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집단휴학.전공의 집단사직 장기화로 의사 수급 절벽 현실화
지역·필수의료 살린다는 의료개혁, 지역·필수의료부터 붕괴시켜
"갑작스런 의대증원 추진 이후 한국 의료계는 ‘총체적 난국' 빠져"

[라포르시안]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를 기치를 내걸고 추진한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이 한국 의료를 수렁으로 내몰고 있다.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대생 집단 수업거부 사태로 2024년 한 해는 의료계는 물론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와 국민 모두에게 악몽같은 한 해였다.
문제는 의료대란 악몽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는 신규 의사와 전문의 배출이 급감하면서 그에 따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수련병원을 떠난 사직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복귀와 의대생들의 수업 정상화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의대 증원과 원점 재검토' 주장 사이를 헤매고 있다. 특히 신규 의사 및 전문의 배출 절벽에 직면하면서 의료개혁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2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의 제89회 의사국가시험 합격자 발표에 따르면 89회 의사국시에는 전체 382명의 응시자 가운데 269명이 합격해 70.4% 합격률을 기록했다.
올해 최종 합격자 수는 전년도 3045명과 비교해 8.8% 수준에 불과하다. 의사국시 합격자가 대폭 감소한 이유는 작년 2월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한 것에 반발해 전국 의과대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집단 휴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에 따른 의대생 집단휴학 사태가 없었더라면 의사국시 응시 대상 인원은 의대 본과 4학년 3000여명에 전년도 시험 불합격자, 외국 의대 졸업자 등을 포함해 3200여명 규모에 달한다.
그러나 의대증원 정책 발표 이후 수업 거부에 들어간 의대생들이 집단으로 의사국시 응시도 거부하면서 2024년 7월 2일부터 24일까지 시행된 제89회 의사 국시 실기시험 응시자는 347명으로 예년의 10%(전년도 응시자 수 3,212명) 수준에 불과했다. 의사국시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에 모두 합격해야 의사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올해 신규 의사 배출 절벽은 예정된 상황이었다.
올해 의사국시 합격자가 급감하면서 각 수련병원이 2월 3~4일 실시한 의사국시 최종 합격자와 지난해 인턴 임용포기자 2967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턴 모집에서 극히 저조한 지원율을 보였다. 이틀간 실시한 상반기 인턴 모집 결과 대다수 수련병원에서 지원자가 전무하거나 1~2명 수준에 그쳤다.

사직 전공의를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수련병원의 레지던트 1~4년차 모집도 지원자가 소수에 그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전국 수련병원 221곳의 상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2024년 3월 기준 임용대상자로서 사직(임용포기)한 레지던트 1~4년차 9,220명 중 199명(2.2%)만이 지원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에서 사직 전공의 5,913명 135명(2.3%)이 지원했다. 비수도권에서는 사직 전공의 3,307명 중 64명(1.9%)이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차별 지원자를 보면 1년차 17명, 2년차 54명, 3년차 52명, 4년차 76명 등이다.
전공의 지원율이 극히 저조하자 보건복지부는 2월 10일부터 이달 말까지 상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에 들어갔다.
각 수련병원은 추가 모집에서 1년차 레지던트 3383명, 상급년차 레지던트 8082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하지만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 사태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전공의 지원율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신규 전문의 배출도 예년과 비교해 18%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학회가 지난 17일 발표한 제68차 전문의 자격시험 1차시험 합격자 공개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시험 총 대상자 557명 중 면제자 22명과 결시자 1명을 제외한 534명이 1차 시험에 최종 응시했고, 합격자는 500명으로 93% 합격률을 기록했다.
2024년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자 수(2782명)와 비교하면 20% 수준에도 못 미친다. 전문의 자격시험 1차시험 합격자는 오는 18~21일 열리는 2차시험을 저쳐 최종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신규 의사와 전문의 배출 절벽은 당장에도 문제이지만 장기적으로 의료체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우려가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의대증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 신규의사와 전문의 배출 급감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분야는 지역·필수의료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지난해 9월 9~10일 이틀간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방의 응급의료 시스템이 의료대란 사태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 응급실 의사 감소율이 충청, 부산, 광주전남 지역이 50% 이상, 강원, 전북, 대구경북, 울산경남 지역이 40% 이상 줄었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35.7% 줄어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적었다.
지역별 전문의 수 감소를 보면 충청지역 27.9%, 광주전남 13.6%, 대구경북 12.8%, 부산 11.4%로 10% 이상 줄었다. 수도권은 증가한 곳도 있으며, 서울과 경기, 인천은 0.3% 감소해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같은 수치는 의대증원에 따른 의료대란 사태로 인해 지역에서부터 의사인력 유출과 필수의료 붕괴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부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수도권 주요 대형병원이 전문의 인력 확충에 나서면 지방 병원에서 의사인력 이탈이 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은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숙련된 전문의 인력이 필수적인데, 신규 전문의 배출은 급감한 상태에서 결국 수도권 대형병원이 지방의 전문의 인력을 적극 채용하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다른 문제는 신규 의사와 전문의 배출 절벽으로 군의관과 공보의 수급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일반적으로 의사가 되기 위해 입영을 연기한 자는 의사면허 취득 후 수련기관(병원)에 인턴으로 취직할 때 ‘의무사관후보생 전공의 수련 동의서’를 작성하고 신원조회를 거쳐 의무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된다. 매년 1회 모집하며 5월 초에 약 1,100~1,200여명을 선발한다. 이들은 향후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사로 병역 의무를 다한다.
선발된 의무사관후보생은 보통 인턴 1년, 전공의 3~4년을 거쳐 약 4~5년 후 매년 1회(3월) 입영하고, 중도에 수련기관을 퇴직하거나 레지던트 미승급 등의 수련중단 사유가 발생한 경우 가까운 입영기일에 입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2024년에는 인턴 임용표기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의무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된 인원은 전년대비 약 87% 감소한 184명에 그쳤다. 여기에 올해는 신규 의사 배출이 269명에 불과해 의무사관후보생 선발 인원도 소수에 그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향후 3~4년 뒤부터 공보의와 군의관 인력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의대증원 추진 이후 한국 의료계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며 "수련병원, 상급종합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는 아직도 요원하고, 수업 현장을 떠난 의대생의 복귀는 더더욱 가망 없어 보인다. 과로에 지친 의대 교수들은 학생, 전공의 교육을 통한 의사, 전문의 양성이라는 소임마저 없어져 가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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