암병원장).
대한정형외과학회 한승범 보험위원장(고대 안암병원장).

[라포르시안] “정형외과는 수술 원가보다 낮은 수가로 인해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일 수밖에 없다. 대다수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에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다. 심지어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를 앞두고 정형외과 수술은 중증도가 낮다는 이유로 경영진이 담당 교수에게 수술을 줄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정형외과학회 한승범 보험위원장(고려대안암병원 병원장)은 지난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내 정형외과의 현실을 이같이 전했다. 

한승범 보험위원장은 국내 정형외과의 문제로 급여 섹터의 원가 보상률이 너무 낮다는 점을 꼽았다. 이런 이유로 정형외과를 포함한 근골격계 치료의 주류가 비급여 위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승범 위원장은 “정형외과에서 급여 항목들은 골절이나 응급을 요하는 필수 의료에 해당하는 것들이고, 비급여 항목은 더 급한 질환이 포함돼 있는데 인력과 자원이 거의 비급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조적인 문제로 필수 급여인 외상 수가가 낮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 위원장은 “중증외상센터에서 약 70% 이상이 정형외과 수술이지만 수가가 낮기 때문에 상급종합병원들이 경영적인 이유로 정형외과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며 “올해부터 안암병원장을 맡고 있다 보니 대학병원들의 경영지표를 살펴보게 되는데, 전국 대학병원 정형외과 중 이익이 남는 곳은 한 곳도 없고 대부분 마이너스”라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대학병원 외과에서 가장 각광받는 과는 일반 외과인데 병원장 입장에서는 일반 외과에 의사도 뽑고, 장비도 사주고, 수술실도 배정하고 싶은 곳”이라며 “정형외과와 일반 외과 사이의 환자 당 수술 시간은 크게 차이가 없지만 행위수익은 정형외과가 외과의 40%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골격계의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는 게 보인다.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어떤 개입이 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게 한 위원장의 주장이다.

정형외과 의료비의 왜곡 현상도 심화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승범 위원장은 “정형외과 관련 근골격계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수술 시행 시 동시 수술로 분류돼, 수술 수가가 종합병원급 이상은 70%, 이외는 50%만 인정되고 있다”며 “실제 수술 행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산정 불가 재료 등으로 인해 비급여 재료를 사용하는 의료비 왜곡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비현실적 급여 기준 판정도 문제로 지목했다.

한 위원장은 “2020년에 제출한 120개의 급여기준 개선 검토사항 중 심평원은 69개 항목에 대해 급여기준 개선이 아닌 현행 유지로 판정해 의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결과를 보여줬다”며 “정형외과학회의 지속적인 의견 제시를 통해 일부 개선됐으나 여전히 비현실적 대안으로 저수가가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급여기준 문제로 관절경 수술의 불합리한 보상 적용을 예로 들었다.

한 위원장에 따르면 관절경 수술은 수술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개방성 수술과 동일한 수가가 적용되고 있다.

한 위원장은 “관절경 재료대의 경우 정액수가로, 실제 사용되는 재료대의 10분의 1 가격으로 보상받고 있다”며 “특히, 작은 관절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발목 관절과 손목 관절의 경우 50%만 보상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서 중증도 문제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거론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서 중증도를 기준으로 전문진료질병군을 분류했는데, 문제는 정형외과 관련 전문질환이 약 3%밖에 안 된다”며 “결국, 정형외과 수술의 97%는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병원 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일부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정형외과 수술이 중증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중증도 유지 때문에 A군 수술을 50% 이상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병원 경영진에서 중증도가 낮은 정형외과 수술을 줄이라고 압박을 가하게 된다”며 “예를 들면 견주관절 분야에서 제일 많이 하는 회전근개수술의 경우 C군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평가 시기가 가까워지면 (정형외과)담당 교수에게 수술을 줄이라고 하거나 단기 연수를 다녀오라고 하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국내 정형외과 수술비가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와 비교할 때 처참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한 위원장은 “관절경 검사의 경우 우리나라 시술료는 약 13만 8,000원을 받고 있는데 미국은 약 732달러, 일본은 17만엔이 넘는다”며 “골수염 수술비 역시 우리나라는 약 34만원인데 미국은 3,260달러가 넘는다. 골수염은 국내 대학병원에서 (낮은 시술료 때문에) 안 하는 수술이다. 하지만 누군가 해줘야 되는 수술이기 때문에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국내와 거의 비슷한 의료보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형외과 수술비는 8~10배 차이가 나는 참담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형외과의 열악한 현실은 대회원 설문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형외과학회는 올해 정형외과 전문의와 전공의 등 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수련병원 내 정형외과 펠로우 수가 약 7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형외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향후 전문의로서 직업 생활에서 원하는 직업 형태를 묻는 설문에는 '수술은 쳐다보지 않고 보존적 치료 위주만 하겠다'는 답변이 11%를 넘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진료시 낮은 건보 수가로 인해 비급여 진료로 대신한 경험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66%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약 48%는 진료시 비급여 비중이 70%를 넘는다고 답했다.

정형외과 수술 수가에 대해서는 62.6%가 '비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33.4%는 '낮다'고 답했다. 

한승범 위원장은 “초고령사회로 가는 상황에서 국내 정형외과 수요가 늘고 있고, 수술 기법 및 장비도 상당히 고도화가 되고 있지만 보상이 낮아 상급종합병원 경영자들은 정형외과에 투자를 안 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필수 의료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같은 현실은 근골격계의 필수의료 체계를 위태롭게 하고, 환자들이 적절한 사지 관절 치료를 적기에 받기 어려운 위기의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형외과 수술 수가 및 급여 기준의 현실화와 정형외과 기술 발전을 위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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