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체계 근본적 개혁 없이는 언제든 터질 '시한폭탄'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의료전달체계 개편 밀고 나가야
"응급·중증·입원환자 진료 한시적 정책가산지원, 아예 제도화 해야"

[라포르시안]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 인력 공백이 4개월 넘게 지속하고 있지만 의정갈등 사태의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들의 휴진 선언도 잇따르면서 의료공백에 따른 환자 불편과 건강권 침해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정갈등 사태에서 정부와 의사단체는 '전공의 복귀'를 전제로 한 주장을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집단사직으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및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은 정부와의 대화는 물론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구성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 참여도 거부한 채 독자적인 행동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근본적인 의료체계 개선없이 전공의 복귀가 이뤄지고 다시 기존의 부실한 의료체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는 우려도 높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 집단사직에 의료공백에 대응하는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한 건강보험 지원이 추가로 연장되면서 조만간 지원금액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20일부터 전공의 집단사직이 시작되면서 복지부는 중증·응급 환자 진료공백 방지를 위해 비상진료 건강보험 지원방안을 수립하고 매달 약 '1,800억 원 + @'의 비상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재정 투입을 결정했다. 이후 의정갈등 사태 장기화로 의료공백이 길어지자 지난 5월 30일 열린 11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추가로 1개월 분을 연장하기로 의결해 6월 말까지 총 8,003억 원의 건보 재정 투입을 결정했다.
여기에 지난달 27일 열린 건정심에서 약 1,890억 원 규모로 '비상진료체계 건강보험 지원방안'을 한 달 더 연장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7월 말까지 비상진료 유지에 투입되는 건보재정이 약 9,893억 원으로 1조 원에 육박하게 된다.
비상진료에 투입되는 건보 재정은 응급실과 상급종합병원이 응급·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인다. 특히 전문의가 입원환자와 응급환자 진료 시 정책지원금 지원에 상당 부분이 투입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응급진료 전문의 진찰료 수가 한시적 인상 ▲입원환자 비상진료 정책지원금 ▲응급 진찰료 수가 신설 ▲응급환자 응급의료행위 가산 한시적 확대 ▲중증입원환자 비상진료 정책지원금 등으로 대형병원이 전문의 인력을 추가로 활용해 응급·중증 환자 진료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응급진료 전문의 진찰료 수가 한시적 인상을 통해 집단행동 기간 중 ‘응급진료 전문의 진찰료’ 및 ‘권역외상센터 전문의 진찰료’ 수가를 한시적으로 100% 인상하고, 인상분의 일부를 응급실 근무 전문의 및 전공의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적용 대상 기관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등이다.
입원환자 비상진료 정책지원금은 종합병원 이상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집단행동 기간 중 입원병동에 전문의를 투입해 진료하거나 기존 입원환자 전담전문의를 운영하는 병동에 투입하는 정책가산지원이다.
응급의료기관의 비상진료 지원을 위해 응급 진료 후 ‘가-1 외래환자진찰료’ 산정 시 한시적 수가를 신설하고, 수가 인상분의 일부를 응급실 근무 전문의·전공의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진료 공백 발생에 대응해 중환자실에 전문의를 투입해 진료하거나 기존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를 운영하는 중환자실 병동에 정책가산 지원을 한시적으로 하도록 했다.
이처럼 전공의 인력공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에 대응해 대형병원이 전문의 인력을 추가로 활용해 응급·중증 환자와 입원환자 진료에 나설 수 있도록 비상진료 정책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아예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의료개혁 차원에서 수련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수련병원이 전문의 고용을 확대하고 전공의에게 위임하는 업무를 축소하며 인력 간 업무 부담을 지원하는 시범사업 모델을 만들어 2025년부터 국립대병원과 지역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적용하겠다고 했다. 입원전담전문의제도 개선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확대를 통해서도 전문의 중심 인력 운영을 뒷받침할 방침이다.
대형병원이 전문의 인력을 확충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인건비 부담'이다. 현재 수도권 주요 대형병원의 전체 의사수에서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30~40% 정도다. 이를 다른 선진국처럼 10%대 정도로 낮추게끔 전문의 인력 확충이 이뤄지려면 연간 수조 원의 인건비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따라서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바꾸려면 인건비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대책이 필수적이다.
일선 의료 현장에선 비상진료 지원방안으로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가산 때 추가 지원금 절반이 진료를 한 전문의에게 돌아가는 지원을 제도화한다면 응급실 전문의 인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입원병동에 전문의를 투입해 진료하거나 기존 입원환자 전담전문의를 운영하는 병동에 투입하는 정책가산지원을 제도화하면 입원환자 전담전문의 확보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지금과 같은 비상진료체계에서 한시적으로 정책가산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건강보험 수가체계에서 제도화할 경우 건보재정 지출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문제다.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을 추진할 경우 늘어나는 의사 인건비 부담으로 병원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도 버티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크다.
결국 지금과 같은 국내 의료공급체계에서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주치의제도 기반의 일차의료 강화로 '의료이용 제한'이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료전달체계 개편 방향과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지원사업 추진방안, 상급종합병원 관점에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모델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비상진료체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등 상급종합병원 운영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의료공급·이용체계를 안착시키는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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