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관(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정보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라포르시안]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 인공지능(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수많은 의료 데이터가 정형 및 비정형(X-ray·MRI 영상, 의무기록 자연어 등)의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우수한 성능의 의료 AI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고품질 의료 데이터가 많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질 높고 정제된 의료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의료기관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이 데이터 기반의 근거 중심 의학 연구를 수행하는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적용된다.
이제는 데이터가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됐고, 이를 유통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특히 데이터 유통 플랫폼에서도 원활한 데이터 거래 또는 활용을 위한 영역으로 데이터 ‘가치 평가’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데이터는 거래 가능한 자산임에도 수요·공급 곡선을 완전히 따르지 않는 특성이 있다. 공급에 제한이 있는 유한한 특성을 가진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복제가 가능하고 전달이 쉬운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A라는 일반 상품의 가치는 생산을 위한 재료비와 인적 자원비·부가 가치를 포함해 초기 가치를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상품의 공급이 충분해지고 동일 또는 유사 상품의 경쟁이 심화되면 당연히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데이터의 가치는 이 같은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데이터는 더 많아질수록 가치가 커지기도 하고, 산업 발전 트렌드에 따라 가치 변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일반 데이터와 달리 의료 데이터의 가치 평가는 의료서비스라는 행위와 질병 등 의료 관련 특성을 내재했기에 그에 대한 가치 평가는 어느 데이터 형식보다 특수한 성향을 지닌다.
그러다 보니 의료 데이터는 특수성을 고려해 데이터 품질과 수량 그리고 실제 활용 가치에 비해 비싸게 책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의료 데이터의 활용성을 크게 떨어트리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에 국내에서는 합리적인 데이터 가치 평가 방법을 마련해 의료 데이터 유통을 활성화하고자 산업통산자원부 지원으로 ‘데이터 큐레이션 기반 의료기기 기업 지원용 헬스 데이터 유통 플랫폼 개발·실증’ 컨소시엄을 꾸렸다.
컨소시엄에서는 분당서울대병원·차의과학대학교 정보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의료 데이터의 가치 평가 생태계를 조성·활성화하기 위해 의료 데이터의 가치 평가 방법 연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의료 데이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의료 데이터 가치 평가 방법의 국제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마이데이터 측면에서 개인이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경우 그 가치 보상 체계를 연구하는 팀도 있다.

비단 의료 데이터의 가치 평가 연구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산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해외 국가들도 큰 관심을 갖고 관련 사항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글로벌 회계법인 EY(Ernst & Young)에서 발간한 데이터 가치에 대한 문서로 ‘Realising the value of health care data: a framework for the future’가 있다. 여기에는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 데이터셋의 시장 가치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전자의무기록(EMR)에서 한 환자의 기록당 최대 100파운드(약 18만 원), 유전체 데이터의 경우 DNA 샘플당 1500파운드(약 270만 원) 정도이다.
이는 잘 알려져 있는 ▲원가 접근법 ▲시장 접근법 ▲수익 접근법 등 3종의 데이터 가치 평가 방법 중에서도 주로 대상 데이터 대비 유사한 데이터가 유통 시장에서 거래된 가치를 비교·분석해 상대적인 가치를 산정하는 ‘시장 접근법’에 근거하고 있다.
이 외에 ‘수익 접근법’은 데이터 활용으로 발생할 미래 경제적 효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것이며, ‘원가 접근법’은 데이터 생산 비용을 충당하고 목표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또한 싱가포르 정보통신개발청(IMDA)·개인정보보호위원회(PPDC)가 2019년 발간한 ‘데이터 가치 평가 가이드’는 시장 접근법·원가 접근법·소득 접근법을 적용한 결과를 종합해 데이터 최종 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의료 AI·신약·디지털 치료기기는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는 고품질 의료 데이터를 보유한 만큼 기술 개발과 발전이 이뤄진다.
나아가 가까운 미래에는 의료 데이터가 의학 연구를 위한 무형의 거래 가능한 자산인 동시에 의료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의료 데이터 가치가 해당 기관의 질적 가치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이는 의료기관의 잠재력과 우수성을 입증할 뿐만이 아니라 향후 국가 간 의료시스템의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판단하는 척도이자 평가 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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