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비중 기관수 5.2%·병상수 8.8% 그쳐
"OECD 국가 중 꼴찌, 민간보험 의존 미국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
지방의료원, 코로나 전담병원 이후 의사·환자 떠나고 경영난 이중고

[라포르시안] 우리나라 공공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지속해 보건의료정책 주요 아젠다로 다뤄졌지만 공공의료 확충 정책은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공공의료 비중은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면서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에 대한 각성이 이뤄졌다. 하지만 역시나 그때뿐이었다. 오히려 코로나19 유행 때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확진자 치료에 팔을 걷었던 공공병원은 엔데믹과 함께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의료진 이탈로 공공의료 기능마저 훼손되는 이중고에 빠졌다.
최근 국정감사를 맞아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공공의료 비중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 공공의료 인프라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이 자료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의료기관 대비 기관수 기준으로 5.2%, 병상수 기준 8.8%, 의사인력 기준 10.2%였다. OECD 국가의 공공의료 인프라 수준과 비교조차 힘든 수준이다.
OECD 주요국의 공공의료 비중(OECD Health Statistics, 2021)에 따르면 기관수 기준 영국 100%, 캐나다 99.0%, 프랑스 45.0%, 미국 23.9%, 일본 22.8% 등이다. 병상수 기준 영국 100%, 캐나다 99.4%, 프랑스 61.5%, 일본 27.6%, 미국 21.3%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남인순 의원은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미국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라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보건의료정책을 집행할 직접적인 수단이 크게 부족해 민간의료기관의 협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응 초기에 5%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확진자 치료를 전담하다시피 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국 41개 지역 거점공공병원 중 97.6%인 40개 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운영됐다. 불과 5%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확진자 치료를 위한 전체 감염병 전담병상의 절반 가까이를 메웠다.
코로나 유행이 끝나고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한 공공병원은 위기를 맞았다. 확진자 치료에 헌신하며 '코로나 영웅'으로 불리던 의료진은 공공병원을 떠나고 있다.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정된 지방의료원은 전담병원 지정 해제와 함께 외래진료 확대, 일반 입원병상 전환 등 진료 정상화에 팔을 걷었지만 코로나 이전 일상 의료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확진자 치료에 전념하면서 내보낸 일반 환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2017년부터 2023년 상반기(1월∼6월까지)까지 35개 지방의료원 연인원환자수 변동 추이를 분석한 결과, 전담병원 해지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코로나19 이전 시기였던 2019년에 비해 1/3~2/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방의료원의 병상가동률도 크게 떨어졌다. 35개 지방의료원의 2019년 평균 병상이용율은 78.4%였지만 2023년 8월 병상이용률율은 평균 53%에 그쳤다. 심지어 충주의료원과 안동의료원, 남원의료원 등은 올해 8월 병상이용률이 30%대에 머물렀다.
환자가 줄면서 경영손실도 심각하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2019년 결산상 당기순이익 총계가 약 292억 7천만원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해제된 뒤 약 6개월 가량 지난 2023년 상반기(1월∼6월)까지 경영실적을 기초로 2023년 경영실적을 추산했을 때 올해 약 2,938억 6천만원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방의료원 한 곳당 올 한 해에 평균 약 92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방의료원은 의료인력 이탈에 따른 인력부족으로 몸살을 앓는다. 감염병 전담병원 기간에 전체 병상을 소개한 후 제한적인 일반진료와 확진자 치료에 따른 과도한 업무부담 등으로 의료진 이직 증가 및 의사 구인난을 겪고 있다. 이는 전문의 부족에 따른 진료과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춘숙 의원실이 전국 지자체 및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9월 1일 기준으로 지방의료원 35곳 중 23곳(65.7%)에서 의료진을 구하지 못해 피부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 37개 과를 휴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공공의료 확충이 보건의료 정책 아젠다에서 거의 사라졌다. 윤 정부는 '공공의료'라는 용어 대신 의미도 모호한 '필수의료'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중증∙응급의료, 분만, 소아진료 등의 분야에서 민간병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공공의료 확충은 더 삐걱대는 모양새다. 대표적인게 울산의료원 설립 사업이다. 울산의료원 설립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사항이었지만 타당성재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방의료원은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지역 취약계층 및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런 점 때문에 대부분의 지방의료원은 경제성분석에서 비용편익(B/C)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남인순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를 외치고 있다면 직접적인 집행수단인 공공의료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확충해야 한다”면서 “공공의료 비중을 병상수 기준 현행 8.8%에서 적어도 20~30% 수준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