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라포르시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올해로 창립 22주년을 맞았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승격하고 본격적으로 중형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선언했다. 그간 의료정책연구원은 간호법안 문제의 이론적 근거 제시부터 비대면 진료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조건 연구,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일차의료 중심의 의료돌봄 통합체계 연구 등 굵직한 의료현안에 대한 연구 및 발표 등 의협의 중추적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최근 의료계는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발표 등 정부의 정책적 현안을 마주하고 있다. 이외에도 자율적이고 독립된 의사 면허관리기구 설립을 위한 근거 마련 등 현안과제가 산적한 상황. 이런 가운데 의협 임현택 집행부 출범과 함께 의료정책연구원 새 수장에 안덕선 원장이 취임했다. 안덕선 원장은 한국의학교육학회 회장,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원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등을 비롯해 의료정책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의료정책과 의학교육 연구의 가장 적임자로 손꼽힌다.
의협출입기자단은 지난 4일 의협회관에서 안덕선 원장과 간담회를 갖고 최근 의료현안에 대한 연구자적 입장과 의료정책연구원의 연구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간담회에는 안덕선 원장을 비롯해 문석균 부원장, 오윤수 국장을 비롯해 연구원들이 함께 했다.

- 의료정책연구원의 기본적인 역할은 뭔가.
= 현재 의료정책의 대부분은 정부 주도하에 개발·추진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의료정책에 대해 의료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여 선제적·능동적·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가 숨도 못 쉴 정도로 명령과 통제과 설 익은 정책을 던지고 있다. 과거 의료정책연구소는 이에 대한 대비와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많은 발전을 이뤘고, 전임 우봉식 원장 재직 시절 연구원으로 승격하면서 한층 격을 높이고 목표를 다졌다.
정부가 던진 것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의료정책연구원이 상황에 대처하는 연구만 하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의사들만을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물론 의사회원들 입장에서는 의사에게 이득이 되는 연구가 많이 나오기도 바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에 이득이 될 수 있는 연구도 상당히 많이 진행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책무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의료계의 발전은 물론 궁극적으로 국민건강의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의료정책연구원의 설립목적이다.
- 의료정책연구원이 의사에게 필요한 연구만 하기보단 국민에게 필요한 연구도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의료정책연구원의 미션은 ‘국민과 회원을 위한 보건의료복지 정책을 연구하고 선도한다’이다. 비전은 ▲신뢰받는 연구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혁신적인 연구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국민과 소통하는 연구로 건강증진에 이바지한다 ▲전문성 있는 연구로 미래 정책을 주도한다 등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의료정책연구원이 국민과 회원을 위한 보건의료복지 정책을 연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까지 ‘이태원참사와 국민정신건강’, ‘회복기 재활의료’, ‘병상수급 관리’, ‘지역 의료돌봄’, ‘의료의 사회적 책무성 강화’ 등 효율적인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앞으로도 의료정책연구원의 미션과 비전에 맞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연구 주제를 개발하고 추진해 나갈 것이다. 특히 ‘의료돌봄’, ‘의사 면허관리’, ‘필수의료’, ‘병상수급관리’, ‘의사인력 정책’ 등과 관련된 주제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틀을 다시 짤 수 있는 중요한 과제들이다.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인 의료시스템 개편의 목적과 방법은 궁극적으로 국민건강 증진을 향상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다.
- 보건복지부 청문회 이후 의대정원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주요 화두로서 재조명받고 있다. 의료계 주장의 근거를 구축하려면 정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 의료정책연구원에서는 2020년 대한의사협회지 ‘우리나라의 합리적 의사 수에 대한 평가’ 논문을 통해 오는 2035년에 우리나라 의사 수가 1만 4,646명 과잉 공급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최근에는 작년 12월 ‘다양한 통계로 살펴본 우리나라 적정 의사인력에 대한 고찰’ 정책현안분석 발간을 통해 정부가 의사 부족의 근거로 활용하는 OECD 헬스데이터의 일부 통계 외에 적정 의사인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고찰했다.
참고로 의사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1960년대부터 시작해서 어떤 국가도 한 번도 맞춘 적이 없다. 추정치에 대한 추정치를 추계하는 방법론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양성되는 기간은 10~15년인데 그 사이에 사회적 변화가 크기 때문에 정확한 추계가 어렵다. 이같은 한계는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 과장이 써낸 기고문에 너무나도 잘 표현이 돼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의사 수 증가 정책 관철을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측면도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검증도 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난 2020년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서 정원을 축소했다는 주장도 하는데, 사실은 그 이전부터 정부가 주도해서 2017년부터 의사 수를 줄이자는 이야기를 계속 해왔다. 의료계에서 정책 협조를 한 것인데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에 의사 수를 줄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작성한 보고서와 기고문 등 증거 자료를 갖고 있는데도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펼치는 미스인포메이션과 디스인포메이션에 대해 외국과 비교해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는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 의료정책연구원이 단기 현안과제보다 중장기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의료계 씽크탱크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복안이 있나.
= 최근 정부는 필수의료 위기, 지역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아젠더를 던졌다. 의료전달체계 개편, 전문의 중심 병원, 인턴·전공의 제도 개편 등 하나하나의 주제가 중장기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런 큰 주제를 정부가 단기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따른 부작용을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젠다마다 단기적 대응, 중장기적 연구의 필요성 등을 잘 구분하고, 계획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특히 현안이 아니라 하더라도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연구과제로 선정해 안전한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연구과제를 개발, 추진하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첫째,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연구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연구결과물을 SCI(E)나 SCOPUS 등의 해외저널에 등재해 연구결과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제고할 것이다. 둘째,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의료정책 연구기관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새로운 아젠더를 발굴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 셋째,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구조 변화로 국가 위기 상황에 봉착에 있는 현 상황에서 국외 의료정책 모범사례를 분석해 국내에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 의학교육 전문가이자 의료정책연구원장으로서 추진해보고 싶은 연구가 있나.
= 지난 의협 40대 집행부가 나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의사의 전문성에 대한 연구를 해달라고 제안해 놀란 적이 있었다. 당시 자율적이고 독립된 의사 면허관리기구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국가를 시찰하고 관련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의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불철주야로 뛸 것 같은 의료계 강성 지도자들도 의사의 전문성 확립을 위한 연구와 조치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한 바도 있다.
이번 의협 집행부 역시 동일한 요구를 했다. 의사의 전문성을 위해선 자율 규제가 필요한데 관료들이 경쟁적 관점에서 전문직 단체가 그런 권한을 갖는 것을 싫어한다. 관료주의와 전문주의의 대결 구도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올바른 의료시스템을 확립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의사면허제도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제적으로도 의사면허를 자율 규제하고 있는 것이 추세이다.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통해 독립된 면허관리 기구를 마련함으로써 자율규제와 전문직업성이 확립돼 궁극적으로는 국민 건강과 생명이 담보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지난 40대 집행부에서 추진된 면허관리기구 설립의 지속적 진행을 위해 관련 후속 연구들을 수행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의료정책연구원이 전문성과 연속성을 기반으로 국민의 건강과 올바른 의료제도를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