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전공의 A씨 “평생 외과 꿈꿨지만, 용산 바뀌지 않으면 이 나라 떠날 것”

[라포르시안] “저는 사직 전공일까요, 봉직의일까요. 결정하기 어렵네요.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를 접하고 원하는 의술을 펼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들었고, 어릴 적부터 평생의 꿈이었던 외과를 그만 두고 나올 수 밖에 없었어요. 현 의료사태가 잘 마무리되면 다시 외과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하지만 용산 한 사람의 고집으로 이 사태가 끝난다면 이 나라에서는 외과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주말 오전,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에서 야간 당직을 서고 나온 의사 A씨는 병원 인근 카페에서 만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기자에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비공개로 해줄 것을 당부했다.
지난 2월까지 A씨는 수도권 대학병원 외과 전공의 3년차로 근무했다. 어릴 적부터 외과의사를 꿈꿨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 살고 죽는 것에, 그리고 의술을 통해 다른 이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외과의사인 조너선 캐플런(Jonathan Kaplan)의 ‘아름다운 응급실’이라는 책을 읽게 됐어요. 그 책에서 외과의사가 활동하는 모습과 개복 수술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묘사에 반해서 외과의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의대에 들어와보니 해부학 실습도 너무 재밌었고 소위 ‘폴리클’(Polycle, 임상실습)을 돌 때도 수술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기억에 남았어요. 동기들이 자신들의 폴리클에서 수술 스크럽 들어가는 것을 제가 뺏어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보통 4~5시간은 서 있어야 하는데, 저는 4~5 시간이 10~20분으로 느껴질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A씨는 의대 15학번으로 지난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본과 4학년이었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2020년 이미 크게 당했던 세대에요. 현재 사직 전공의 2~4년차 모두 저와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의정 합의를 했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합의가 뒤집히는 것 보면서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2020년 경험이 없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사분오열됐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미 한 번 싸웠던 사람들이라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나오게 된 것이죠. 전공의 3년차인데 사직하면 아깝지 않냐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이미 전공인 외과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련을 받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 작년 말부터 바이탈과의 의료 소송 결과들이 안 좋게 나왔거든요. 돈을 벌려고 외과를 선택한 게 아니라 외과가 좋아서 왔는데 순수한 마음이 짓밟히면서까지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는 전공의들의 사직은 정치적 목적이나 집단의 통제에 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전공의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직을 선택했다면 마음이 다 모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소위 인기과라고 말하는 전공의들도 사직을 택했습니다. 개인 개인의 마음이 같았기 때문에 가능했지, 소수의 집단이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그림이었으면 상당수 전공의들이 이탈했을 겁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든 박단 비대위원장이든 공개적 모임이나 토론회 같은 것을 하지 않고, 그저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적 입장만 밝혀왔잖아요. 전공의들은 박단이라는 사람이 대전협 비대위원장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이 우리를 명확히 대변하니까 따라간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죠.”
“우리는 그저 순수한 젊은 의사였어요. 그런데 사태 초기부터 정부는 수업이 많은 명령을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등 너무 거세게 우리를 몰아붙였어요. 국민도, 언론도, 심지어 교수들도 우리를 욕했습니다. 전공의들이 강경화되지 않을 수 없었죠. 정부와 정치권에서 먼저 전향적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가 믿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정부가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뒤통수를 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우리는 이미 학습화됐습니다. 그런데 복귀해라 또는 일단 협상의 자리로 나오라면 누가 믿을까요. 이제 정부와 전공의 간의 치킨 게임이 됐어요.”
그는 사직서를 병원에 제출한 날을 두려움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직서를 쓴 날, 병원에 경찰버스가 와 있었고, 사복 경찰들이 돌아다녔어요. 경찰들이 근무하는 의사를 확인하겠다면서 중환자실에 무단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교수님들이 막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경찰서를 가본 적도 없고 행정명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전공의였습니다. 평생 마주할 일 없었던 일들이었는데, 실질적으로 마주하니 떨렸습니다. 의사면허가 날아갈 수도, 평생 꿈꿔왔던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는 법적 리스크 못지 않게 생활의 무게가 무서웠다고 했다.
“사직서를 쓰고 나와서 알바 자리를 찾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보통 6개월 이상 일할 사람을 구하는데 당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6개월 이상 일하겠다고 말할 수 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친구 중에 카페 사장이 있어서 알바를 할 수 있었어요. 다른 전공의들은 학원에서 알바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하는 정규 강사는 아니고 질문을 받고 답을 전해주는 정도였습니다. 정규 강사로 들어가려면 클래스를 열어야 하고 강의실을 반 년 이상을 잡아놔야 하기 때문이죠. 당시 5월에 총선이 끝나면 이 상황도 끝난다, 추석이면 끝난다, 임현택 회장이 물러나면 끝난다 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막연한 기대감에 정규직을 구할 수 없어서 많은 사직 전공의들이 일용직을 찾을 수 밖에 없었어요.”
A씨는 현재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에 당직의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전공의 시절보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한다.
“사직이 결정되고 한달 후 요양병원에 당직의사로 취직했습니다. 당직하기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전공의 시절 근무강도와 비교하면 너무 달라요. 전공의 2년차 당시 중환자실에서 환자 보고, 응급실 환자도 보고, 수술 환자 준비도 다 제가 했어요. 밤 샜던 날이 손에 꼽을 수 없이 많았어요. 전공의의 삶은 사람이 사는 게 아니에요. 요양병원 당직을 서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몇 달간 의사 일을 안 하다가 해서 그런지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나를 그렇게 갈아 넣었는지 모르겠어요. 보통 인턴과 전공의 1년차 때는 의사의 업무가 아닌 일을 많이 해요. 인턴 때는 검체 이송, 초음파 기기 운송, 환자 데리고 가기 등을 주로 했고, 1년차 때는 수술이 펑크나면 다른 과 교수님에게 가서 싹싹 빌어서 수술 오퍼 받아오기 등 의사 일이 아닌 것만 하면서 밤을 샜는데, 지금은 디시전 메이킹(decision making)을 하는 의사로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봉직의 생활이 행복하지만 전공에 대한 미련은 남았다.
“저는 사직 전공의일까요, 봉직의일까요. 결정하기 어렵네요. 다른 사직 전공의들은 봉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저는 사태가 잘 마무리되면 외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도 틈 나는대로 외과학 교과서를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외과 전공의 대부분은 돈이 아니라 외과가 재미있어서 온 사람들인데 1년 가까이 손을 놀리고 있어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시간을 버렸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납니다.”
그가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학교육 질 저하다. 그는 전북의대 15학번 출신으로, 서남의대 폐교 후 전북의대에 편입된 서남의대생들과 함께 공부한 경험이 있다.
“제가 본과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갈 때 서남대 의대가 폐교되고 학생들이 편입됐어요. 우리 과에 450명이 들어왔었죠. 학년 정원이 110명이었는데, 갑자기 160명 가까이 늘었어요. 제 아래 학번은 유급생까지 포함해서 170명 가까이 강의를 들었어요. 그 해 겨울 우리가 반대 시위를 하자 총장과 학장은 교육 여건이 나빠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다음 해 개강하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교실이 없어서 본과 1학년들은 대강당에서 수업을 들었어요. 강의실과 달리 대강당은 화면도 별로 없고, 마이크도 잘 안 들리고 교육 여건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나중에는 건물 뒷벽을 허물어서 컨테이너 박스를 붙이고 수업을 듣게 했어요. 전기도 와이파이도 안 들어오고 추웠어요. 태블릿 PC로 수업을 듣던 시대였는데 운용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그러다보니 뒤의 두줄은 엎드려 잤어요."
의대 증원과 함께 1년 안에 의대 교육 여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정원의 20~30% 증원이었는데도 교육 여건 악화가 심각했어요. 그런데 정부의 의대 증원에 따라 내년에 어떤 의대는 100% 증원한다고 해요. 저는 당시 경험이 있어서 이대로 증원이 되면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정부가 총선용이 아니라 진심으로 증원할 계획이 있었다면 지난 2월부터 의학 교육실 증축을 시작했어야죠. 결국 아무 것도 안 했잖아요. 올 겨울 안에 증축은 불가능하죠. 제대로된 의학 교육의 질을 유지하려면 수험생 핑계를 대지 말고 모집을 중지하는 게 맞습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의사로 살지 고민이다. 사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해외로 나갈 생각도 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의사로 살지는 사태가 어떻게 끝나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용산에 있는 한 사람의 고집이 결국 완성된다면 더 이상 외과의 꿈을 꿀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군대를 가야하니까 그 기간 동안 미용이나 통증 또는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나라에서 외과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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