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오랜 시간 동안 건강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건강문제는 흡연이나 음주, 식습관 등에 따른 개인의 생활습관 탓으로 돌려졌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보건의료 영역에서 '공공성'의 개념이 스며들고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건강문제가 더는 개인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라는 개념이 명확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해 놓았다. 다만 이 조항은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대통령 개헌안'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건강권을 헌법에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명시하려고 했다. 비록 개헌이 불발로 그쳤지만 '모든 국민은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질병을 예방하고 보건의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대통령 개헌안의 신설 조항은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건강권을 보장하려면 의료자원처럼 보건의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 보건의료 외적인 건강 결정 요인으로 인한 건강격차(차별)가 해소될 수 있도록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수이다. 이를 촉구하고 실행하는 건 정치와 정치인의 책임이다. 건강권 신설 등을 담은 개헌안이 무위에 그친 것도 정치의 영역에서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이국종 교수 사태'를 보면 보건의료와 건강문제가 얼마나 정치의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태를 경영논리를 앞세운 병원과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 의료인의 충돌로 보기도 한다. 당치도 않은 편협한 시각이다. 이 사태의 본질의 '의료자원의 공정한 분배'에 있다. 중증외상환자 치료를 위한 병상 확보 문제를 놓고 이국종 교수가 제기한 문제나 아주대병원 측이 반박한 논리에는 '병상과 의료인력'이라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둘러싼 인식이 충돌한 결과이다. 당초 전국 권역에 6개를 지정해 제대로 규모를 갖춰 운영하려던 권역외상센터가 전국 곳곳에 17개로 늘어 지역별 '나눠 먹기'가 된 배경에 정치 메커니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면 보건의료 영역에서 정치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국가 주도의 의료보장제도와 상업화된 병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나라에서 의료자원의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분배에 대한 문제는 아주 오래된 숙제가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의료자원 분배는 의료관리와 건강정책의 실행이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공적 건강보험제도라는 틀 속에 민간 주도의 의료인프라가 혼재하면서 의료자원 분배는 개별 병원의 경영논리를 뛰어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수도권과 대형병원으로 의료자원 쏠림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적정 의료인력 확충은 민간병원의 경영적인 판단에 맡겨졌고, 그러다 보니 의료인력 부족은 만성화가 됐다. 이국종 교수가 근무하는 권역외상센터처럼 중증외상환자 치료를 위한 병상이나 의료인력 확충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권역외상센터 운영을 둘러싼 갈등을 이국종 교수 개인과 아주대병원 간의 갈등으로 규정한 보건복지부 장관은 시각은 그래서 무책임하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재정의 분배 문제도 걸려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있어서 어떤 질환부터 먼저 급여를 적용할 것인지, 또 얼마만큼의 의료수가를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언제나 논란을 불러왔다. 보장성 확대를 추진하면서 건강 형평성이나 의료자원 분배의 효율성이 급여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이슈나 여론에 이끌려 급여 확대를 결정할 때가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따져보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이를 방증한다.

이국종 교수는 한 강연에서 권역외상센터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가난한 사람이 더 쉽게 다치고 죽는다"고 했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중환자실로 실려 온 중증외상 환자의 직업적 분포를 보면 그 말이 선뜻 이해된다. 중증외상 환자 중 상당수는 가난한 현장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또한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계층으로, 수익을 위해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는 노동현장에서 다치고 길바닥에서 죽어나가도 이들은 정치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필요한 의료시스템은 아주 더디게 개선되거나 더 악화되기 쉽다. 여기에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의 총량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공적의료 영역에서 외면하는 의료서비스를 민간병원들이 기피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건강불평등 문제는 사회적으로 구조화되고 굳어진다.

의료자원의 수급 불균형과 건강 형평성 문제는 지속해서 불거지고 있지만 이를 풀어야 할 정치적 노력은 극히 소홀했다. 정치집단은 여론을 의식해 당장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덮는 법안을 만들어내 의료현장을 더 왜곡시켰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들고나오는 건 자신의 지역구에 의과대학이나 대학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고작이었다. 정치의 영역에서 의료자원의 분배 정의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사안이다. 

한국 의료시스템은 적은 수의 의료인력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수준의 급성기 병상을 유지하며, 국민 1인당 가장 많은 외래진료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보건의료 지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 의료시스템이 '가장 적은 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저비용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엄청난 초과노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의료인의 노동력을 갈아넣어 돌아가는 병원은 환자에게도 끔찍하다. 이제는 전공의법 등에 의해서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부당한 처우가 금지되고, 의료인도 일과 삶의 균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국종 교수처럼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인의 희생에 의존하는 방식으론 지금의 의료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없다. 이국종 교수는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하지만 진짜 망한 건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다. 의료자원의 효율적이고 공정한 분배와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해 정신 차리고 나서야 한다. 아니면 정말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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