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고심, 의대증원 집행정지 인용·기각 결정 따라 운명 갈려
"사법부가 행정부 권한 증원 정책 타당성 따지는 것은 부적절" 비판도

[라포르시안] 2월 말부터 시작해 3개월 가까이 의정 갈등과 의료공백 사태를 초래한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정책 운명이 사법부의 판단영역으로 넘어갔다. 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사실상 증원 정책의 향방도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란 점에서 이 문제를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통제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의대 증원 관련 재판을 놓고 사법부에서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다.

다른 한편에선 정부가 '의료개혁'이란 명분을 앞세워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합리적인 정책 근거 자료를 기반으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탓에 사회적 갈등만 초래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30일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리에서 정부 측에 의대생 2000명 증원 관련한 과학적 근거자료를 5월 10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증원 규모 관련해 “인적·물적 시설 조사를 제대로 하고 증원분을 배정한 것인지, 차후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예산이 있는지 등 현장실사자료와 회의록 등을 5월 10일까지 제출하면 그 다음 주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같은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안건과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 전문위원회' 회의록, 의학교육점검반 활동 보고서, 의대 학생정원·모집인원 배정 결과 등 47건의 자료와 2건의 별도 참고자료를 제출했다.

법원은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고 이번주 중에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인용 여부를 판달할 예정이다. 

앞서 1심은 "의대 증원 결정의 주체는 '대학의 장'이기 때문에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은 처분 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인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의대 정원이 늘면 처분의 직접 대상자인 대학 총장이 법적 다툼을 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럼 국가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경우 다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고 그런 결정은 사법적으로 심사·통제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모든 행정 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집행정지 신청을 심리하기로 결정하고, 인용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모든 증원 절차를 진행하지 말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재판부 요청에 따라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곧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인용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만일 2심 재판부에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 의대 증원 처분은 본안 판단 시까지 효력이 중단된다. 이럴 경우 본안 판결까지 일반적으로 수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사실상 중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대 증원은 확정된다. 

정부는 항고심에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할 경우 즉시 재항고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별다른 실익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그렇지 않기를 희망하고, 또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만약에 인용 결정이 난다면 즉시 항고해서 대법원 판결을 신속하게 구하도록 하겠다"며 "인용 결정이 나면 지금 일반적인 예년의 입시 일정하고는 굉장히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의료계도 집행정지 항고가 기각될 경우 재항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항고심에서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될 경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5월 말까지 증원된 의대 전형계획을 최종 승인하기 전까지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재항고를 하는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2심 재판부 판단에 따라 의대 증원 정책의 행배가 결정나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의대증원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사법부의 지나친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항소심 재판부가 당사자 적격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 채 행정행위에 대한 타당성을 따지겠다는 것은 이례적이며 자칫 월권행위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사법부가 행정부 권한인 대학교 증원 정책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대학교 입학정원은 본래 사회수요를 고려해 정부가 매년 그 수준을 결정할 수 있음에도 의사 수급은 의료계 반발에 19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통제됐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증원 규모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이므로 재판부는 논의과정과 절차 외에 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위기와 환자 생명을 등지는 직역 이기주의도 용납할 수 없지만, 법원이 행정 사안에 부당하게 간섭해 정책을 지연시킨다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의대 증원 정책 관련해 사법부가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을 통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바른시민사회는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사법적 통제는 국민의 구체적 권리에 대한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허용되어야 한다"며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수반되는 통치행위인 행정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바른시민사회는 "의대정원 증원시 요구되는 인적자원과 물적시설을 제대로 조사한 현장실사자료와 회의록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법부가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을 통제하는 것"이라며 "우리 헌법이 보장한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법부의 부적절한 행정부 통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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