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빅5' 등 대형병원 전공의 지원자 극히 미미
기존 수련체계, 폐기해야 할 '구체제'로 전락
의료체계 구조적 문제 극복할 새 패러다임 모색할 때

[라포르시안] 어제(7월 31일) 마감한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예상된 것처럼 극히 미미한 지원율을 보였다. 지역별 지원 제한을 두지 않는 등 정부가 수련특례까지 제시했지만 지방 대학병원을 사직한 전공의의 수도권 대형병원 지원 경향도 없었다.
앞서 전국 수련병원 126곳에서 인턴 2525명, 1년차 레지던트 1446명, 상급연차(2∼4년차) 레지던트 3674명 등 총 7645명의 전공의를 선발한다고 하반기 모집 공고를 냈다.
정부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다수 전공의가 수련과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수련특례를 적용해 내년도 전문의 취득 시기가 늦어지지 않도록 하고, 지역별 지원 제한도 두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의대 증원에 따른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의 반발이 거세고, 의대 교수들도 하반기 모집을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에선 지원자가 소수에 그칠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이른바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가 지금의 상황을 보여준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은 이번 모집 결과를 공개하진 않고 있지만 지원자가 한자릿수로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인턴 218명·레지던트 799명을 뽑는다고 공고한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지원자 수가 10명을 조금 넘겼다. 세브란스병원은 인턴 146명·레지던트 568명을 선발한다고 공고했지만 지원자는 5명에 그쳤다.
이들 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련병원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다. 지방 수련병원은 이번에 전공의 모집 규모도 작았지만 지원자 수도 극히 미미했다. 광주·전남에서는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이 하반기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두 병원에서 지원자는 단 1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북지역에는 경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이 전공의 모집을 실시했지만 지원자가 전무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앞서 전국 수련병원에서 사직 처리된 7,600명의 전공의들은 대부분 개원가로 취업을 모색하거나 군복무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이 하반기 모집으로 선발한 전공의에 대해선 교육과 지도를 거부하겠다는 입장까지 공개적으로 낸 상황에서 지원하기는 더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하반기 전공의 지원자 수가 소수에 그치더라도 복귀를 위한 추가 대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신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 등 의료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1일 의료개혁 추진상황 및 일정 설명회를 열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의료이용체계 혁신, 인력수급 추계·조정체계 합리화, 전공의 수련 혁신, 중증·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을 포함한 1차 개혁안을 8월 말까지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로 기존 수련체계는 용도폐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대학병원도 더는 '값싼 의사 인력 = 전공의'라는 인식을 지우고, 전공의 없는 병원의 정상적인 의료시스템 운영을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찾아온 셈이다. <관련 기사: OECD 보건통계 속 한국 의료시스템...지속가능하지 않다>
의대 교수들도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했다. 그동안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전공의들의 거듭된 요구를 외면하다가 의대정원 확대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뒤늦게 전공의를 지키겠다고 나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전공의들로부터 '착취의 중간관리자'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관련 기사: "나 때는 주 120시간 근무"...교수-전공의 '과로의 대물림' 병원 인력구조>
집단사직 방아쇠는 의대정원 확대로 당겨졌지만 '전공의 부재'는 앞서부터 누적된 의료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분출된 결과로 봐야 한다. 의정 갈등이 해소되면 다시 예정처럼 전공의 인력을 '갈아 넣어' 돌아가는 구조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더라도 전공의와 전임의 등 젊은 의사들의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의료공급체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분명해졌다. 집단사직으로 장기간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다시 기존 체계로 복귀할 리 만무하다.
전공의 수련과 수련병원의 인건비 절감 방식 경영 체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대 증원 논란을 배제하더라도 전공의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의술을 위한 미덕으로 여기는 수련체계는 더는 매력없는, 폐기돼야 할 '앙샹 레짐(구체제)'으로 전락했다.
충분한 임상역량을 갖춘 전문의 중심으로 대학병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인력 구조를 개편하고, 그에 맞춰 충분한 보상체계와 각종 인력수급 정책을 개선하는 쪽으로 갈등과 반발의 기운이 집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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