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에 경증환자 내쫓는 불가능한 업무까지 전가시켜"

[라포르시안] 최근 당정이 마련한 응급의료시스템 개선 대책을 놓고 의료계에서 응급의료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지난 31일 국회에서 응급의료 긴급당정 협의회를 열고 응급환자 이송부터 병원 수용까지 일괄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응급환자의 병원 수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증과 경증 응급환자를 이원화해 수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경증환자 진료를 제한하고, 응급환자 진료 전 중증도를 분류해 경증은 수용하지 않고 하위 종별 응급의료기관으로 분산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병상이 없는 경우 경증환자를 내보내서 응급환자 병상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런 대책이 현실성이 없고 오히려 응급의료 현장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젊은 의사들 중심으로 창립한 바른의료연구소는 2일 성명을 내고 "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탁상행정으로 인해 대한민국 응급의료는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당정 협의 결과는 단순히 이송환자에 대한 의무 수용과 경증환자 수용거부를 대책으로 내놓았다"며 "병상을 차지하고 있던 경증환자를 응급진료구역에서 내보내고 중증 이송환자를 수용하라는 건 공권력도 없는 의료진에게 환자를 내쫓는 업무도 전가시킴으로써 중증환자 수용 불가문제를 해소하려는 어이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병상에서 치료받고 있던 환자를 이송 예정인 중증환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료 불가를 통보하고 강제퇴원 시키거나 타원으로 전원 보내는 것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면, 환자를 내보내려는 의료진과 강제 퇴원을 거부하는 환자 및 보호자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폭언 및 폭행이 발생하고, 고발 및 소송 사례가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분쟁과 대립은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해 응급의료 의료진의 이탈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응급환자를 적절히 치료하기 위해서는 응급실 진료 이후 배후진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배후진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채 지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강제로 이송해 환자를 수용하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에 대한 책임소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관련 기사: '구급차 뺑뺑이' 중증환자 응급실 수용 의무화로 해결?..."또 헛발질">

바른의료연구소는 "소송에 대한 부담과 치료 결과에 대한 부담감, 여러 가지 행정적인 업무 증가 등으로 인해 점점 응급의료 종사자들이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강제 이송환자에 대한 면책조차 보장되지 않은 채 이러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대한민국 응급의료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경증환자의 응급의료기관 이용 제한도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경증환자의 응급의료기관 이용제한은 오로지 정부만이 제도적 정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정부는 의료기관에 책임을 떠넘겨 현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어이없는 탁상행정으로 그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한 경증환자 응급의료기관 이용 제한은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할 몫이란 점도 강조했다. 

이 단체는 "관료와 정치인들끼리만 책상 앞에 앉아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대책만 양산해 가뜩이나 붕괴 위기에 처해있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회생 불가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가"라며 "응급의료가 바로 서려면 응급의료를 이용하는 국민이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국민에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대한응급의학의사회도 지난 31일 성명을 내고 '구급차 뺑뺑이'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배후진료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중증외상환자는 최소한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이 갖춰져야 수용할 수 있다”며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뢰한 병원의 배후진료능력 부족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할 의료 자원이 그 시간, 그 장소에 없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증응급환자가 더 많은 치료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상급병원 과밀화 해소를 위한 실무협의체 마련 ▲경증환자 119 이송 및 응급실 이용 금지 특별법 제정 ▲취약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 행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사회는 “이송문의에 대한 수용 여부 결정은 현장의료진이 병원의 역량과 상황을 고려한 복합적인 판단으로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며 “근본적 원인인 상급병원 과밀화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논의체를 구성하고, 경증환자 119이송금지 및 상급병원 경증환자 이용금지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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