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희(뇌전증 환아 엄마)

[라포르시안] “솔직히 70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그 이상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어요. 성장하면서 덩치는 계속 커지고 있고, 저는 나이가 들어가요. 내 힘으로 케어가 가능할 때까지 아이가 행복하게 살다가 저보다 먼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먼저 하늘나라에 갈 가능성이 높잖아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뇌전증 환아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경상남도 창원에 거주하는 황선희 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세 아이 중 14살 수현이는 10년이 넘게 뇌전증과 싸우고 있다. 기자는 최근 한국에자이 본사에서 열린 에필랩시즌2 성과공유회에서 선희 씨를 만났다.
‘에필랩’은 Epilepsy(뇌전증)와 Living Lab(리빙랩)의 합성어로, 뇌전증이어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실험실을 의미한다. 뇌전증 환자 및 가족 등 당사자가 중심이 돼 자신들이 겪는 의료적, 사회적 어려움 등 생활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2014년에 수현이는 고열에 의해 처음으로 경련 증상을 보였다. 1년 뒤 폐렴에 걸렸는데 당시에는 전신 대발작으로 나타났다. 급하게 응급실로 갔는데 발작 후 고열이 이어졌고, 열이 내려갔어도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아이가 뇌전증 진단을 받고 하루하루가 힘들었어요. 경련을 많이 할 때는 하룻밤에 7~8번의 대발작이 일어났어요. 그럴 때는 아이의 의식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너무 힘들다보니 극단적인 생각도 많이 했어요.”
창원에서 진료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서울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창원에서 기차로 3시간 30분 정도 올라와서 병원까지 이동하면 보통 4시간 30분 정도 걸려요. 처음엔 기차로 다녔는데 그 안에서 아이가 경련을 세 번정도 했어요. 대처가 안 돼서 결국 차를 가지고 오갔는데 중간에 아이가 쉬기 위해 휴게소를 들르다보니 편도만 5시간이 넘게 걸려요. 그렇게 병원을 가면 보통 3분 이내에 진료가 끝나요. 정말 길게 봐줄 때가 5분이에요. 뇌전증 환아의 엄마들은 서울과 지방의 치료환경이 너무 다르다고 하소연해요. 뇌파 판독도 교수님마다 너무 다르다고 해요. 서울까지 오지 않아도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뇌전증지원센터가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에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 2020년에 국내 처음 설립된 뇌전증지원센터는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에게 의료정보, 질병 상담, 학교, 사회복지 문제 상담 및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뇌전증지원센터는 전국에서 서울밖에 없어요. 그런데 치매안심센터는 전국에 엄청나게 많잖아요. 지역마다 뇌전증을 치료하는 병원은 세우지 못해도, 전국 곳곳에서 치매안심센터처럼 뇌전증지원센터가 있다면 환자도, 가족들도 많이 안심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뇌전증은 뇌신경 세포의 과도한 전기적 신호로 인해 발작 증상이 되풀이되는 병이다. 국내에는 약 36만명의 환자가 뇌전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 병을 ‘간질’, ‘지랄’ 등으로 부를 만큼 부정적 인식이 높았고, 그 인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뇌전증 자체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뇌전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퍼플라이저’라는 이름으로 인식 개선 운동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지금은 에필랩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희 씨는 퍼플라이저부터 에필랩까지 뇌전증 인식 개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장애 이해 교육을 하러 간 적이 있었어요. 뇌전증을 중심으로 교육하려는데 담당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는 뇌전증 아이가 없어서 교육이 필요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100명 중 10명에서 뇌전증이 발병할 수 있고, 앞으로도 뇌전증 학생이 생길 수가 있으니, 지금 당장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교육이 필요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서 교육은 진행했어요.”
“교육을 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앉아 있었어요. 아이들이 정말 집중해서 뇌전증에 대해 귀를 기울였어요. 교육 후에 뇌전증이 있는 친구를 만나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선희 씨는 뇌전증 인식개선을 위한 자신의 활동에 점수를 매길 생각은 없다.
“활동에 성과나 보람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제자리에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뇌전증에 관심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선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뇌전증이라는 병을 모르는 사람한테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과 정확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알리면 뇌전증 환자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더 빨리 바꿔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